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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안 플라자] 반도체는 AI가 아니다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6.07.02 07:00
수정 2026.07.02 07:00

반도체는 쌀, AI 플랫폼은 그 쌀로 만든 요리

정치는 공장 옮겨도 미래는 못 옮겨

산업정책이 '산업정치'가 돼선 안 돼

국가는 셰프 아닌 주방을 만들어야

이재명 대통령이 30일 광주 김대중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서남권 첨단산업 발전비전 국민보고회에 앞서 SK하이닉스의 AI 반도체 전시물을 살펴보고 있다. ⓒ 뉴시스

반도체는 AI가 아니다.


이 한 문장을 이해하는 나라와 이해하지 못하는 나라의 격차는 앞으로 더욱 벌어질 것이다.


반도체를 흔히 '산업의 쌀'이라고 한다. 쌀 없이 밥을 지을 수 없듯 반도체는 AI 시대에도 가장 중요한 기반이다. 한국은 이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이끄는 초일류 기업이자,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자산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얼마나 더 만들 것인가'에 머물러 있다. 어느 지역에 공장을 지을 것인가, 누가 투자를 유치할 것인가를 산업정책의 핵심처럼 이야기한다. 하지만 미래 산업의 승부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AI 시대의 승부는 제조 경쟁력 위에 어떤 플랫폼과 생태계를 쌓느냐에서 갈린다.


쌀은 중요하다. 그러나 쌀만으로는 부가가치를 만들 수 없다. 좋은 종자가 있어야 하고, 비료와 농기계가 있어야 하며, 숙련된 농부도 필요하다. 그래도 끝이 아니다. 가장 큰 돈은 논에서 벌어지지 않는다. 식탁에서 벌어진다. 세계인이 줄 서는 식당을 만든 사람이 결국 가장 큰 부가가치를 가져간다.


AI 시대도 다르지 않다. 반도체는 쌀이다. 소재·부품·장비는 비료와 농기계다. AI 플랫폼과 소프트웨어는 그 쌀로 만든 요리다. 진짜 경쟁은 공장이 아니라 식탁에서 시작된다.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의 쌀을 만들지만, 세계인이 가장 많이 찾는 식당은 아직 우리의 것이 아니다.


삼성과 SK하이닉스는 막대한 전력과 용수, 수십조 원의 투자,우수한 인재와 거대한 산업단지를 기반으로 세계 최고의 반도체를 만든다. 이것은 대한민국 제조업의 위대한 경쟁력이다. 그러나 제조 경쟁력만으로 AI 생태계를 선도할 수는 없다.


엔비디아는 다른 길을 걸었다. 그들은 공장보다 설계와 생태계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더 큰 공장을 지었거나 더 넓은 산업단지를 확장해서가 아니다. 더 뛰어난 설계, 더 뛰어난 소프트웨어, 그리고 더 뛰어난 인재를 모아 세계 AI 생태계의 중심에 섰다. 구글도, 오픈AI도 마찬가지다.


AI 시대의 부가가치는 공장의 굴뚝보다 아이디어와 플랫폼에서 훨씬 크게 폭발한다.


여기서 정부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도 처음부터 정부가 지휘해서 만든 것은 아니었다. 1983년 삼성이 모두가 무모하다고 했던 메모리 반도체 산업에 뛰어들었을 때, 정부가 기업 대신 반도체를 직접 만들지 않았다.


대신 배후에 산업단지를 조성했고, 전력과 용수를 공급했으며, 정책금융으로 장기 투자를 뒷받침했다. KAIST를 비롯한 이공계 교육과 연구개발에도 꾸준히 투자했다. 정부는 반도체를 직접 설계하지 않았다. 반도체가 자랄 토양을 설계한 것이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 정부가 엔비디아나 구글, 오픈AI를 직접 창업한 것이 아니다. 대신 세계 최고의 대학을 키우고, 기초과학에 투자하고, 연구개발을 지원했다.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창업 생태계를 만들었고, 전 세계 인재들이 스스로 모여드는 환경을 조성했다.


국가는 셰프를 키운 것이 아니라, 셰프들이 마음껏 요리할 수 있는 주방을 만들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산업정책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여전히 공장을 어디에 지을 것인가를 두고 정치가 뜨겁다. 권력자의 SNS 한 줄이 산업정책처럼 소비되고, 기업의 수십조 원 투자 계획이 정치적 논쟁의 소재가 된다. 정작 전문가는 보이지 않는다. 정치는 방향을 제시해야 하지만, 기업의 투자 지도를 대신 그려서는 안 된다.


정치는 공장을 옮길 수는 있다.


그러나 미래를 옮기지는 못한다.


나는 특정 지역에 대한 투자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호남이든, 충청이든, 영남이든 국가 경쟁력에 도움이 된다면 적극 검토해야 한다. 그러나 그 판단은 정치가 아니라 산업이 해야 한다.


전력과 용수는 충분한가, 협력업체 생태계와 물류 경쟁력은 갖춰져 있는가, 세계 최고 인재들이 모여들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정치인의 직관이 아니라 전문가의 데이터가 답해야 한다.


필자 역시 과거 페어차일드코리아반도체에서 경영기획 고문을 맡았고, 하이닉스반도체 사외이사로 활동한 적이 있다. 그렇다고 반도체 전문가는 전혀 아니다. 단지 그 경험을 통해 배운 것은 수십조 원이 걸린 투자와 공장입지 결정은 정치적 직관이나 즉흥적 판단이 아니라는 것이다. 수많은 전문가들의 데이터와 치열한 검증 끝에 내려진다는 사실이다.


산업정책이 '산업정치'가 되어서는 안 된다.


산업은 표가 아니라 시장과 기술, 그리고 시간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국가 최고지도자의 시선은 다음 선거가 아니라 다음 세대를 향해야 한다.


기업은 오늘을 경쟁하지만, 국가는 20년 뒤 미래를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정부가 국가미래전략으로 사활을 걸고 기반 조성을 준비해야 할 분야는 따로 있다.


우주 비즈니스를 개척할 ‘우주항공’, AI와 결합해 인류의 생명을 재설계하는 ‘차세대 바이오’, 그리고 미래 안보와 연산 패권을 가를 ‘양자 기술’ 등에 국가 역량을 집중해야 할 때다.


어떤 기술이 세상을 바꿀지, 어떤 인재를 키우고 어떤 규제를 걷어내야 할지, 그 미래의 판을 깔아주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다.


삼성과 SK하이닉스는 이미 세계에서 공장을 가장 잘 짓는 기업이다. 이미 세계 정상에 선 기업들에게 정부가 해줄 일은 공장 부지를 골라주는 것이 아니다.


정부가 할 일은 제2의 삼성과 하이닉스가 태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하나의 엔비디아를 꿈꾸는 청년이 도전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다. 제2의 오픈AI가 태어날 연구 환경을 만들고, 제3의 구글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생태계를 설계해야 한다.


1980년대 대한민국 정부는 반도체 공장을 설계하지 않았다. 반도체 산업이 자랄 토양을 설계했다. AI 시대도 다르지 않다. 정부는 AI 기업을 만들 수는 없다. 그러나 AI 기업이 태어날 토양은 만들 수 있다.


대통령의 하루는 바쁘다. 민생도, 외교도, 지역도 모두 중요하다.


그러나 대통령의 시선은 오늘을 넘어 내일을, 지역을 넘어 대한민국 전체를 향해야 한다.


잠 못 이루는 밤이 SNS 문장 한 줄 때문이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다음 20년을 무엇으로 먹고살 것인지, 어떤 기술을 키우고 어떤 인재를 길러야 할지를 놓고 더 많이 고민해야 한다.


그 본질적인 질문 앞에서 불면의 밤을 보낸 대통령에게 국민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낼 것이다.


공장은 기업이 짓는다.


국가는 미래를 짓는다.


그것이 국가전략이다.


그리고 대통령의 책무다.


글/ 정상환 한경국립대 객원교수·전 하이닉스반도체 사외이사


※외부 필진 칼럼입니다.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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