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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말고"…의료 현장이 정부의 '정책 시험대'인가 [기자수첩-ICT]

김효경 기자 (hyogg33@dailian.co.kr)
입력 2026.08.14 07:00
수정 2026.08.14 07:00

남녀 입원실 구분 폐지 이어 탈모약 건보 토론회도 철회

‘일단 던지고 보자’식 정책 반복…의료현장 혼선 키워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 ⓒ뉴시스

정부 정책에는 무거운 결과가 따른다. 국민의 건강과 안전에 직결되는 보건의료 정책이라면 더욱 그렇다. 정책적 결정 하나로 의료 체계가 흔들릴 수도 있고, 더 중요한 곳에 투입돼야 할 재원이 낭비될 수도 있다. 그만큼 신중한 검토와 판단이 필요하다.


최근 보건의료정책과 관련된 정부의 행보를 보면 무거움과는 거리가 멀다. 보건복지부가 잇따라 정책을 꺼냈다가 거둬들인 게 대표적이다.


복지부는 지난 5월 의료기관 입원실의 남녀 구분 기준을 삭제하는 내용의 ‘의료법 시행규칙 일부 개정령안’을 입법예고했다. 부부나 직계가족이 같은 병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 간병 부담을 덜고, 의료기관의 병상 운영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의료계 안팎에서는 환자의 사생활 보호와 안전 등을 둘러싼 우려가 잇따랐다. 결국 복지부는 입법예고 기간 접수된 의견 등을 검토한 끝에 기존 기준을 유지하기로 했다.


탈모 치료제 건강보험 적용 문제도 비슷했다. 복지부는 탈모 치료제 건강보험 적용을 주제로 대국민 토론회를 열겠다고 예고했다. 그러나 한정된 건강보험 재원을 중증·필수의료가 아닌 탈모 치료에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지적 등이 이어졌고 토론회는 결국 취소됐다.


두 사안은 서로 달라 보이지만 과정은 묘하게 닮았다. 정책을 먼저 던져 놓고 논란이 커지자 한발 물러서는 행태가 반복됐다.


물론 정책의 철회나 수정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입법예고는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절차이고, 토론회 역시 사회적 논의를 위한 과정이다. 잘못된 방향이라면 고집하기보다 바로잡는 것이 맞다. 정책 결정 과정에서 국민과 의료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것 또한 정부의 역할이다.


의문이 드는 건 두 사안에서 제기된 우려가 정책을 공개하기 전에는 예상하기 어려울 만큼 난해했느냐는 점이다. 남녀가 같은 병실을 사용할 가능성을 열어둘 경우 사생활 보호와 환자 안전을 둘러싼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건강보험 재정을 탈모 치료에 투입하는 문제 역시 중증·필수의료 보장성과 급여 우선순위를 둘러싼 논쟁을 피하기 어려운 사안이었다.


그럼에도 정책을 먼저 공론장에 올린 뒤 반발이 커지자 다시 거둬들이는 모습이 반복됐다. ‘의견 수렴을 통한 정책 수정’과 ‘충분히 검토되지 않은 정책을 일단 던져본 뒤 반응을 살피는 것’은 분명 다르다.


대통령이나 부처 수장의 성향에 따라 ‘과감한 개혁’을 앞세운 ‘톱다운(Top-down)’ 방식의 정책 추진이 이뤄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일단 추진해 보고 문제가 있으면 보완·수정하고, 정 아니다 싶으면 철회하는 식이다.


하지만 보건의료 정책은 ‘일단 해보고 아니면 말고’ 식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분야다. 병실 운영 기준 하나가 바뀌어도 의료기관은 공간과 병상 운영, 환자 관리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건강보험 급여 항목 하나를 추가하는 문제는 한정된 재원을 어떤 질환과 환자에게 우선 배분할 것인지와 직결된다. 정책을 발표하는 순간부터 의료기관과 의료진, 환자는 시행 가능성과 영향을 따져 움직일 수밖에 없다.


의료현장은 정책의 완성도를 확인하기 위한 시험대가 아니다. 발표한 다음 반응을 살필 게 아니라 미리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예상되는 부작용부터 충분히 살펴야 한다. ‘일단 던지고 아니면 말고’가 반복될수록 정책이 잃는 것은 추진 과정에서의 행정력 낭비 뿐이 아니다.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함께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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