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고용, '의무' 아닌 '핵심 가치'…순천향대 서울병원이 만든 '특별한 일터'[인터뷰]
입력 2026.07.28 10:21
수정 2026.07.28 10:37
장애인고용위원회 출범…의료기관 맞춤형 고용 체계 구축
의료진이 직접 채용 참여…환자 특성 고려한 일자리 연계
“병원의 ‘인간사랑’ 정신…구성원이 자부심 갖는 조직문화 구축”
(왼쪽부터) 김태형 순천향대 서울병원 연구부원장(감염내과 교수)과 송지영 사회사업팀장, 신종준 인사노무팀장이 15일 병원에서 데일리안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순천향대 서울병원
장애인 의무고용 제도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숫자 채우기’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환자 안전과 감염관리, 개인정보 보호 등 업무 제약이 엄격한 의료기관에서는 장애인에게 적합한 직무를 발굴하고 이들의 안정적인 정착을 지원하는 환경을 갖추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에 있어 장애인 고용은 고통스러운 ‘의무 이행’의 과정이 아니다. 병원 내 존재하는 ‘장애인고용위원회’, 적합 직무 개발부터 장기근속 지원까지 이어지는 ‘선순환 고용 모델’ 등 접근 방식 자체가 다르다. 장애인 채용을 단순한 법적 의무 이행을 넘어, 병원의 핵심 가치인 ‘인간사랑’ 정신과 조직문화로 승화시키려는 의도가 담겨있다.
지난 15일 병원의 새로운 고용 패러다임을 설계해 나가는 김태형 연구부원장(감염내과 교수)과 송지영 사회사업팀장, 신종준 인사노무팀장을 만나 위원회가 그리는 병원 현장의 변화와 향후 과제를 짚어봤다.
환자를 넘어 ‘동료’로…의무 아닌 ‘문화’로
순천향대 서울병원의 상시근로자는 약 1700명으로, 이 가운데 장애인 근로자는 법정 의무고용률(3.1%)에 해당하는 50여 명이다. 이들은 주로 원무와 수납 창구 등에 배치돼 진료비 정산과 접수 안내, 사무보조 등의 업무를 맡고 있다.
이들의 채용과 관리는 올해 출범한 장애인고용위원회를 통해 체계적으로 이뤄진다. 위원회 출범의 바탕에는 병원이 오랫동안 실천해 온 ‘인간사랑’ 정신이 있다. 무수혈 진료를 비롯해 희귀질환자와 장애인, 외국인 등 다양한 환자를 진료해 온 경험이 직원 고용과 포용 문화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김태형 연구부원장은 “현재 장애인 고용 성과가 다른 병원보다 특별히 앞서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면서도 “법적 기준을 맞추는 데 그치지 않고 조금 더 인도주의적인 시각에서 장애인 고용을 고민해보자는 취지로 위원회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병원은 오래전부터 사회적 약자와 다양한 배경의 환자를 진료하며 인간사랑 정신을 실천해온 병원”이라며 “위원회 역시 새로운 사업이라기보다 병원이 추구해온 가치가 자연스럽게 이어진 결과”라고 설명했다.
김태형 순천향대 서울병원 연구부원장(감염내과 교수)이 15일 병원에서 데일리안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순천향대 서울병원
장애인 채용을 위한 직무 개발과 적합한 인재를 발굴하기 위한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이들을 직접 진료하는 의료진이 채용 과정에 참여하는 점은 순천향대 서울병원만의 차별화된 특징으로 꼽힌다.
정신건강의학과와 소아청소년과, 재활의학과 의료진이 환자의 특성과 업무 수행 역량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적합한 직무를 제안하고, 실제 채용까지 연계하고 있다. 외부 기관의 추천에 의존하기보다 환자의 특성과 잠재력을 가장 잘 이해하는 의료진이 직접 채용 과정에 참여해 적합한 인재를 발굴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김 부원장은 “장애인을 채용한 뒤 현장 부서에만 맡기기보다는 적응 과정을 함께 살피는 지원이 필요하다”며 “이들의 특성과 어려움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함께해야 각자에게 맞는 업무를 찾고 안정적으로 근무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채용이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한 번의 근무 경험이 장애가 있는 직원에게는 다음 도전의 발판이 될 수 있다”며 “병원에서 쌓은 경험이 또 다른 의료기관이나 사회로 이어질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드는 것 역시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누구나 ‘함께 일하는’ 병원을 꿈꾸다
(왼쪽부터) 김태형 순천향대 서울병원 연구부원장(감염내과 교수)과 송지영 사회사업팀장, 신종준 인사노무팀장이 15일 병원에서 데일리안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순천향대 서울병원
위원회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채용’ 자체보다 ‘함께 오래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있다. 현재 장애인 근로자는 수납·접수 안내와 원내 동선 안내, 사무보조 등을 맡고 있지만, 병원은 개인의 역량과 특성에 맞춰 역할을 더욱 다양화할 계획이다. 물품 전달과 부서별 보조 등 새로운 업무를 발굴해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이를 통해 장기근속으로 이어지는 고용 체계를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의료기관에서 장애인에게 적합한 직무를 발굴하는 일은 쉽지 않다. 환자 안전과 개인정보 보호, 감염관리 등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단순해 보이는 안내 업무도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면 진료가 지연될 수 있고, 물품이나 기구를 정리하는 일 역시 손 위생과 감염관리 교육이 필요하다.
김 부원장은 “병원에서는 환자를 안내하거나 물품을 정리하는 일도 결코 단순하지 않다”면서도 “장애 때문에 환자 안전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충분한 교육이 필요하지만, 잘 교육받고 소통할 수 있다면 이런 일을 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고 했다.
이어 “업무에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그 직원이 새롭게 배치돼 일을 도와준다면 부서 입장에서는 고마운 동료가 될 수 있다”며 “장애인 직원마다 잘할 수 있는 일과 필요한 지원이 다른 만큼 각자의 재능과 기능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병원이 그리고 있는 모습은 장애인 근로자를 별도의 배려나 보호가 필요한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서로 다른 속도와 특성을 가진 직원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조직이다. 장애인 직원은 일을 통해 보람과 자부심을 느끼고, 함께 일하는 직원들도 포용적 조직의 구성원이라는 자긍심을 갖도록 하겠다는 의미다.
김 부원장은 “장애가 있는 직원과 없는 직원이 똑같이 행복하게 일하는 조직을 만드는 것이 인간사랑 정신을 조직문화로 구현하는 길”이라며 “장애인 직원이 자부심을 갖고 출근하고, 동료들도 함께 일한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는 병원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신종준 인사노무팀장은 “장애인을 직접 진료하는 교수들과 실무부서가 함께 고용 문제를 논의하는 시도는 대학병원에서도 흔하지 않다”며 “위원회의 논의가 직원 교육과 복지 개선으로 이어지고, 장애인 직원이 단시간 근로자가 아닌 병원의 동등한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환경을 만들어 가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송지영 사회사업팀장도 “장애인과 비장애인 직원 모두가 편안하게 일할 수 있는 포용적인 조직문화가 형성돼야 장애인 근로자의 장기근속도 가능하다”며 “병원 내부의 노력과 함께 고용을 지속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사회적·정책적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