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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해로 확산하는 중동전쟁, 기대 부푼 韓 경제 폭탄 떨군다 [전쟁이 삼킨 3·4·5]

장정욱 기자 (cju@dailian.co.kr)
입력 2026.07.21 07:00
수정 2026.07.21 07:26

중동전, 美 지상군 투입 가능성까지

에너지·물류·환율 삼중 충격 우려

반도체 호황만으로 버티기 한계

내수와 제조업 전반 충격 가능성

1일 부산 남구 신선대 부두 야적장에 수출입 컨테이너가 쌓여 있다. ⓒ뉴시스

정부가 최근 경제성장률 3%, 세계 수출 4강, 1인당 국민소득 5만 달러를 달성하겠다는 ‘3·4·5 비전’을 국가 경제 목표로 제시했으나, 국제 정세는 정반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미국과 이란의 군사 충돌이 중동 전역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커지면서다. 심지어 미국 내부에서는 지상군 투입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전쟁이 장기화하거나 호르무즈 해협과 홍해까지 전장이 확대된다면 한국 경제는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보다 더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정부가 내세운 ‘3·4·5 비전’ 경우 성장·수출·소득이라는 세 축 모두에서 상당한 부담을 안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 경제는 수출 의존도가 높은 대표적인 ‘개방경제’다. 전쟁이 확산하면 국제유가는 가장 먼저 급등한다. 중동은 우리나라 최대 원유 수입처다. 한국석유공사가 지난달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원유 수입량의 69.1%가 중동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전쟁 영향으로 중동산 원유가 상승하면 국내 전체 에너지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 단순히 자동차 기름값 급등에 그칠 일이 아니다. 에너지 가격 상승은 국내 전체 상품 생산비 증가로 직결된다. 석유화학과 철강, 시멘트, 항공, 해운 등 에너지 집약 산업은 물론 전 산업의 원가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기업 생산비 상승 투자 위축과 함께 물가를 밀어 올린다. 소비자들은 물가 상승으로 지갑을 닫게 되고 기업 매출은 떨어진다. 매출이 하락한 기업들은 비용 부담 때문에 신규 투자와 고용을 줄인다. 이런 악순환이 연속되면서 내수와 수출이 동시에 둔화하는 전형적인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현재 정부가 기대하는 3% 성장 배경은 대부분 반도체 수출 회복에 대한 기대다. 그러나 전쟁 장기화는 글로벌 IT 투자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미국과 유럽 기업들이 투자 속도를 늦추면 AI 서버와 메모리 반도체 수요 증가세 역시 둔화할 수 있다. 특히 최근 ‘AI 거품론’이 시장에 퍼지면서 반도체 호황 기대에 불안이 싹트기 시작했다. 반도체 한 품목에 의존하는 성장 전략은 외부 충격에 더욱 취약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수출 4강 목표도 적지 않은 도전에 직면한다. 중동 사태가 확대되면 가장 먼저 흔들리는 것이 글로벌 물류망이다. 분석할 것도 없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세계 원유 해상 물동량의 상당 부분은 호르무즈나 홍해를 거친다. 이곳의 선박 통항이 제한되면 국제 해상운임은 급격히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 2월 중동전쟁 발발 이후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홍해를 이용하는 선박들은 이미 아프리카 희망봉을 우회하는 사례가 늘어난 상태다. 여기에 홍해마저 불안정해지면 선박 운항 기간은 더욱 길어진다. 이에 따라 보험료와 운임 역시 급등할 게 불 보듯 훤하다.


한국 수출기업들은 물류비 부담 증가와 함께 납기 지연이라는 이중 부담을 떠안게 된다. 자동차와 조선, 철강, 기계, 석유화학 등 주력 제조업의 가격 경쟁력도 떨어질 수 있다. 수출 규모 확대를 통해 세계 4강으로 도약하겠다는 정부 전략 역시 예상보다 훨씬 어려운 환경에 놓이게 되는 셈이다.


현재 1500원대를 오르내리는 원·달러 환율 역시 부담이다.


전쟁이 격화하면 글로벌 자금은 안전자산인 달러로 몰리는 경향이 강해진다. 환율 상승은 수출기업에는 긍정적 효과인 건 사실이다. 반면 원유와 천연가스, 곡물 등 대부분의 원자재를 수입하는 한국 경제에는 수출에서 오는 이익보다 수입에서 생기는 손해가 클 수 있다.


호르무즈해협 인근 오만만 무스카트 항에 유조선들이 정박해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달러 강세로 인한 수입물가 상승은 다시 소비자물가를 자극한다. 고환율과 고물가가 동시에 나타나면 한국은행 역시 기준금리를 쉽게 내리지 못한다. 금리 부담이 이어지면 가계 소비와 기업 투자 모두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결국 국민소득 5만 달러 목표에도 영향을 미친다. 1인당 국민소득은 경제성장뿐 아니라 환율 영향을 크게 받는다. 원화 가치가 하락하면 달러 기준 국민소득은 자동으로 감소한다. 실제로 과거에도 원화 약세가 심했던 시기에는 국내총생산(GDP)이 증가했음에도 달러 기준 국민소득은 오히려 줄어든 사례가 적지 않았다.


여기에 기업 실적 악화와 투자 감소, 임금 상승 둔화까지 겹치면 국민소득 증가 속도 역시 크게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실제 중동 전쟁 장기화에 따라 물류비 상승과 원부자재 수급 불안 등 국내 중소기업이 겪은 피해가 1000건을 넘어섰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지난 16일 기준 중동 전쟁 관련 중소기업 피해·애로 및 우려 접수 건수를 파악한 결과 총 1010건으로 전주 대비 13건 늘었다. 이 중 실제 피해·애로 사례는 785건으로 전주 대비 11건 증가했다. 우려 사항은 155건으로 2건 많아졌다.


피해·애로 유형(중복 응답)을 보면 물류비 상승이 302건(38.5%)으로 가장 많았고, 운송 차질(37.8%), 계약 취소·보류(31.1%), 출장 차질(16.2%), 대금 미지급(12.6%) 등이 뒤를 이었다. 우려 사항 역시 운송 차질 우려가 99건(63.9%)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가장 중요한 변수는 전쟁의 범위와 기간이라고 진단한다. 단기간 충돌에 그친다면 한국 경제가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겠지만, 미국의 지상군 투입과 이란의 전면 대응으로 중동 전역이 장기전에 들어가면 상황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정형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세계지역연구1센터 선임연구위원은 지난달 18일 ‘2026년 중동 지정학 충격과 한국 공급망 위험의 변화’ 보고서에서 공급망 위험은 단순한 물량 부족이 아니라 ‘복합 충격’으로 진화할 것으로 분석했다.


정 위원은 “최근 공급망 위험은 단순한 수입 감소가 아니라 가격 상승과 물량 감소가 동시에 나타나는 복합 충격의 형태로 전개되고 있으며, 이는 기업의 실제 조달 부담과 생산비용 증가로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중동발 에너지·석유화학 원료 공급 차질 충격은 화학소재와 전략 중간재를 거쳐 제조업 공급망 전반으로 확산하는 양상을 보였다고 밝혔다. 공급망 위험이 특정 품목의 문제가 아니라 제조업 운영과 조달체계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 위험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설명하는 내용이다.


결국 정부가 제시한 ‘3·4·5 비전’ 성패는 국내 정책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중동전쟁이라는 대외 변수와 에너지 가격, 글로벌 물류망, 환율, 세계 경기 흐름이 동시에 맞물리는 복합적인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전문가들은 지금 한국 경제에 필요한 것은 낙관적인 목표 제시보다 전쟁 장기화에 대비한 에너지 공급망 안정, 수출시장 다변화, 물류망 확보, 내수 회복을 위한 선제 대응이라고 말한다. 3·4·5 비전은 여전히 달성 가능한 목표일 수 있겠으나, 중동발 지정학적 위기가 현실화하는 순간 그 목표까지 가는 길은 예상보다 훨씬 험난해질 가능성이 크다.

장정욱 기자 (cju@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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