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 국적 꼬리표 붙인 그래미…방탄소년단은 한국어로 답했다 [초점]
입력 2026.07.30 10:51
수정 2026.07.30 10:53
‘아시안 팝’ 신설에 2027 그래미 출품 거부…‘인정 확대’와 ‘분리’ 사이
인종차별은 언제나 문을 걸어 잠그는 방식으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때로는 “당신들을 위한 자리를 따로 마련했다”는 친절한 얼굴로 찾아온다. 미국 레코딩 아카데미가 신설한 ‘베스트 아시안 팝 뮤직 퍼포먼스’ 부문이 그렇다. 아시아 음악을 인정하겠다며 새 의자를 내놓았지만, 방탄소년단은 그 의자에 앉는 대신 2027년 그래미 어워드에 음악을 출품하지 않기로 했다.
방탄소년단 ⓒ빅히트 뮤직
방탄소년단은 29일 각자의 인스타그램에 같은 한국어 성명을 올렸다. “올해 그래미 어워드에는 출품하지 않기로 했다”며 “음악이 지역이나 언어로 나뉘지 않고 음악 그 자체로 듣고 사랑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수상을 요구하거나 지난 결과에 불만을 드러내는 대신, 자신들을 평가하는 기준 자체에 질문을 던졌다.
그래미 측은 지난달 ‘베스트 아시안 팝 뮤직 퍼포먼스’를 신설했다. 케이팝(K-POP)과 제이팝(J-POP), 씨팝(C-POP) 등을 포괄하며 한 개 이상의 아시아 언어가 ‘의미 있게’ 사용돼야 한다. 전곡이 영어인 음악은 대상에서 제외된다. 그래미 측은 아티스트의 인종이나 국적이 아니라 음악적 형식으로 출품 자격을 판단한다고 설명했지만, 그 형식을 규정하는 핵심 조건 가운데 하나가 출신 지역과 언어라는 점에서 모순은 남는다.
영어권의 팝은 굳이 ‘영미 팝’이라 불리지 않는다. 팝이라는 보편적인 명사로 남는 반면, 아시아에서 만들어지고 아시아 언어로 불린 음악에는 별도의 국적 꼬리표가 붙는다. 영어권 음악은 장르에 따라 평가하면서 아시아 음악만 대륙과 언어로 묶는 것은 의도와 관계없이 인종차별적인 분류다.
그래미가 이러한 논란을 겪은 것은 처음이 아니다. 흑인 음악을 가리키는 데 사용했던 ‘어반’을 ‘베스트 어반 컨템퍼러리 앨범’이라는 부문명에서 삭제했고, ‘베스트 월드 뮤직 앨범’도 식민주의적 시선으로 세계 각국의 음악을 한데 묶는다는 지적에 따라 ‘베스트 글로벌 뮤직 앨범’으로 바꿨다. 표현은 고쳤지만 중심과 주변을 나누는 방식은 ‘아시안 팝’이라는 이름으로 되풀이됐다.
라틴 음악과 비교하면 아시아 음악을 향한 그래미의 반응이 얼마나 늦었는지도 드러난다. 그래미에는 1975년 ‘베스트 라틴 레코딩’이 신설됐고, 1984년부터는 ‘베스트 라틴 팝 퍼포먼스’가 존재했다. 그런데 스페인어 앨범이 최고상인 올해의 앨범을 받은 것은 배드 버니가 수상한 2026년이 처음이었다. 별도 부문이 곧 동등한 평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방증이다.
물론 새 부문은 아시아 음악인들에게 기회를 넓힐 수 있다. 하비 메이슨 주니어 레코딩 아카데미 최고경영자도 로이터를 통해 분리가 아닌 인정의 확대이며, 올해의 앨범·노래·레코드 등 일반 부문 출품에는 제한이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별도의 상이 주류로 향하는 입구가 될지, 아시아 음악을 한곳에 머물게 하는 울타리가 될지는 제도의 작동 방식에 달렸다.
방탄소년단은 지금까지 그래미에 다섯 차례 후보로 올랐지만 수상하지 못했다.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후보에 오른 곡은 영어 싱글 ‘다이너마이트’(Dynamite), ‘버터’(Butter), 콜드플레이와의 협업곡 ‘마이 유니버스’(My Universe)였다. 한국어 음악으로 세계 시장의 문을 연 이들이 그래미의 중심부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순간은 영어와 서구권 팝의 문법을 통과했을 때였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의 시상식을 향한 이번 입장을 한국어로 먼저 밝혔다는 점은 상징적이다. 세계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늘 영어로 자신을 설명해야 했던 아시아 음악인의 관습을 뒤집었다. “언어로 나누지 말라”는 말을 상대가 익숙한 언어로 번역해 건네기보다 한국어 그대로 읽게 했다.
아시아 음악을 존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울타리를 더 정교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한국어로 부른 팝도 팝으로 들을 수 있는 귀를 갖추는 일이다. 음악에는 번역이 필요할 수 있지만 서열까지 필요하지는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