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안 플라자] 총리를 보면 대통령이 보인다 - 한성숙 총리 지명이 남긴 질문
입력 2026.06.18 07:00
수정 2026.06.18 08:02
노회한 정치인들이 꿈꾸던 자리
기업 효율과 국가 운영은 다르다
네이버 매출 10조 vs 정부 예산 728조
"총리를 보면 대통령이 보인다"
한성숙 국무총리 후보자가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데이터 기반 AI 행정을 위한 실무 공직자 간담회를 위해 입장하고 있다. ⓒ 뉴시스
"대통령은 못됐어도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영의정은 하고 싶었다. 나라를 위해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싶었다. 여의도에서, 청와대에서, 지방정부에서 산전수전 다 겪었는데 자격은 충분하지 않은가. 잘할 자신도 있었다. 임면권자가 된 정치판 후배의 심기를 살피기도 했다. 이제 총리직을 통해 나라를 위해 헌신하려 했는데… 참 정치판이라는 게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래도 다음을 기다려 봐야지."
이재명 대통령이 한성숙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한 것을 보며, 문득 노회한 정치인들의 심정이 이렇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 한켠을 스치는 허탈함, 어쩌면 약간의 뻘쭘함, 그리고 애써 웃어넘겨야 하는 멋쩍음 말이다. 정치권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그 심정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국무총리는 원래 그런 자리였다.
대통령 다음 서열이라는 헌법적 위상 때문만은 아니다. 수십 년 공적 영역에서 쌓아온 경륜과 경험을 인정받고, 국가 운영의 책임을 맡는 자리였다. 그래서 정치권에는 총리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통령은 못 되었어도 영의정은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욕심 말이다. 그만큼 국무총리는 무거운 자리다. 말 그대로 나라의 일을 총괄하는 자리 아닌가.
그래서 이번 총리 지명은 낯설다.
필자는 한성숙 지명자의 능력에 의문을 갖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그는 국내 대표 IT 기업 네이버를 이끌며 경영 능력을 인정받은 전문 경영인이다. 중소벤처기업부 장관도 했다. 기업인으로서의 성공과 전문성은 충분히 존중받을 만하다. 그러나 그것이 곧 국무총리로서의 자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흔히 적재적소(適材適所)를 말한다.
기업은 돈을 버는 것이 목표다. 그래서 효율을 우선한다. 수익이 나지 않는 사업은 정리하고 경쟁력이 떨어지는 조직은 개편한다.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 그것이 기업의 존재 이유다.
그러나 국가는 다르다. 국가는 효율성이라는 단일 잣대로 움직일 수 없는 거대한 유기체다.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농어촌 버스를 운행해야 하고,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더라도 응급의료 체계를 유지해야 한다. 기업이 주주를 위해 존재한다면 국가는 국민 모두를 위해 존재한다. 특히 국가는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이들까지 품어야 한다. 때로는 비효율을 감수해야 하고, 때로는 경제적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근본적인 의문을 남긴다.
총리는 단순한 행정 관리자가 아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사회적 갈등을 완화하며, 국가 공동체의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 자리다.
그러나 한 지명자의 이력 대부분은 민간 기업 경영에 집중되어 있다. 기업 경영의 성과와는 별개로, 공공선과 사회적 형평성이라는 가치에 대해 얼마나 깊은 고민과 경험을 축적해 왔는지는 아직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
민간 전문경영인으로서 부를 축적하고 재산을 늘린 것을 문제 삼을 이유는 없다. 주택을 몇 채 보유했는지 역시 기업인 시절에는 개인의 선택 영역일 수 있다.
그러나 국무총리는 다르다.
공직자는 얼마나 많은 부를 가졌는가 보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가 검증의 대상이 된다. 국무총리는 시장의 승자가 아니라 공공의 통할자다. 그런 점에서 한 지명자의 경력은 성공한 기업인으로서의 이력은 충분히 보여주지만, 공공선을 위해 무엇을 고민하고 실천해 왔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물음표를 남긴다.
사익(私益)의 극대화와 공공선의 추구는 이처럼 출발선부터 본질이 다른 영역이다.
더욱이 국무총리는 특정 분야의 전문가일 필요가 없다. 국가 전체를 조정하는 자리다. 외교와 안보, 경제와 복지, 산업과 환경,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사이의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한다.
예산을 총괄하는 재정당국과 복지 부처의 갈등을 중재하고, 노동계와 경영계의 충돌을 조율하며, 대통령과 내각을 연결하는 국정 운영의 허브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그래서 총리에게 필요한 진짜 자질은 특정 분야의 전문성이 아니다. 국가 운영 전반을 아우르는 경륜이다. 추진력보다 정무적 조정력이며, 결단력보다 설득력이다.
과연 한 지명자가 이 무거운 역할을 수행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일각에서는 1년 남짓한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경력을 내세운다. 그러나 관료 사회의 초입을 경험한 것만으로 국정 전반을 통할할 역량이 충분히 검증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 지명자가 이끌었던 네이버의 연 매출은 약 10조원 안팎이다. 민간 기업으로는 거대한 규모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의 연간 예산인 728조 원과 비교하면 7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진짜 차이는 숫자에 있지 않다.
만여 명의 사기업 임직원을 지휘하는 것과, 120만명에 달하는 공직사회를 통솔하며 국가 재정을 집행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기업 경영의 핵심은 신속한 의사결정이다. 그러나 국정 운영의 핵심은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일이다. 장관은 기업의 임원이 아니다. 국회는 이사회가 아니다. 야당은 경쟁사도 아니다. 국정은 명령보다 조정에 의해 움직인다.
특히 지금은 대통령이 압도적 의석을 가진 여당까지 이끄는 시기다. 야당과의 관계뿐 아니라 거대 여당 내부의 다양한 이해관계, 그리고 정통 관료 조직까지 조율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정치적 자산과 독자적 기반이 없는 민간 CEO 출신 총리가 장관들을 지휘하는 데 필요한 권위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는 여전히 남는 과제다. 소위 내각에 '영(令)이 서겠는가'라는 의문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래서 이번 인사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히 한성숙이라는 인물에 대한 평가가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왜 한성숙을 선택했는가 하는 점이다.
이 대통령은 그동안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비판하며 권한 분산과 협치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책임총리제 역시 그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개념이다. 책임총리제의 핵심은 총리를 대통령의 대리인이 아니라 국정 운영의 공동 책임자로 세우는 데 있다.
그렇다면 책임총리제에 걸맞은 총리는 어떤 인물이어야 할까. 풍부한 국정 경험과 경륜을 갖추고, 장관들을 통솔할 권위를 가지며, 대통령에게도 직언할 수 있는 독자적 무게감을 가진 인물일 것이다.
총리는 대통령의 그림자가 아니다. 헌법이 규정한 국가 운영의 또 다른 축이다.
총리의 권위는 임명장 한 장으로 생기지 않는다. 경륜과 경험, 그리고 정치적 무게에서 나온다. 그런 점에서 이번 인사는 책임총리제 강화의 신호로 읽히기 어렵다.
물론 대통령에게는 자신의 국정 철학을 구현할 사람을 선택할 권한이 있다. 문제는 그 선택이 무엇을 의미하느냐다. 정치적 중량감보다 실무형 인사를 선택했다는 것은 향후 국정 운영의 무게중심이 총리실보다 대통령실에 놓일 가능성을 보여준다. 총리가 독자적 권위를 갖기 어려울수록 정책의 최종 판단과 책임은 자연스럽게 대통령실로 수렴될 것이다.
대통령이 강하면 총리는 작아진다.
책임총리제는 헌법 조문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이 실제 권한을 나누고 총리에게 책임과 권위를 부여할 때 비로소 작동한다.
총리를 보면 대통령이 보인다.
이번 한성숙 지명은 한 사람의 인사 문제를 넘어 이재명 정부가 어떤 방식으로 권력을 운영하려 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성공한 기업인을 총리로 기용한 파격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총리에게 어느 정도의 권한과 독립성을 부여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결국 답은 사람보다 제도에 있고, 제도보다 권한에 있다.
그래서 이번 총리지명의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이 대통령은 과연 총리에게 총리다운 권한을 부여할 생각이 있는가.
그리고 한성숙 후보자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는 인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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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상환 한경국립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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