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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 내렸다며?"…주유소 가격 붙잡은 건 원유 아닌 '제품가' [석유를 읽다 上]

정진주 기자 (correctpearl@dailian.co.kr)
입력 2026.06.23 14:17
수정 2026.06.23 14:17

국내 기름값, 원유 아닌 국제 석유제품 가격에 연동

휘발유·경유 국제 가격은 전쟁 전보다 높은 수준

국내 반영까지 2~3주 시차…최고가격제 종료도 신중

서울 시내 한 주유소. ⓒ뉴시스

국제유가가 내렸다는 뉴스가 나와도 주유소 가격표는 쉽게 내려오지 않는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유가는 떨어졌다는데 왜 내 차에 넣는 휘발유·경유 가격은 그대로냐'는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


다만 실제 가격 구조는 소비자 체감과 다르게 움직인다. 국국내 기름값은 원유 가격이 아니라 국제 석유제품 가격을 기준으로 움직인다. 미·이란 전쟁 종결 기대감으로 원유가격은 일부 내려왔지만 국내 가격에 직접 영향을 주는 국제 휘발유·경유 가격은 여전히 전쟁 전보다 높은 수준이다.


여기에 국제 제품가격이 정유사 공급가격과 주유소 판매가격에 반영되기까지 통상 2~3주가량 시차도 있다. 국제유가 하락이 곧바로 소비자 가격 인하로 이어지기 어렵고 정부가 석유 최고가격제 종료 시점을 신중하게 볼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6월3주 국제 휘발유·경유 가격이 전쟁 전인 2월4주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오피넷 캡처

23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6월3주 기준 국제 휘발유(92RON) 가격은 ℓ당 989.21원으로 미·이란 전쟁 발발과 국내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 이전인 2월4주 713.71원보다 275.50원 높았다. 국제 경유(0.001%) 가격도 같은 기간 ℓ당 837.10원에서 1105.12원으로 268.02원 상승했다.


가격이 쉽게 내려가지 않는 이유는 생산과 운송이 아직 완전히 정상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동 정제설비 정상화가 아직 진행 중이고 호르무즈 해협 운항 리스크도 완전히 해소됐다고 보기 어렵다. 전쟁 리스크가 완화됐더라도 휘발유와 경유가 생산돼 국제 시장에 원활하게 공급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한 상황이다.


여름철 수요도 변수다. 북반구가 여름철 드라이빙 시즌에 들어서면서 휘발유 소비가 늘고 있고 경유와 항공유 등 중간유분 공급도 빠듯한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원유가격이 먼저 내려왔더라도 국제 제품가격이 당분간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국내 기름값 기준은 원유값 아닌 '국제 제품가격'…반영까지 2~3주 시차


국제 제품가격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 국내 주유소 가격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국내 석유제품 가격은 국제유가보다 싱가포르 시장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국제 휘발유·경유 가격에 연동된다. 정유사가 들여오는 것은 원유지만 소비자가 실제 구매하는 것은 정제 과정을 거친 휘발유와 경유이기 때문이다.


이는 밀가루값이 떨어졌다고 라면값이 바로 내려가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원유는 정제 전 원재료이고 소비자가 주유소에서 사는 것은 완제품인 휘발유와 경유다. 원유가격이 내려도 완제품인 국제 휘발유·경유 가격이 함께 내려가야 국내 소비자 가격 인하로 이어질 수 있다.


가격 반영에는 시차도 있다. 국제 제품가격 변동이 정유사 공급가격에 적용된 뒤 대리점과 주유소 유통 단계를 거쳐 소비자 판매가격에 반영되기까지 통상 2~3주가량 걸린다.


실제로 국내 주유소 가격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오피넷에 따르면 6월3주 기준 국내 보통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ℓ당 2009.22원으로 2월4주 1691.26원보다 317.96원 높았다. 국제 제품가격 상승분이 시차를 두고 국내 가격에 반영되면서 소비자 체감 가격도 2000원대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 석유제품 가격이 국제 제품가격을 기준으로 움직이게 된 것은 석유시장 자유화 이후 나타난 가격 왜곡을 줄이기 위해서다. 원유가격을 기준으로 국내 가격을 정하면 국제 제품가격과 차이가 벌어질 수 있고 이 경우 수입 물량 확대나 내수 공급 기피로 시장 혼란이 생길 수 있다.


과거 1997년 석유시장 자유화 이후 원유가 기준 가격 방식이 유지되면서 국내 가격이 국제 시세보다 높게 형성되는 문제가 나타났고 이에 정유업계는 2001년 이후 싱가포르 시장을 중심으로 한 국제 석유제품 가격을 기준으로 국내 가격을 산정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최고가격제 종료도 제품가격 안정이 관건
호르무즈 해협 케심섬 해안에 지난 4월 18일 이란의 해협 봉쇄로 발이 묶인 컨테이너선이 보이고 있다.ⓒ뉴시스

정부가 석유 최고가격제 종료 시점을 신중하게 볼 수밖에 없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정부는 그동안 중동 전쟁 종료, 호르무즈 해협 운항 정상화, 국제유가 안정 등을 최고가격제 해제 검토 조건으로 제시해왔다. 다만 국제유가가 일부 내려왔더라도 국내 가격에 직접 영향을 주는 국제 제품가격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만큼 단순히 유가 흐름만으로 종료 시점을 판단하기는 어렵다.


최고가격제가 종료되면 국제 제품가격 상승분이 국내 공급가격과 주유소 판매가격에 더 직접적으로 반영될 수 있다. 국제 휘발유·경유 가격이 충분히 안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제도를 서둘러 종료할 경우 소비자 가격 부담이 다시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유럽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OECD 국가별 자동차용 경유 가격 통계에 따르면 유럽 주요 19개국 평균 경유 가격은 2월4주 ℓ당 약 2733원에서 6월1주 약 3293원으로 560원 올랐다. 같은 기간 한국 경유 가격도 ℓ당 1594원에서 2005원으로 상승했지만, 6월1주 기준으로는 유럽 19개국 평균보다 1288원 낮았다.


국제 제품가격 상승에도 국내 가격 상승폭이 상대적으로 제한된 데는 최고가격제의 완충 효과가 작용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국제 제품가격과 환율, 운임, 보험료가 모두 국내 도입 비용을 끌어올리는 상황에서도 최고가격제가 가격 급등 압력을 일부 막았고, 시행 전 정유사들의 자발적인 가격 인하와 안정적 공급도 국내 가격 상승폭을 줄이는 데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다.


정부는 국제유가뿐 아니라 국제 석유제품 가격 흐름, 호르무즈 해협 운항 정상화 여부, 중동 정제설비 복구 상황, 국내 가격 반영 시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최고가격제 종료 시점을 판단할 전망이다. 국제유가가 일부 내려왔더라도 소비자 가격에 직접 영향을 주는 제품가격이 안정되지 않은 만큼 최고가격제 종료 논의도 당분간 신중하게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업계 관계자는 "호르무즈 개방에 따른 일시적 기대심리로 제품가격이 아닌 원유가격이 하락했으나, 호르무즈가 개방되더라도 해협 안팎의 배들이 정상적으로 통항하는데 최소 한달 이상 소요될 것"이라며 "기대 심리가 반영된 가격이 실물 가격으로 반영되기까지는 시일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정진주 기자 (correctpearl@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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