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해도, 이직해도 괜찮을까"…AI에게 운명을 묻는 청년들 [Now 2.30]
입력 2026.07.03 11:23
수정 2026.07.03 11:23
생성형 AI에 생년월일 입력해 사주·궁합 상담
미래 예측보다 생각 정리…심리 안전망 역할
"성과주의 사회의 역설…통제 불가능한 현실 영향"
해당 이미지는 AI로 제작됨.
# 이 사람이랑 결혼해도 괜찮을까? 내년 결혼을 앞둔 직장인 김 모(31)씨는 최근 몇 달 동안 생성형 인공지능(AI)에게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예비 배우자와의 궁합은 물론 결혼 이후 성격 차이와 갈등 가능성, 자녀 계획까지 AI와 여러 차례 대화를 나눴다.
결혼을 앞두고 주변에서는 "결혼은 현실"이라는 조언이 끊이지 않았다. 직장 생활과 집 마련, 양가 부모와의 관계까지 고려해야 할 일이 늘어나면서 자신의 선택이 맞는지 확신하기 어려웠다. 그 때마다 그는 챗GPT를 켜고 재차 질문을 던졌다. 김 씨는 "AI가 결론을 내려주지는 못하지만 생각을 정리하는 데는 도움이 됐다"며 "불안할 때마다 AI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내가 진짜 고민하는 게 무엇인지 스스로 알게 됐다"고 말했다.
취업과 이직, 연애, 결혼 등 인생의 중요한 갈림길 앞에서 생성형 AI를 찾는 2030세대가 늘고 있다. 과거 철학관이나 점집을 찾았다면 이제는 챗GPT와 클로드, 사주 전문 AI 서비스가 그 자리를 대신하는 모습이다.
개인의 노력과 선택이 강조되는 시대지만 정작 청년들은 자신의 힘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취업은 물론 연애와 결혼마저 스펙과 조건으로 평가받는 경쟁의 영역이 되면서 선택의 부담은 커졌지만 결과를 예측하기는 더 어려워졌다. 청년들이 생성형 AI를 통해 사주와 궁합을 묻는 것은 통제할 수 없는 미래를 이해하고 불안을 완화하려는 시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해당 이미지는 AI로 제작됨.
"내 사주 좀 봐줘"…AI 찾는 청년들
취업을 준비 중인 이 모(28)씨는 친구들이 공유한 'AI 사주 프롬프트'를 챗GPT에 입력해본 것을 계기로 관련 서비스를 꾸준히 이용하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단체대화방 등을 통해 프롬프트가 확산되면서 주변에서도 AI 사주를 이용하는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씨는 "처음에는 지인들이 재미 삼아 해보라고 해서 시작했는데 AI가 단순히 사주 결과만 알려주는 게 아니라 '올해 남은 기간 동안 무엇을 준비하면 좋은지', '어떤 계획을 세우면 좋은지'까지 체크리스트 형태로 정리해줘 만족스러웠다"고 말했다.
특히 AI가 자신의 상황을 기억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그는 "AI는 평소 내가 어떤 고민을 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상황에 맞는 조언을 해준다"며 "철학관에서는 내 상황을 자세히 모르지만 AI는 이전 대화 내용을 바탕으로 조언해줘 더 와 닿았다"고 말했다. 이어 "취업 준비로 불안할 때 예전에 AI가 해줬던 사주 결과를 다시 읽어보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 취재 과정에서 만난 청년들은 AI 사주를 맹신하지는 않았다. 다만 미래를 예측하기 위한 수단이라기보다 불안감을 낮추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도구로 활용하고 있었다.
직장인 한 모(35)씨는 이직을 고민하던 시기에 오프라인 사주를 본 경험이 있다.
그는 "사주에서 '지금은 이직 운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실제 이직에 실패한 뒤에는 '원래 운이 안 좋은 시기였구나'라고 생각하며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며 "좋게 말하면 심리적 안정감이고 나쁘게 말하면 자기합리화 장치가 된 셈"이라고 말했다.
이후 AI 사주도 경험한 한 씨는 "오프라인 사주는 가끔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면서 몰입이 깨지는 경우가 있는데 AI는 훨씬 캐주얼하고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의 조언을 해준다"며 "누군가에게 털어놓기 어려운 고민도 부담 없이 이야기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했다.
AI 사주 시장이 커지는 배경에는 낮은 비용과 접근성도 자리하고 있다.
직장인 박 모(29)씨는 "실제 철학관이나 타로를 보러 가면 비용 부담도 크고 낯선 사람을 만나야 하는 부담도 있다"며 "AI는 1000원 정도의 적은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고 내가 원하는 부분만 취사선택할 수 있어 더 선호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의사결정을 대신 내려주지는 못하지만 왜 내가 불안한지 스스로 생각을 정리하는 데는 도움이 된다"며 "결국 미래를 맞히는 것보다 현재의 불안을 희석시키는 기능에 가깝다"고 덧붙였다.
해당 이미지는 AI로 제작됨.
2030이 점술을 찾는 이유는 '불안'
청년들이 AI 사주를 찾는 배경에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 자리하고 있다.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전국 만 13~69세 남녀 1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6 점·사주·타로 등 점술 관련 인식 조사'에 따르면 점·사주·타로 등을 보는 이유로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는 응답이 54.2%로 가장 많았다. '방향성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라는 응답도 33.8%를 차지했다.
특히 점술 서비스 이용 경험은 62.3%에 달했다. 20대와 30대의 이용 경험률은 각각 70.0%, 72.0%로 전 연령층 가운데 가장 높았다.
지난해 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다. 전체 응답자의 60.3%가 점술 서비스에 관심이 있다고 답했으며 관련 정보는 주로 유튜브(50.5%), 친구·지인(39.6%), SNS(32.6%) 등을 통해 접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청년들이 단순한 호기심이나 재미를 넘어 삶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심리적 위안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점술 콘텐츠를 활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성과주의 시대의 역설…다시 '운명' 찾는 2030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이 불확실성이 커진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 세대의 불안을 반영한다고 분석한다. 과도한 경쟁과 좁아지는 계층 이동의 사다리 속에서 청년들은 끊임없이 선택을 강요받지만 그 결과는 경기 침체와 노동시장 변화 등 개인이 통제하기 어려운 요인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결국 개인의 선택과 노력, 성취를 강조하는 현대 사회일수록 청년들은 역설적으로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한 설명과 위안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송재룡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인간은 예로부터 불확실한 미래를 어떻게 헤쳐 나갈 지에 대한 고민을 안고 살아왔고 그 과정에서 점술과 종교를 통해 심리적 위안과 방향성을 얻어왔다"며 "오늘날 청년들이 AI를 활용한 사주와 궁합 서비스를 찾는 것 역시 불확실한 현실 속에서 삶을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현대 사회는 개인에게 끊임없이 선택을 요구하면서도 그 결과에 대한 책임 역시 개인에게 귀속시키는 경향이 강하다"며 "청년들이 AI를 통해 운명을 묻는 것은 자신의 노력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현실을 받아들이고 미래에 대한 불안을 완화하려는 행동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취재에 응한 청년들 역시 AI를 의사결정을 대신 내려주는 존재로 보기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확인하고 감정을 정리하는 보조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미래를 예측하는 점쟁이라기보다 언제든 접속해 고민을 털어놓고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는 상담 창구에 가깝다는 것이다.
다만 AI가 사용자의 성향과 기존 생각을 학습해 맞춤형 답변을 제공하는 만큼 특정 판단을 강화하는 자기확증편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송 교수는 "AI는 신속한 답변은 제공할 수 있지만 인간처럼 스스로를 반성하고 성찰하는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며 "중요한 삶의 결정을 AI에 전적으로 의존하기보다 감정을 정리하고 불안을 완화하는 보조적 도구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