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 한국 가수가 그래미 거부하는 시대
입력 2026.08.03 06:00
수정 2026.08.03 06:00
방탄소년단.ⓒ빅히트뮤직
과거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 벌어졌다. 바로 한국 가수가 한국에서 한국어로 그래미상 출품을 거부했는데 그래미 측이 해명한 사건이다.
이게 상상초월의 사태인 이유는 그래미상이 미국 시상식이기 때문이다. 한국 가수가 미국 그래미상과 연관이 있을 거라는 생각 자체를 아무도 하지 않았었다. 과거에 우리나라의 어떤 가수가 진지하게 그래미 거부를 선언했다면 국내에서 웃음거리가 됐을 것이고 그래미 측을 포함한 해외에선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방탄소년단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한국어로 "저희는 올해 그래미에 출품하지 않기로 했다"며 "음악이 지역이나 언어로 구분되기보다 음악 그 자체로 들리고 사랑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힌 것이다. 그러자 만 하루도 되지 않아 그래미 측에서 최고경영자(CEO) 명의의 해명문이 나왔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방탄소년단이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고 슬펐다. 아시안팝 부문은 아시아에서 나오고 있는 팝 예술의 깊이와 다양성, 탁월성을 가리기 위해 신설됐다. 중요한 아티스트들을 특별히 조명하기 위한 것일 뿐 구분 지으려는 것이 아니다. 장르 카테고리에 음악을 출품한다고 해서 본상 부문에서 제외되는 것이 아니다."
이번 일은 방탄소년단의 국제적 위상이 단적으로 드러난 사건이다. 그들이 한국어로 거부 선언을 하자 그래미 측이 즉시 반응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많은 외신도 이 사건을 다뤘다. 영국 가디언은 "부드럽지만 강렬한 비판"이라고 했고 미국 코스모폴리탄은 "방탄소년단이 아시아 팝 부문 상을 거부한 건 옳았다"고 했다. 빌보드는 "그래미 어워즈는 탄탄한 시청자 층을 잃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래미상 급의 스타가 아닌 사람이 뜬금없이 거부 선언을 했다면 이런 반응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반응은 전 세계가 방탄소년단을 그래미상을 받을 뮤지션이라고 여긴다는 뜻이다. 만약 70~80년대에 누군가가 “미래에 한국 가수가 그래미상을 거부하는 시대가 온다‘고 했으면 헛소리로만 치부됐을 텐데, 정말 방탄소년단은 기적적인 존재다.
방탄소년단이 거부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많은 이들은 지난달인 6월에 있었던 그래미 측의 발표를 원인으로 지목한다. 당시 그래미는 '베스트 아시안 팝 뮤직 퍼포먼스' 등 5개의 부문이 신설된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곧바로 논란이 터졌다. 아시아 가수들을 본상에서 격리하기 위한 신설 아니냐는 비판이었다.
그리고 이달에 방탄소년단이 그래미 거부를 선언했으니 결국 이런 격리·차별 시도에 대한 저항으로 해석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래미의 해명도, ‘아시아 아티스트들을 특별히 조명하기 위한 것일 뿐 구분 지으려는 것이 아니다’, ‘이 부문 대상자도 본상을 받을 수 있다’는 취지의 내용으로 나왔다.
지금 많은 매체들은 음악을 지역과 언어를 기준으로 묶는 ‘아시안 팝’이라는 부문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논리적으로 확실하게 맞아 떨어져야만 하는 건 아니다. 아시안 팝이 이상한 개념이긴 하지만 이런 부문을 통해서라도 우리 가수들이 많이 조명 받는다면 나름 의미는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문제는 그래미 측의 선의를 믿을 수 없다는 데 있다. 만약 방탄소년단이 압도적인 세계적 스타로 자리 잡기 전에 그래미가 이런 부문을 만들었다면, ‘아 정말로 그래미가 아시아 가수들을 조명할 생각이 있구나’라고 믿었을 것이다.
그동안 그래미는 방탄소년단을 이용만 하면서 상을 주지 않고 버티는 듯한 모습이었다. 방탄소년단이 무려 5차례나 후보에 올랐고 시상자나 축하공연도 했지만 무관이었다. 그래미 시상식은 매해 방탄소년단을 내세우면서 그 수혜를 톡톡히 누렸다. 방탄소년단 공연을 마지막에 배치해 시상식 전체의 시청률을 끌어올리는 식이었다.
하지만 상을 안 주고 활용만 하는 데엔 한계가 있다. 그래서 또 다시 방탄소년단을 초청해서 활용하기 위해선 상을 줘야만 하는 상황이 됐고 그러자 본상을 주지 않기 위해 베스트 아시안 팝 뮤직 퍼포먼스 부문 신설이라는 꼼수를 부린 것 아니냐는 의심이 나온다.
그래미상이 그동안 워낙 백인 중심의 차별적 행태를 보여왔기 때문에 이런 의심에 국제적으로 공감대가 형성돼 왔다. 그래미의 이러한 차별적 행태에 대해 과거 위켄드, 비욘세, 제이지, 아리나나 그란데, 저스틴 비버, 칸예 웨스트, 드레이크, 원디렉션의 제인 말리크, 니키 미나즈, 위즈 칼리파, 테야나 테일러, 피오나 애플, 에미넴 등의 거물급 뮤지션들이 일시적 또는 장기간 거부 움직임을 보여왔다.
이제 방탄소년단이 그런 거물급 그래미 거부 뮤지션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이것이 부당한 권력에 대한 저항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외신과 팬들의 지지 목소리가 나온다. 그래미가 그동안 워낙 신뢰를 잃었기 때문에 벌어진 사태다.
가장 좋은 것은 그래미 측의 해명대로 베스트 아시안 팝 뮤직 퍼포먼스 부문이 케이팝 격리소로 운영되지 않는 것이다. 국제 스타로 뜬 케이팝 가수들에게 각각의 성과에 합당하게 베스트 아시안 팝 뮤직 퍼포먼스 부문과 본상들이 주어진다면 문제가 없다. 이건 앞으로 그래미 측이 방탄소년단을 비롯한 많은 이들에게 믿음을 줘야 하는 문제다.
어쨌든 이번 일을 통해서 한국도 팝의 중심 중의 하나가 됐다는 게 확인됐다. 한국에서 한국어로 그래미 거부 선언을 했더니 그래미가 해명하고 세계가 반응하는 시대. 방탄소년단은 정말 놀라운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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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하재근 문화평론가
※외부 필진 칼럼입니다.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