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인이 입은 아틀레티코의 빨간 줄무늬, 기원은 잉글랜드? [YOU KNOW]
입력 2026.08.15 11:20
수정 2026.08.15 11:20
파리생제르맹을 떠나 스페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유니폼을 입은 이강인이 라리가 무대로 돌아왔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의 지휘 아래 유로파리그 3회 우승과 라리가 통산 11회 정상에 오른 전통의 강호다. 특히 하얀색과 빨간색의 새로 줄무늬 유니폼을 이 팀을 상징하는 색이기도 하다. 다만 이 클럽이 어떻게 태어났고 왜 지금의 빨간색과 흰색 줄무늬 유니폼을 입게 됐는지 아는 팬은 많지 않다.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뜻밖에도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명문 아틀레틱 빌바오와 맞닿아 있다.
AT 마드리드로 이적한 이강인. ⓒ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 마드리드로 간 바스크 유학생들이 세운 구단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역사는 19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수도 마드리드에서 공학을 공부하던 바스크 출신 학생 3명이 뜻을 모아 클럽을 창단했다. 이들의 고향인 바스크 지방에는 이미 1898년 창단된 아틀레틱 빌바오가 있었지만, 매주 먼 거리를 이동해 홈구장을 찾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결국 마드리드에 정착한 바스크인들은 고향 팀을 마음으로만 응원하는 대신, 아예 '아틀레틱 클루브 데 마드리드(Athletic Club de Madrid)'라는 팀을 만들었고, 이것이 오늘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출발점이다.
창단 당시 두 클럽은 사실상 한 몸이나 다름없었다. 아틀레틱 빌바오는 갓 태어난 마드리드 지부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했고, 선수들을 서로 빌려주며 경기를 치를 정도로 관계가 밀접했다. 공식 대회에서는 같은 소속으로 취급받아 맞대결조차 성사되지 않았다는 점이 당시의 각별한 관계를 잘 보여준다. 두 팀은 그로부터 18년이 지난 1921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빌바오로부터 독립하며 완전히 분리됐다.
▲ 파란 줄무늬였던 유니폼, 사우스햄튼 덕에 빨간색으로
지금은 두 팀 모두 빨간색과 흰색 세로 줄무늬 유니폼으로 유명하지만, 창단 초기에는 전혀 다른 색이었다. 아틀레틱 빌바오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모두 파란색과 흰색 줄무늬 유니폼을 입었는데, 이는 창단 초기 잉글랜드 블랙번 로버스로부터 저렴한 값에 유니폼을 공급받았기 때문이다.
색이 바뀐 계기는 다소 우연에 가깝다. 1909년 구단 이사가 새 유니폼을 구입하러 잉글랜드로 출장을 떠났지만, 블랙번 로버스의 유니폼을 구하지 못했다. 빈손으로 돌아올 수 없었던 그는 귀국 직전 사우스햄튼 항구에서 현지 구단인 사우스햄튼FC의 유니폼을 대신 구매했고, 이때부터 빨간색과 흰색 줄무늬가 두 팀의 상징색으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됐다.
흥미로운 대목은 또 있다. 당시 아틀레틱 빌바오는 상의뿐 아니라 하의까지 함께 지급받아 사우스햄튼과 동일한 검은색 바지로 통일했지만, 상의만 전달받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초창기 블랙번 로버스 시절 입던 파란색 바지를 고수했다. 오늘날 두 팀의 유니폼에 미묘한 차이가 있는 이유다.
하의 색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다른 아틀레틱 빌바오. ⓒ AP=뉴시스
▲ '매트리스 제작자'라는 별명의 유래
빨간-흰색 줄무늬의 기원에 대해서는 또 다른 이야기도 전해진다. 1900년대 초 침대 매트리스를 만들고 남은 천 조각을 유니폼 제작에 활용했는데, 당시 염색 비용을 따졌을 때 빨간색과 흰색 조합이 가장 저렴했다는 설이다. 이 일화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대표 별명인 '로스 콜초네로스(Los Colchoneros·매트리스 제작자들)'의 유래로도 통한다. 진위와 별개로 이 별명은 마드리드 노동자 계급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성장해온 구단의 정체성과도 자연스럽게 맞물린다.
▲ '아틀레틱'과 '아틀레티코', 한 글자 차이에 담긴 역사
두 팀의 이름이 살짝 다른 데에도 사연이 있다. 아틀레틱 빌바오는 창단 당시 영국인들이 참여한 영향으로 영어식 표현인 '아틀레틱(Athletic)'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반면 '아틀레티코(Atlético)'라는 스페인식 이름은 스페인 내전이 끝난 뒤 프란시스코 프랑코 독재 정권이 외래어 표기를 금지하면서 강제로 바뀐 결과물이다.
창단 당시의 이름과 지금의 이름 사이에 놓인 시간만큼, 두 구단이 걸어온 길도 크게 갈렸다. 아틀레틱 빌바오가 바스크 출신 선수만 기용하는 독자적인 육성 정책을 고수한 반면, 아틀레티코는 세계 각국의 선수를 두루 영입하는 일반적인 유럽 빅클럽 형태로 몸집을 키웠다.
초창기 빌바오가 마드리드에 선수를 공급하던 관계는 이제 완전히 역전됐지만, 두 클럽은 여전히 서로를 각별하게 여긴다. 실제로 아틀레티코는 2023년 아틀레틱 빌바오 창단 125주년을 맞아 이들을 자신들의 '창립 구단'으로 공식 소개하며 헌정 행사를 열었다. 당시 홈경기였음에도 아틀레티코는 빌바오에 홈 유니폼 착용을 양보하고, 자신들은 제3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에 나섰을 정도로 각별한 예우를 갖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