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5000억원에 청년주택 1만가구? 계산에서 빠진 ‘주거의 조건’
입력 2026.08.11 07:00
수정 2026.08.11 07:00
폐버스 개조비 만으로 계산한 ‘1만가구’…주거 인프라는 별도
밈으로 번진 청년들의 반발
공급 숫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먼저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버스도 1가구 1주택에 해당하나요?”
폐버스를 청년 주거공간으로 활용하자는 이른바 ‘버스하우스’ 제안이 나온 뒤 온라인에 등장한 반응이다.
‘한남 더 휠’, ‘아크로 리버스 파크’처럼 서울 고가 아파트 이름을 비튼 가상의 매물도 등장했다. 여름에는 찜질방, 겨울에는 냉동고가 된다는 가상 체험 영상도 빠르게 퍼졌다.
하나의 정책 아이디어가 며칠 만에 ‘밈’이 된 셈이다.
논란의 출발점은 단순하다. 폐버스 한 대를 5000만원에 개조한다고 가정하면 1만 대에 5000억원. 기존 주택을 새로 짓는 것보다 적은 비용으로 청년들의 거처 1만개를 빠르게 만들 수 있다는 계산이다.
집값 10억원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시대에 숫자만 보면 눈길이 간다. 하지만 버스 내부를 개조했다고 곧바로 주택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선 버스를 세울 땅이 필요하다. 수도와 전기를 끌어와야 하고 하수와 오수도 처리해야 한다. 화장실과 샤워시설, 취사 공간, 냉난방과 소방시설도 빼놓을 수 없다.
더구나 청년들의 주거 수요가 많은 대학가나 지하철역 주변은 땅을 구하기 쉬운 곳이 아니다. 어렵게 부지를 확보했다면 그곳에 버스를 늘어놓는 것과 기숙사나 공동주택을 짓는 것 중 어느 쪽이 효율적인지도 따져볼 일이다.
결국 5000억원이라는 계산에는 버스 개조비 외에 적지 않은 비용과 조건이 빠져 있다.
해외에서도 폐버스를 거주 공간으로 활용한 사례는 있다. 다만 상당수는 노숙인이나 이재민을 위한 긴급·전환주거 또는 개인용 이동주택이다. 폐버스를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과 이를 대규모 청년주택으로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우리나라에는 최저주거기준도 있다. 1인 가구의 최소 주거면적은 14㎡다. 면적만 충족하면 되는 것도 아니다.
부엌과 화장실, 목욕시설부터 환기·채광·난방, 방음과 화재 대피까지 사람이 생활하기 위한 기본적인 조건이 따라붙는다.
이쯤 되면 버스하우스의 한계가 보인다.
주방과 화장실을 만들고 냉난방시설을 갖춘 뒤 상하수도와 전력망까지 연결하면 거주 환경은 좋아진다. 대신 버스는 사실상 한곳에 고정된다. 사람이 오래 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수록 ‘이동이 쉽고 저렴하다’는 버스의 장점은 희미해지는 것이다.
물론 폐버스를 활용한다는 발상 자체를 조롱으로 끝낼 필요는 없다. 산불이나 폭우 등으로 집을 잃은 이재민의 긴급 거처나 짧은 기간 머무는 임시 숙소라면 활용 가능성을 검토해볼 수 있다. 이동할 수 있다는 점도 이런 상황에서는 장점이다.
문제는 이를 ‘청년주택 1만가구’라는 주택 공급 해법으로 제시했을 때다.
이번 논란에 청년들이 민감하게 반응한 이유도 여기 있을 것이다.
집값과 전월세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청년들이 원하는 것은 또 하나의 임시 거처라기보다 안정적으로 생활하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공간에 가깝다.
5000억원으로 1만가구를 만들 수 있다는 계산보다 그 안에서 어떻게 살 것인지가 먼저인 이유다.
온라인에서는 여름과 겨울을 걱정했고, 화장실과 전입신고를 물었다. 얼핏 조롱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꽤 현실적인 질문이 들어 있다.
그곳을 정말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주택 공급에서 숫자는 중요하다. 하지만 1만가구라는 숫자를 세기 전에 그곳에서 살아갈 사람의 하루부터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