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세 시에 눈이 떠져요"…열대야가 건드린 자율신경
입력 2026.08.12 07:00
수정 2026.08.12 07:00
고은경희한의원 구로디지털단지점 이한별 원장.
태풍이 지나가면서 이번 주 낮 더위는 조금 누그러졌다. 그런데 진료실에서 듣는 이야기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뒤척이다 새벽 세 시에 눈이 떠졌다는 분, 에어컨을 켜놓고도 자꾸 깬다는 분이 여전히 많다.
이유가 있다. 기상청 집계로 올여름 전국 열대야 일수는 8.8일, 1973년 통계 작성 이후 역대 1위다. 낮 기온이 조금 내려가도 밤 최저기온이 25도 아래로 떨어지지 않으면 몸은 쉴 틈을 얻지 못한다.
잠은 체온이 내려가야 시작된다. 저녁이 되면 손발의 혈관이 넓어지면서 몸속 열을 밖으로 버리고 심부체온이 0.5도쯤 떨어질 때 뇌가 수면 스위치를 켠다. 이 교대를 맡는 것이 자율신경이다. 낮에는 교감신경이, 밤에는 부교감신경이 주도권을 넘겨받아야 한다.
열대야는 이 교대를 방해한다. 바깥 공기가 25도를 넘으면 피부로 열을 버리기 어려워 몸은 계속 방열을 시도하고 그동안 교감신경은 꺼지지 않는다. 새벽에 눈이 떠지는 것도 같은 자리에서 온다. 스트레스 호르몬이 예정보다 이르게 올라오면서 얕은 잠이 각성으로 넘어가 버린다.
한의학은 이 상태를 오래전부터 다른 언어로 적어두었다. '황제내경·영추'는 낮 동안 몸 표면을 돌던 위기(衛氣, 몸을 지키며 순환하는 기운)가 밤에 안쪽으로 들어가지 못하면 눈이 감기지 않는다고 했다. 양(陽)이 음(陰)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상태, 지금 말로 옮기면 교감에서 부교감으로 넘어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여름 불면은 대개 심열(心熱, 가슴에 열이 몰려 답답한 상태)과 음허(陰虛, 진액이 마르며 허한 열이 뜨는 상태)로 본다. 여기에 높은 습도가 겹치면 습열(濕熱)이 되어 몸이 무겁고 개운하지 않다. 땀을 쏟은 뒤 기운까지 빠지면 잠은 얕아지고 새벽 각성이 잦아진다.
이 해석은 검사 수치로도 이어진다. 불면을 호소하는 환자의 심박변이도(HRV)를 분석한 국내 연구들에서 전체 변이도 저하, 부교감 지표(HF) 감소, 교감 우위 소견이 반복해 관찰됐다. 옛 문헌의 표현과 현대의 검사지가 같은 현상을 가리키고 있는 셈이다.
혈압약을 복용 중인 중장년층이라면 야간 교감신경 항진이 혈압 변동 폭을 키울 수 있어, 잠 문제를 단순한 컨디션 문제로 넘기지 않는 편이 좋다.
임상에서는 신문(神門, 손목 안쪽 새끼손가락 쪽 주름 위), 삼음교(三陰交, 안쪽 복사뼈에서 손가락 네 마디 위), 용천(湧泉, 발바닥 앞쪽 오목한 곳)을 자주 쓴다. 신문혈 자극이 얕은 잠과 관련된 신경 회로에 영향을 준다는 동물실험 보고도 나와 있다. 집에서는 잠들기 전 세 곳을 각각 1~2분씩 지그시 눌러주는 정도로도 도움이 된다.
한약은 변증에 따라 갈린다. 잠은 드는데 새벽에 깨고 입이 마르면 산조인탕(酸棗仁湯), 가슴이 두근거리고 꿈이 많으면 온담탕(溫膽湯), 더위에 기운부터 빠졌다면 청서익기탕(淸暑益氣湯)을 고려한다.
산조인의 스피노신과 주주보사이드 성분이 GABA·세로토닌 수용체에 작용한다는 연구가 있지만, 체질과 복용 중인 약을 확인한 뒤 처방받는 것이 원칙이다.
생활에서는 세 가지만 바꿔보자. 자기 전 찬물 샤워는 말초혈관을 수축시켜 열을 가두니 미지근한 물로 씻는 편이 낫다.
에어컨은 26~27도로 두세 시간 예약해두고 잠들려고 마시는 술은 새벽 각성을 늘리니 피한다. 취침 시각보다 기상 시각을 일정하게 지키는 쪽이 리듬 회복에 유리하다.
여름밤의 불면은 몸이 아직 낮의 열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신호고 신호는 억누르는 것보다 읽어주는 쪽이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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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한별 한의사·구로디지털단지 고은경희한의원 대표원장(lhb2@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