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즘'이라는 속 편한 변명이 사라진 이후 [기자수첩-산업]
입력 2026.08.11 08:37
수정 2026.08.11 08:37
상반기 전기차 판매 113.6% 급증
시장 침체 뒤로하고 본격 성장 국면
같은 시장에서도 판매 성장세 차이 뚜렷
가격·성능·상품성으로 옥석 가린다
테슬라 모델 Y ⓒ테슬라
지난 수년간 국내 자동차 업계에서 가장 자주 들린 단어는 단연 '캐즘'이다. 전기차 판매가 기대에 못 미쳐도 캐즘, 완성차 업체가 생산계획을 낮춰도 캐즘, 배터리 업체의 실적이 악화해도 캐즘이었다.
신제품이 초기 시장에서 대중 시장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겪는 일시적 정체기를 뜻하는 이 마케팅 용어는, 지난 2~3년간 전기차 시장에서 벌어진 웬만한 악재를 설명하는 만능 열쇠가 됐다. 실적이 나빠도, 전략이 어긋나도, 일단 '캐즘'이라고 말하면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속 편하게 기대던 '캐즘'이라는 울타리가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걷혀가는 듯 하다. 말 그대로 전기차 정체기가 '일시적'이었음을 증명하듯 폭발적으로 시장 규모가 커지고 있어서다.
올 상반기 국내 전기차 판매량은 19만8509대로 전년 동기보다 무려 113.6% 증가했다. 전체 자동차 내수가 1.3% 늘어나는 동안 전기차 시장은 두 배 이상 커진 것이다. 지난해 국내 전기차 신규등록이 22만177대로 50.1% 증가했을 당시, 정부는 캐즘을 지났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업체별로 봐도 뚜렷하다. 올해 1~7월 현대차는 국내에서 전기차 4만5881대를 판매해 전년 동기보다 40.7% 늘었다. 기아는 같은 기간 8만5444대로 무려 139.8% 증가했다. 어떻게 보더라도, 더 이상 '전기차가 안 팔리는 시장'이라고 부르기는 어려운 상황이 됐다.
문제는 시장은 커졌지만, 모든 업체에 결과가 고르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란 점이다. 소비자 선택이 집중되는 브랜드는 분명하다. 국내 전기차 시장의 주도권은 현재 현대차·기아, 테슬라 등 소수 업체가 쥐고 있다.
특히 눈여겨볼 곳은 수입 브랜드다. 국내 보조금 체계에서 불리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테슬라는 국내 전기차 시장의 한 축으로 당당히 자리매김하는 데 성공했다. 테슬라의 상반기 판매량은 5만6136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92.5% 증가했고, 현대차보다도 1만대 이상 많은 전기차를 팔았다.
BYD의 성장세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국내 승용차 시장에 처음 진출한 BYD는 첫해 6000대 넘는 판매량을 기록하며 안착했으며, 올 상반기엔 1만1675대를 판매하며 가파른 성장세를 증명했다.
중국산 자동차에 대한 국내 소비자들의 낮은 선호도와 브랜드 인지도를 감안하면 가볍게 볼 숫자가 아니다. 이들이 두각을 나타낸다는 것은 국내 소비자들이 전기차를 바라보는 기준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전기차를 내놓는 것만으로 경쟁력이던 시절은 지났다. 시장 침체를 견디는 것만으로 평가받던 시기도 지나가고 있다. 이제 가격과 기술, 디자인과 브랜드, 서비스까지 온전히 제품의 경쟁력으로 평가받을 차례다.
국산 브랜드들이 단순히 정부의 보조금 지원에 힘입어 판매량을 보장받는 데 그치지않고, '잘 만든 전기차'를 더 많이 고민하고, 증명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