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카카오톡
블로그
페이스북
X
주소복사

삼성·SK 호남 투자, 오버랩되는 독재정권의 '관치' [박영국의 디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입력 2026.06.25 11:18
수정 2026.06.25 11:37

대통령이 1·2위 기업 불러다 여당 텃밭 호남에 대규모 투자 발표

국가 전략산업을 지역논리, 정치논리로 강요하는 '관치'

해당 이미지는 AI로 제작됨.

서슬 퍼렇던 군부독재 시절. 기업들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혹은 특혜)을 받아 초고속 성장을 하고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을 이끌기도 했지만, 그만큼 ‘관치’에 휘둘리기도 했습니다.


멀쩡한 기업집단이 하루아침에 공중분해가 되는가 하면, 기껏 공들여 키워놓은 사업을 ‘산업통폐합’이라는 미명 하에 손익을 따질 새도 없이 다른 기업과 강제로 맞바꾸기도 했죠. 신사업 진출이나 증설 등의 투자를 정부 눈치 안 보고 오롯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기업은 없다시피 했습니다. 관치를 잘 따르면 특혜가 주어지지만, 정부 눈 밖에 나면 하루아침에 망할 수도 있는데 누가 말을 안 듣겠습니까.


그 시절엔 그런 게 필요했다는 분들도 있지만, 어쨌든 우리는 군부독재를 몰아내고 민주화를 이뤄냈습니다. 이제 기업들은 지속가능성과 미래 가치를 판단해 자율적으로 투자합니다. 적어도 대외적으로는 그렇게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그걸 의심케 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오는 29일 우리 경제와 증시와 물가를 멱살 잡고 끌고 가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특정 지역에 수백조원 규모의 투자를 단행한다고 합니다. 공교롭게도 그 발표가 청와대에서 이뤄집니다.


지난 19일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청와대로 불려갔고, 오늘(25일)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불려 갑니다. 그 자리에서 논의가 이뤄지는지 협박이 이뤄지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29일 ‘국토공간 대전환’ 민관 합동회의에서 투자계획이 발표될 것임은 확실해 보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20일(현지 시간) 인도 뉴델리 바랏 만다팜 센터에서 열린 한-인도 비즈니스 포럼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반도체 공장이 가져올 경제효과는 어마어마합니다. 공장 단지를 조성하는 과정에서만도 막대한 돈이 돌 것이고, 가동이 되면 더 많은 돈이 쏟아지겠죠. 가동 시점이 지금처럼 메모리반도체 초호황 시기라면 그곳에서 일하게 된 근로자들은 매년 수억원의 성과급을 손에 쥐는 그림도 그려집니다.


공교롭게도 그 지역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 보장된다는 호남입니다. 이 지역에 막대한 경제효과를 낼 수 있는 기업을 유치해 인구가 늘어나면 민주당의 텃밭은 더욱 비옥한 토양이 되겠군요.


시점도 참 공교롭습니다. 민주당은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있습니다. 민주당원들이 많이 모여 사는 지역에 선물을 던져 주면 대통령의 ‘복심(腹心)’이 차기 당대표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겠죠.


아마도 29일 청와대에서는 그런 얘긴 안 나올 겁니다. 과거 독재정권의 관치를 연상시키는, 기업들 팔 비틀어 특정 지역에 투자를 강요하는 일을 벌이고 있다고 대놓고 말할 리 있겠습니까.


하필 이 시점에, 호남 지역에, 그것도 경쟁사들이 나란히 대규모 투자를 결정한 배경을 어떻게 설명할지 매우 궁금합니다.


반도체 공장을 아무 데나, 아무 때나 짓는다고 무조건 노다지가 쏟아지는 건 아닙니다. 전력, 용수 등 제조 인프라와 물류 효율성, 인력 수급 등 다양한 조건을 고려해야 합니다. 이 때문에 반도체 공장 투자는 검토에만 7년 이상이 소요됩니다.


전력 공급원으로는 신재생에너지가 거론되지만, 풍력이나 태양광은 불안정한 에너지원입니다. 반도체 공장은 전기가 부족할 때 멈춰섰다가 상황이 호전되면 다시 돌릴 수 있는 공장이 아닙니다. 반도체 공장에는 막대한 용수가 공급돼야 하는데, 이건 환경보호 논리와 종종 상충됩니다. 호남은 환경보호단체들의 주 활동 무대입니다.


제조업체가 동일 제품 생산기지를 원거리로 분산시키는 것은 천재지변 등의 리스크 대응에는 긍정적이지만 운영 효율성 측면에서는 그다지 바람직한 일은 아닙니다. 소재·부품·장비 협력사와 유지보수 업체 등 수도권에 몰려 있는 반도체 생태계가 호남 지역에 새로 형성돼야 합니다. 수출입 루트를 새로 짜려면 막대한 물류 비용이 소요되고, 관리 비용도 증가합니다.


수도권에서 먼 직장은 고급 인력이 선호하지 않습니다. 해당 지역에서 아무나 뽑아 쓰면 될 정도로 반도체 공장이 단순하지도 않습니다. 연구개발 인력을 비롯, 반도체 공정·설비 엔지니어와 유지보수 인력 등을 기존 주거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동시키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반도체 업황 사이클에 따른 수요 공급 상황을 충분히 고려한 투자계획인지도 의문입니다. 지금은 AI(인공지능) 전환 초창기라 메모리반도체 수요가 급등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초호황을 구가하고 있지만, 호남에 짓는다는 공장이 가동되는 시점까지 호황이 유지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메모리반도체는 공급이 수요를 조금만 초과해도 가격이 폭락합니다. 수백조원을 투자해 만든 공장이 완공 직후부터 파리를 날리는데도 기업이 생존을 보장받을 수 있을까요.


삼성 평택 반도체 공장.ⓒ삼성전자

각각의 문제점에 대해 정부가 어떤 식으로든 변명을 준비해 놓고 있을 수는 있겠습니다. 설령 그 변명이 어느 정도의 합리성을 갖추고 있다 해도 그건 ‘호남에 반도체 공장을 지어도 큰 무리가 없다’는 정도지, ‘새로운 반도체 공장 입지가 반드시 호남이어야 한다’는 논리를 만들어내긴 힘들어 보입니다.


‘호남 반도체 투자’가 풍문으로 나돌 때부터 영남권에서 큰 반발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투자 대상 지역이 호남 중에서도 통합을 앞둔 광주·전남 지역이라는 얘기가 나오자 전북 지역에서도 볼멘소리를 합니다.


호남이든 영남이든, 전북이든 전남이든, 그냥 저 노다지를 우리 동네로 가져와야겠다는 생각 뿐이지 이번 투자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지속가능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도 없단 얘깁니다. 그걸 청와대에서 ‘광주·전남’으로 교통정리를 해준 겁니다.


호남의 맹목적인 지지를 받는 정권의 대통령이, 여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국내 1·2위 기업 총수를 불러다, 국가 전략 산업인 반도체 생산기지를 호남에 짓겠다는 대규모 투자계획을 발표하도록 하는 그림. 이걸 보고 국민들이 과거 독재정권의 관치를 떠올리지 않도록 잘 포장하기 위해 정부와 청와대가 어떤 연출을 준비했을지 지켜볼 일입니다.


ⓒ데일리안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댓글 0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