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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왜 착각하는가? [정상환의 시대읽기]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6.09.17 18:00
수정 2026.09.1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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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아진 천장·막히는 길…권력 상실은 일상에서

"국민은 모르지만 나는 안다"…독선 되는 순간

권력은 임대할 수 있어도 소유할 수 없다

박수 치는 참모 아닌 "아닙니다" 할 사람 필요

이재명 대통령이 16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2026년 제1차 한·중앙아시아 정상회의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우리나라 대통령이 5년의 임기를 마치고 권력의 상실을 제일 먼저 실감하는 것은 의외로 사소한 것들이다.


먼저 낮아진 천장이다.


그동안 청와대의 넓고 천장 높은 집무실과 관저에 익숙했는데 돌아온 사저의 서재나 거실은 비좁다. 답답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권력은 공간에서부터 사라진다.


다음은 막히는 길이다.


현직일 때는 경호상 교통을 통제하여 막힘이 없다. 그러나 퇴임하는 순간부터 신호를 기다리고 체증에 갇힌다. 슬슬 짜증이 난다.


권력의 스피드는 정체된다.


그리고 기다려야 하는 식사다.


청와대에서는 출출할 때 언제든 전담 요리사들이 맛난 음식을 만들어 온다. 그러나 사저에서는 입맛 따라 그때그때 맛보기는 쉽지 않다. 자칫 눈총을 받을 수도 있고, 배달 앱을 뒤적여야 한다.


권력의 입맛은 채워지지 않는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권력의 변화는 거창한 의전보다 이런 일상에서 먼저 체감된다.


천장의 높이, 자동차의 속도, 식탁 위의 음식까지 달라진다.


그리고 그제야 현타가 온다.


내가 누렸던 그 모든 편의와 특권은 '나의 능력'이 아니라 '대통령이라는 자리'에서 나온 것이었다는 사실을.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달려오고, 그 권력을 유지하느라 애쓰는 동안 정작 권력의 정점에서는 이 권력에도 유효기간이 있다는 사실을 잊게 된다.


대통령도 5년 임기의 기간제라는 사실을 망각한다.


그래서 대통령들은 착각하게 된다.


'역사에 남는 대통령이 되려는' 착각


첫째는 역사에 남는 대통령이 되려는 착각이다.


특히 5년 단임제에서는 이 유혹이 크다. 다시 국민의 선택을 받을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임기 안에 반드시 훌륭한 무언가를 해내야 한다는 조급함도 생긴다.


그래서 대통령은 국민이 원하는 것보다 국민에게 필요한 것, 나라에 필요한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훗날 나의 애국심과 진정성을 국민이 알아줄 것이라 기대하면서 말이다.


"국민 지지도에 연연하지 않고 국정에 전념하겠다."


아마 이 말은 진심일 것이다.


물론 대통령은 여론조사만 따라가는 자리가 아니다. 당장 반발을 부르더라도 국가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면 국민을 설득해 추진해야 한다.


문제는 '국가에 필요한 것'과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을 혼동하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국민은 잘 모르지만 나는 안다"는 생각이 굳어지면 소신은 독선이 되고, 애국심은 도그마(dogma)로 변한다.


'나의 영향력이 지속될 것'이라는 착각


둘째는 퇴임 후에도 지금 권력의 어느 정도는 남아 있을 것이라는 착각이다.


현직 대통령에게는 수많은 권한이 있다. △정치 △사회 △문화 △외교 △안보 등 거의 모든 분야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러나 그 직이 사라지는 순간 대통령으로서의 영향력은 급격히 사라진다.


전직 대통령에게 명예와 상징성, 정치적 영향력이 남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자체발광이 아니라 반사광일 뿐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도 권력을 잃는 순간 대통령으로서의 결정권을 잃었다. 거대한 대통령실과 정부 조직, 수많은 참모와 측근이 사라지고 나면 결국 개인만 남는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다르지 않다.


한때 청와대를 중심으로 움직이던 거대한 권력은 사라졌다. 문재인 정부를 지지했던 정치세력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각자의 정치적 이해에 따라 움직였다.


특정 대통령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모든 대통령의 운명이다.


권력은 임대할 수는 있어도 소유할 수 없다.


임기가 끝나는 순간 국민이 다시 거두어가기 때문이다.


'끝까지 내 편으로 남을 것이다'라는 착각


셋째는 지금의 사람은 그대로 남아 있을 거라는 착각이다.


권력의 주변에는 늘 사람이 꼬인다.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대통령을 지키겠습니다." "역사가 평가할 것입니다."


그러나 권력이 사라지면 사람도 사라진다. 새로운 권력이 들어서면 어제의 측근이 오늘은 거리를 두고, 어제의 충신이 오늘은 새로운 권력의 주변에 서성인다.


그래서 퇴임 후 사저로 함께 가는 비서진, 이른바 '순장조'를 찾기도 어려워진다.


사람이 나빠서가 아니다. 생활인으로서 자구책일 뿐이다.


그렇다고 섭섭해하거나 배신감을 가질 필요도 없다.


정치는 권력의 현실 위에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통령이 알아야 할 것은 누가 지금 내 편인가가 아니다.


내가 권력을 잃었을 때도 누가 내 곁에 남는가이다.


권력이 사라지고 나서야 진짜 사람과 권력 때문에 만들어진 사람이 구별된다.


어쩌면 대통령이 퇴임하면서 가장 먼저 잃는 것은 권력이 아니라 사람일지도 모른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


이러한 착각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대통령의 진짜 능력인지도 모른다.


대통령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역사에 기억되겠다는 거창한 기대가 아니다.


'역사에 무엇을 어떻게 남길 것인가'를 겸허히 고뇌하는 태도다.


"내가 옳다"는 확신은 대통령을 강하게 만든다.


그러나 "혹시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성찰은 대통령을 현명하게 만든다.


작금의 정치 상황을 보더라도 그렇지 않은가.


국민주권정부를 표방하는 이재명 정부라면 국민의 뜻을 일이 잘 풀릴 때만 레퍼런스로 삼아서는 안 된다.


오히려 어려움에 마주쳤을 때 그 의미를 더 되새겨야 한다.


물론 대통령은 여론조사만 따라가는 자리가 아니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는 국민주권정부라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불편한 여론일수록 더 무겁게 들을 필요가 있다.


현재 국정 수행에 대한 긍정평가가 30%대에 머물고 있고,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민의 평가 역시 우호적이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인사를 강행한다면 국민주권을 말하는 정부가 정작 국민의 목소리를 얼마나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묻게 된다.


공소취소 논란이나 대통령 연임을 둘러싼 개헌 논의, 부동산 정책을 둘러싼 논란에서도 마찬가지다.


국민의 부정적 여론에도 자신의 논리를 앞세운다면 국민에게는 결국 '내가 옳으니 따라오라'는 권력의 오만으로 읽힐 수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역시 평가와 별개로 생각해볼 대목이 있다.


당시에는 국가와 국정을 바로잡기 위한 결정이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자신이 국가와 국정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확신을 스스로 제어할 장치가 없었다는 데 있다.


이런 착각에서 벗어나는 일을 대통령 개인의 통찰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


실질적인 '현타'를 일깨울 수 있는 시스템의 마련도 고민해볼 만하다.


그래서 나는 대통령의 레드팀(Red Team)을 제안한다.


군사·안보 분야에서 레드팀은 상대의 입장에서 아군의 작전을 공격하며 허점을 찾는다.


대통령의 결정에도 이런 장치가 필요하다.


대통령의 생각을 뒷받침하는 보고가 아니라 대통령의 논리를 깨뜨리는 보고를 올리게 하는 것이다.


대통령에게 필요한 참모는 박수를 잘 치는 사람이 아니다.


"대통령님, 그건 아닙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정책이 실패한다면 어떤 모습일지, 국민은 왜 반대할지, 예상하지 못한 비용과 부작용은 무엇인지 집요하게 따져야 한다.


수명(受命)의 조직이 아니라 항명(抗命)의 조직 말이다.


레드팀이 제대로 구성된다면 대통령의 착각은 절반쯤 줄일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안타깝게도 대통령에게 맞서는 배짱 있는 보좌진이 있을지...


그냥 작은 아이디어니 잊으시라.


오늘의 대통령도 결국 내일의 전직 대통령이다.


내 집으로 돌아왔을 때 비록 천장은 낮고 길은 막힐지라도, 정겨운 식탁이 기다리고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대통령은 기간제다.


이것을 잊는 순간, 착각은 시작된다.


글/ 정상환 자유시장연구소 연구위원


※외부 필진 칼럼입니다.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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