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한미 경영권' 관심 없다는 법카 제보자, 신동국과 무관하다지만...
입력 2026.08.07 13:52
수정 2026.08.07 14:21
"신동국 만남은 거버넌스 조언…마지막 연락 5월"
신동국 회장, 회견 전날 입장문서 '모녀 겨냥' 공세
김태호 전 큐어세라퓨틱스 대표는 7일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데일리안 한보라 기자
한미그룹 경영권 갈등이 공개 공방으로 격화하고 있다. 창업주 일가와 4자연합을 이뤘던 개인 최대주주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이 창업주 일가의 실질 의결권이 자신보다 적다는 주장을 내놨다. 같은 시기 송영숙 한미그룹 회장의 법인카드 사용 의혹 제보자도 직접 모습을 드러냈다. 다툼이 장외 여론전까지 번진 모양새다.
김태호 전 큐어세라퓨틱스 대표는 7일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가 제기하는 문제점은 경영권을 가진 대주주의 도덕적 행위와 전횡 및 불법적인 행위에 관한 것"이라며 "경영권 분쟁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고 강조했다. 김 전 대표가 밝힌 기자회견의 목적은 '한미그룹의 지속 가능한 거버넌스 및 준법경영 촉구'다.
김 전 대표는 지난달 송 회장 일가가 법인카드를 사적으로 유용했다는 의혹을 언론에 제보했다. 당시 한미그룹은 백화점 결제는 임직원과 주요 고객에게 전달할 선물 구입 비용이고 병원 지출은 임원 복지 차원에서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제보에 쓰인 자료가 정상 절차 없이 외부로 반출됐다고 보고 유출 경위를 살핀 뒤 법적 대응하겠다고 예고했다.
김 전 대표는 이날 자료 확보 경위를 해명했다. 그는 "이번에 제보한 문제는 이미 사정 당국에 의해 지적됐던 사안"이라며 "내가 확보한 자료는 한미그룹의 원본 데이터가 아니라 사정 당국 조사에 대비해 사전에 추출한 데이터"라고 설명했다. 다만 어느 사정 당국을 지칭하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신 회장과의 연계 의혹에도 선을 그었다. 그는 "신 회장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아니다"라며 "선대 회장이 안 계신 만큼, 이사회 중심의 책임 경영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말씀을 드린 것이 첫 만남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후 두세 차례 더 만났고 마지막 연락은 4월 말에서 5월 초 전화 통화였다"고 덧붙였다.
김태호 전 큐어세라퓨틱스 대표는 7일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 데일리안 한보라 기자
하지만 경영권 분쟁과 무관하다는 김 전 대표의 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시점이 너무 공교롭다. 경영권 분쟁의 중심에 선 신 회장이 임 부회장의 지분에 문제를 제기한 당일, 주요 매체 기자들에게 임 부회장 등 오너일가의 비위 문제를 제기하는 기자회견 초청 메일이 도착했다. 그리고 다음날 기자회견이 열렸다. 두 사안의 연관성을 논외로 두고 판단하기 힘든 상황이다.
김 전 대표는 한때 한미그룹에 몸담았던 이력이 있다. 30년 전 한미약품 무역부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약 3년 6개월간 근무했다. 그는 이날 간담회에서 "1996년 2월 한미약품에 입사했고, 그해 최우수사원으로 선정돼 회장실로 발탁됐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한미약품을 나온 이후 20여년간 회사와 계약이나 고용, 지분관계 등 직접적인 연관이 없었다. 현 시점에서 한미그룹 오너일가의 법인카드 사적 유용 문제를 놓고 기자회견까지 여는 이유도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다.
한미그룹 경영권 갈등은 2020년 창업주 임성기 회장 별세 후 불거졌다. 송 회장과 임 부회장 모녀는 상속세 마련을 위해 OCI그룹과의 통합을 추진했다. 형제인 임종윤·임종훈이 통합을 반대하며 분쟁이 시작됐다. 신 회장은 4자연합(송영숙·임주현·신동국·라데팡스)을 구축해 한미사이언스 지분의 의결권을 함께 행사하기로 하면서 갈등을 봉합했다.
이후 신 회장이 '경영권 영향' 목적으로 독자 지분을 늘리면서 갈등이 재점화됐다. 신 회장 측은 김 전 대표의 회견 전날인 6일 입장문을 내고 창업주 일가의 표면 지분과 실제 의결권에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다. 근거는 지난달 법원의 가압류 결정이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달 29일 임 부회장 소유 한미사이언스 주식 100억원 상당을 가압류했다. 신 회장 측은 임 부회장이 상속세 납부를 위해 에쿼티퍼스트에 한미사이언스 지분 일부를 맡긴 점을 문제 삼았다. 맡긴 주식을 에쿼티퍼스트가 시장에 팔면서 임 부회장이 그만큼의 의결권을 주주총회에서 행사하지 못했다고 봤다.
신 회장 측은 위약벌을 청구하면서 임 부회장이 보유한 한미사이언스 지분에 대한 가압류를 함께 신청했다. 일련의 가압류 결정 과정에서 매각 사실이 확인됐다는 것이 신 회장 측 주장이다. 가압류는 재산을 임시로 묶어두는 조치다. 약속 위반이 법적으로 확정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신 회장 측은 이를 근거로 창업주 일가의 실질 의결권을 다시 계산했다. 송 회장과 임 부회장, 임종훈 한미정밀화학 대표가 에쿼티퍼스트에 넘긴 한미사이언스 지분 6.6%가 대부분 시장에 매각됐다는 주장이다. 이 물량을 빼면 창업주 일가의 실질 의결권은 34.4%로 신 회장 측 35.1%에 오히려 뒤진다는 계산이다.
다만 이는 신 회장 측 일방적 주장이라는 반론이 나온다. 복수의 관계자는 "몇 년 전 공시까지 끝난 거래를 지금 지분 문제로 엮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게다가 담보 주식의 매각 여부는 거래 당사자인 에쿼티퍼스트 외에는 확인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실제 매각 여부와 규모가 이번 소송의 핵심 쟁점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김 전 대표의 제보에 대해 한미그룹은 개선 조치가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미그룹 관계자는 "과거 관례적으로 해 온 조직 운영에 개선할 부분이 있다면 투명하게 고쳐 나가면 되고, 이미 지난해부터 내부 규정 개선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과거에 함몰돼 미래를 막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전문경영인 체제를 중심으로 나아가겠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