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적의 집을 허물고, 그 터를 못으로 만들다
입력 2026.08.12 07:00
수정 2026.08.12 07:00
정부가 육·해·공군 사관학교를 통합한 4년제 국군사관학교를 군사 교육·훈련시설이 밀집한 대전 자운대에 창설하기로 결정한 지난달 16일 서울 노원구 육군사관학교 인근에 사관학교 통폐합에 반대하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려있다.ⓒ연합뉴스
“저는 이제 52년에 걸친 군 복무를 마치려 합니다. 세기가 바뀌기도 전, 제가 육군의 길에 들어섰을 때 그것은 소년 시절 품었던 모든 희망과 꿈이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웨스트포인트의 연병장에서 선서를 한 이래 세상은 수업이 변했고, 그 희망과 꿈도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시절 병영에서 가장 널리 불리던 병영가 가운데 하나의 후렴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그 노래는 자랑스럽게 외쳤습니다. ‘노병은 결코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져 갈 뿐.’ 그 노래 속 노병처럼, 저도 이제 군인으로서의 삶을 마감하고 사라져 갑니다. 하느님께서 제게 그 의무를 깨달을 수 있는 빛을 허락하신 대로, 자신의 의무를 다하고자 애썼던 한 노병으로서 말입니다. Good Bye.”
더글러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가 1951년 미국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행한 ‘고별연설’의 마무리 부분이다. 특히 ‘노병…’ 부분은 지금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인용되는 명문장이다. 병영가의 한 구절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는 맥아더의 명언으로 기억된다. 52년에 걸친 군인으로서의 생애를 그 한마디에 담았기 때문에 그의 말이 된 것이라고 하겠다.
노병 맥아더의 고향 웨스트포인트
맥아더의 기억 속에 뚜렷이 각인되는 또 하나의 대상이 있다. 웨스트포인트다. 노병에게는 웨스트포인트가 그의 자부심이고 고향이었다. 퇴장하는 노(老) 장군이 인생의 석양녘에 돌아보는 곳, 거기에 웨스트포인트의 연병장(The Plain)이 있다. 장중한 서사(敍事)이자 정감 넘치는(낙조 풍경이 원래 그렇다) 서정(抒情)이다.
우리의 노병들에게도 자부심으로 담아둘 고향이 있을 것이다. 육사는 물론 해사와 공사도 그들의 회상 속에 늘 살아 있다. 병사 출신들에게라고 그런 대상이 없는 게 아니다. 논산 연무대(鍊武臺)가 대표적이다. ‘진짜 사나이’의 요람이라고 할 수 있다. 사단 신병교육대들도 당연히 포함된다.
자부심은 이름만으로, 그리고 교육과 훈련의 수준과 강도(强度), 기강만으로 생겨나는 게 아니다. 거기에 더해져야할 것이 전통이다. 육군은 태릉의 화랑대에서, 해사는 창원시 진해구의 옥포만(실습장), 공사는 청주시 남일면의 성무대(星武臺)에서 장교들을 길러냈다.
이곳들이 현역 예비역할 것 없이 장교들의 고향이다. 국가가 길러내는 호국간성들인 만큼 자부심도, 전문적 지식과 기량도 뛰어난 인재들이 이곳을 거친다. 제3사관학교, 학생군사교육단과 이외의 각종 전문사관 양성기관 등도 역량에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태릉의 육사는 1945년 12월 미 군정이 장교 양성을 위해 설치했던 군사영어학교를 모태로 한다. 이듬해 2월 27일 태릉으로 이전했다. 그 이후 81년의 세월이 흘렀다. ‘육군사관학교’로서의 역사도 78년에 이른다. 유서 깊은 그 태릉의 육군사관학교가 이재명 정권에 의해 사라진다. 대신 해사 공사들과 함께 국군사관학교로 통합 재편된다.
통합사관학교는 역대 정부에서 구상됐고 정부에 따라서는 구체적으로 시도되기도 했다는 지적이 있다. 그러므로 현 정부의 논의를 단지 계엄사태에 대한 정치적 대응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고 한다(조성훈 전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 칼럼, 한겨레, 7.14). 그렇다면 그나마 다행이긴 한데 정부의 계획이 정말 순수하기만 한 것인지 여부는 의문일 수밖에 없다. 의심의 단초를 제공한 사람이 이재명 대통령이어서 더욱 그렇다.
이재명 대통령이 1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이재명 대통령의 ‘토(討) 육사 격문’
지난 5일 청와대에서 외교부‧통일부‧국방부‧국가보훈부의 합동 업무보고가 있었다. 이 대통령은 안규백 국방부 장관을 상대로 [육군 장성들에 의해 저질러진 쿠데타]에 대한 분노를 쏟아냈다.
“대한민국에 군사쿠데타가 몇 번이나 있었나? 다 육군에서 벌어진 일이지. 육사출신들이…. 거기에 대해서 책임을 물은 적 있나? 쿠데타를 무려 세 번이나 한 중심이 육군사관학교인데 한 번도 책임을 묻지 않았다. 앞으로 또 할 수 있지 않나.”
쿠데타를 일으킨 사람들은 육군 장성들이었지 육사가 아니었다. 1980년 신군부에 의한 쿠데타와 관련해서는 책임자들이 이후의 공적과는 상관없이 아주 엄하게 처벌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서 책임을 안 물었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은가? 이는 국민에게 물어볼 문제다. 그리고 체형을 가하지 않았다 뿐이지 좌파들에 의해 감당하기 어려운 모욕과 비난이 지금까지 퍼부어지고 있다.
세 번이라고 하는 것은 이 대통령이 “육군 장성들이 동조해가지고 군사 친위쿠데타를 할 줄 누가 상상했겠느냐”고 한 그 사건을 가리키는 것일 텐데, 그걸 쿠데타라고 규정할 수 있는지는 앞으로의 연구과제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은 사법부의 심판에 맡겨져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재작년 12월 3일 선포한 비상계엄령을 정부 여당은 내란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아직 사법적 판단이 내려진 건 아니다. 그러므로 친위 쿠데타도 일방적 규정일 뿐이다.
이 대통령의 질타는 육사, 나아가 육군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모멸감 좌절감을 안겼을 법하다. 어떻게 국가 방위의 최전방에 있는 군대를, 그 통수권자가 싸잡아 쿠데타 세력으로 규정할 수 있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군별로 떼 가지고 따로 육성하고 특정 군종(軍種) 장교들이 군대를 거의 압도적으로 장악하고 가끔씩은 군사쿠데타를 일으켜가지고 나라를 절단을 내고 난 다음에도 아무런 책임을 안지는 이런 경우가 어디 있나.”
이 대통령은 ‘토(討) 육사 격문’의 느낌이 나는 훈시 겸 단죄 발언을 한 다음 안규백 국방부 장관에게 이렇게 물었다.
“통합을 하면 이런 가능성이 좀 줄어들지요?”
사관학교를 통합하면 쿠데타의 가능성이 줄어들 것 아니냐는 말인데 질문이라기보다는 자기 결심의 재확인이다.
대통령에게 정진(精進) 다짐한 장관
광해군 4년에 ‘김직재(金直哉)의 옥’이 있었다. 그의 아들 김백함이 고문을 못 이겨 모반했노라고 허위 자백을 했고, 그로 인해 대규모 옥사(獄事)가 벌어졌다. 이들 두 부자와 황백신(백함의 사위) 등이 처형되고 다수가 유배·관직 삭탈의 형을 받았다.
‘광해군일기’에 김직재·김백함·황보신 등을 능지처사하고 가산을 적몰하며 파가저택(破家瀦澤·집을 헐고 그 터에 물을 채워 못으로 만듬) 등의 조치를 율문에 따라 시행했다는 기사가 있다. 육사 출신이 쿠데타를 일으켰으니 그 집을 허물어 버리겠다는 정부의 결기에 오버랩되는 장면이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연좌제 또한 왕조시대의 오랜 제도였다. 삼족 혹은 구족을 멸하는 형벌이 가해졌다는 기록은 너무나 쉽게 발견된다. 이 연좌제는 지난 1894년 이전까지 행해졌다. 그리고 그 잔영은 대한민국에까지 이어져 신원조회와 사회활동 제한 등의 형태로 남았다.
어쨌든 육사 출신의 장성들이 쿠데타를 주도했다고 육사를 (사실상) 없애버리거나 다른 사관학교와 섞어버려야 한다는 발상이 놀랍다. 전에는 합동성의 강화, 통합 교육, 예산의 효율적 운용 등이 사관학교 통합의 명분 및 이유로 강조됐고 이번에도 같은 논리가 제시되더니 갑자기 이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진짜 이유’를 밝혔다.
현 체제를 유지하면 육사 출신들에 의한 쿠데타가 또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 것이다. 세상에 쿠데타 주역을 배출한 학교이니 없애야 한다는 식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전국의 각종·각급 학교 모두가 벌벌 떨어야 할 시대가 된 듯해서 등골이 써늘해진다. 육사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처지이면서도―.
민주국가의 권력은 자신의 가치관·판단으로 남에게 호통치고, 이죽거리고, 모욕주고, 보복하라고 주어지는 게 아니다. 큰 권력을 가졌을수록 더 조심하며 어렵게 행사하라는 게 민주주의와 도덕률의 요구다. 이 대통령은 신속하고 강력하게 통합을 추진하라고 안 장관을 독려했다.
“국민이 그만해도 되겠다고 할 때까지 이해와 설득을 구하고 정진하겠습니다.”
어법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는데다 과공으로 되레 요령부득의 답변이 되고 말았지만, 어쨌든 “분부대로 거행하겠습니다”는 다짐이다. 무불통지(無不通知)의 대통령과 과공(過恭)의 각료들이 이끌어가는 나라의 일개 시민은 마음에 커다란 돌덩이를 안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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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외부 필진 칼럼입니다.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