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산 D램, 가격공세보다 무서운 '고객 침투'…삼성·SK 안방 흔드나
입력 2026.08.13 06:00
수정 2026.08.13 06:00
애플, 아이폰·맥북용 CXMT D램 테스트…HP·에이서도 일부 제품 채택
AI 메모리 집중한 틈 파고들어…수율 개선·증설로 중장기 경쟁 변수
중국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 LPDDR5X 제품. ⓒCXMT
중국 최대 D램 업체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가 글로벌 완제품 업체의 공급망을 빠르게 파고들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인공지능(AI)용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서버 D램에 생산 역량을 집중하면서 생긴 범용 D램의 빈틈을 공략하는 모습이다.
당장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력 시장을 위협할 수준은 아니지만, 메모리 공급난을 틈타 글로벌 고객사와 거래 경험을 쌓고 생산능력까지 확대하고 있다는 점은 중장기 변수로 꼽힌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애플은 최근 아이폰과 맥북 등 자사 제품에 CXMT의 D램을 적용하기 위한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중국에서 판매되는 제품에 CXMT 제품을 사용하는 방안을 놓고 초기 논의도 진행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아직 실제 공급 계약이 확정된 단계는 아니다.
글로벌 PC 업체들은 한발 앞서 움직이고 있다. HP와 에이서는 미국 이외 지역에서 판매하는 일부 제품에 CXMT 메모리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에이수스 역시 중국산 D램을 일부 제품 공급망에 도입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직 적용 제품과 물량은 제한적이지만 중국 내수에 머물던 CXMT가 글로벌 PC 업체의 품질 인증을 거쳐 실제 공급 단계까지 들어왔다는 데 의미가 있다.
CXMT가 파고든 틈은 역설적으로 AI 메모리 호황이 만들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이 수익성이 높은 HBM과 서버 D램에 생산능력을 우선 배정하면서 PC와 스마트폰 등에 쓰이는 범용 D램은 공급이 빠듯해졌다. 트렌드포스도 주요 메모리 업체들의 AI·서버용 생산 확대가 소비자용 D램 공급을 구조적으로 제약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가격이 싸서 중국산 제품을 찾는 것만도 아니다. 현재 메모리 공급 부족이 심해지면서 글로벌 PC 업체 입장에서는 필요한 물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공급처 자체를 넓힐 필요성이 커졌다. CXMT 입장에서는 공급난이 글로벌 고객사의 진입 장벽을 낮춰준 셈이다.
기술 격차도 조금씩 좁혀지고 있다. 최근 중국 IT매체들은 CXMT의 17나노급 DDR5 생산 수율이 90%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삼성의 같은 세대 기준 수율은 92~93% 수준으로 알려져있다. 다만 구체적인 수율은 CXMT가 공식 발표한 수치가 아니어서 타 메모리사들과 직접적인 수율 비교는 어렵다. 다만 실제로 CXMT가 90% 이상의 수율 안정화를 달성했다면 이는 DDR5 양산 경쟁력을 상당 수준 높였다는 해석이 된다.
시장 점유율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CXMT는 올해 1분기 글로벌 D램 매출 기준 점유율 7.6%로 4위를 기록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기존 3사의 합산 점유율은 89.7%로 여전히 압도적이다. 하지만 중국 내수 중심이던 CXMT가 단일 자릿수 후반까지 점유율을 끌어올렸다는 점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특히 모바일 D램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CXMT의 '4강' 구도가 굳어지고 있다. 트렌드포스는 CXMT가 LPDDR4X 공급 경쟁력을 바탕으로 모바일 D램 시장 점유율을 높이며 마이크론과의 격차를 좁히고 있다고 분석했다. 주요 메모리 업체들이 AI·서버용 고부가 제품으로 생산능력을 옮기면서 생긴 레거시 제품의 공급 공백을 CXMT가 빠르게 메우고 있다는 설명이다.
생산 확대를 위한 실탄도 확보했다. CXMT는 지난달 상하이 증시에 상장해 579억2000만위안(약 86억달러)을 조달했다. 조달 자금은 생산능력 확충과 연구개발 등에 투입될 예정이다. CXMT는 신규 생산시설 확충을 통해 D램 생산능력을 대폭 늘리는 방안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CXMT가 당장 국내 업체의 핵심 수익원을 흔들 가능성은 크지 않다. HBM 등 첨단 메모리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선두 업체와 기술 격차가 남아 있고, 미국의 장비 수출 규제 역시 첨단 공정 확대의 제약 요인이다. 트렌드포스도 CXMT가 서버 D램과 첨단 공정을 확대하고 있지만 해외 장비 접근 제한이 고부가 시장 진입의 걸림돌이라고 평가했다.
문제는 다음 다운사이클이다. 지속적으로 공급이 부족할 때 CXMT가 애플과 글로벌 PC 업체의 품질 인증을 통과하고 공급 경험을 쌓으면, 향후 메모리 수급이 정상화된 이후에도 고객 관계를 이어갈 가능성이 변수라는 관측이다. 여기에 늘어난 생산능력까지 더해지면 PC·스마트폰용 범용 D램을 중심으로 가격과 물량 경쟁이 한층 거세질 수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AI 메모리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고도화하는 동안 CXMT가 범용 시장에서 얼마나 빠르게 글로벌 고객 기반을 넓히느냐가 향후 D램 경쟁 구도의 변수가 될 전망이다. 한편 현재 CXMT는 샤오미, 텐센트 등 자국 내 기업들에 우선적으로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