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發 ‘반도체 전쟁’…한국 시장 ‘새우등’ 터질라
입력 2026.06.23 10:47
수정 2026.06.23 10:47
의회 강경책에 백악관 재량권 흔들…‘중국 봉쇄’ 불똥 우려
중국 공장 멈추면 D램값 최대 22% 폭등 경고
1500조원 메모리 호황기 덮친 정책 변수
KIEP “공급망 상류 경쟁력 강화 필요”
미국의 대중 반도체 통제는 한국 기업을 직접 겨냥하지 않더라도 중국 내 생산기지를 통해 공급망 충격으로 번질 수 있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생성형AI를 활용해 제작함.)
메모리 반도체값이 사상 최고치를 새로 쓰는 국면에서, 미국발 정책 충격이 한국 산업의 급소를 겨누고 있다. 한국을 직접적으로 겨냥한 것을 아니지만, 중국 시장이 봉쇄 될 경우 거센 후폭풍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최근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대중(對中) 반도체 수출통제가 극단으로 치달아 중국에 있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 공장을 멈춰 세울 경우, 한국 메모리 산업이 직격탄을 맞는 것은 물론 그 여파가 미국 자신의 AI 투자와 대중 견제 효과까지 갉아먹는다고 경고했다.
의회 “뒷문 닫아라” vs 백악관 “카드 남겨라” 동상이몽
갈등 양상은 지난 4월 22일 드러났다. 미 하원 외교위원회는 수출통제 법안 20여 건을 한꺼번에 처리하며 의회 역사상 최대 규모의 마크업이라고 자평했다.
동맹국의 대중 통제 동참을 압박하는 ‘MATCH법’을 발의한 마이클 바움가트너 의원은 중국공산당이 반도체 제조 도구를 손에 넣을 뒷문을 열어둘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외교위원장 브라이언 매스트도 핵심 장비·부품에 대한 중국의 접근을 제한하는 법안이라며 힘을 실었다. 이 법안은 네덜란드 ASML의 심자외선(DUV) 노광장비처럼 이미 중국에 들어간 장비까지 겨눈다고 외신은 전했다.
반면 트럼프 2기 행정부는 통제를 협상 카드로 다뤄 왔다. 엔비디아의 중국용 칩 ‘H20’을 막았다가 다시 허가했고, 고성능 AI 칩은 건별 심사로 돌려 중국 수출 문을 일부 열었다.
중국 견제를 겨냥한 통제가 메모리 가격을 자극하면 미국의 AI 인프라 비용도 함께 높아질 수 있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생성형AI를 활용해 제작함.)
의회는 이 재량을 법으로 묶으려 하고, 백악관은 손발이 묶이는 것을 피하려는 양상인 셈이다. 이에 대해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는 “수출통제만으로는 대체로 목표를 이루지 못할 것”이라며 “워싱턴의 정책이 일관성 없고 변덕스럽다”고 지적했다.
같은 의회 안에서도 시선은 엇갈린다. 강경파로 분류되는 존 물레나르 하원 전략경쟁특위 위원장조차 중국 기술 수준에 맞춰 통제를 조절하는 ‘SCALE법’을 내놨다.
김혁중 KIEP 부연구위원은 “한국이 미국의 극단적 수출통제 추진을 경계하면서 일관된 원칙에 따른 경제안보 정책을 운용하고, 위험 분산과 공급망 상류 경쟁력 강화에 나서야 한다”고 제언했다.
데이터센터 2배 뛰는데…자국 AI 동력 갉아먹는 미국식 딜레마
이같은 갈등이 한국에 위험한 것은, 한국 반도체가 통제의 사정권 한복판에 있기 때문이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해 8월 삼성전자 시안, SK하이닉스 우시·다롄 공장의 ‘검증된 최종사용자(VEU)’ 지위를 철회했다.
기존 운영은 허용하되 증설·업그레이드용 장비 반출은 승인하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연말 미국이 건별 심사 대신 1년 단위 물량 승인으로 한발 물러서며 최악은 피했다는 평가가 나왔지만, 불확실성은 그대로 남았다.
여기서 의회 강경파의 주장대로 ‘중국 전역 봉쇄’가 현실이 되면 충격은 곧장 가격으로 옮겨붙는다. KIEP가 수요·공급 모형으로 추정한 결과, 중국 내 한국 공장이 멈추면 1a급 범용 D램값은 단기적으로 22%, HBM 감산을 병행해도 16% 오른다. HBM 자체는 17% 이상, 낸드는 10%가량 상승한다.
살제로 지난 2013년 우시 공장 화재 당시 세계 D램의 15%를 만들던 공장 하나가 멈춰 2GB DDR3값이 한 달 만에 42% 뛴 전례를 근거로 들었다.
김 부연구위원은 “이 수치는 탄력성 가정에 크게 좌우되는 조건부 추정치”라며 “전면 가동 중단이라는 극단을 전제한 시나리오라는 점은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다”고 부연했다.
미 의회는 대중 수출통제를 법으로 조이려 하고, 행정부는 이를 협상 카드로 남겨두려는 흐름이 맞서고 있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생성형AI를 활용해 제작함.)
문제는 이 충격이 평시가 아니라 이미 사상 최악의 공급난 위에 얹힌다는 점이다. DDR5 32GB 모듈값은 석 달 만에 17만원대에서 70만원 안팎으로 4배 가까이 뛰었고, D램 가격은 2025년 저점 대비 최대 180% 올랐다.
시장에선 이를 ‘램마겟돈’이라 부른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2026년 1분기 범용 D램 계약가가 직전 분기 대비 90~95% 급등할 것으로 전망을 상향했다. 낸드도 33~38% 오를 것으로 봤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올해 세계 메모리 시장이 전년의 4배인 1500조원에 이를 것으로 관측했다. 공급이 빠듯한 국면에 정책 충격까지 겹치면 추정치 이상의 파장이 날 수 있다는 우려가 가능한 셈이다.
역효과는 두 갈래로 나뉜다. 우선 통제 강화가 본래 목적인 중국 견제를 빗나갈 수 있다. 중국 CXMT는 2024년 78억7000만 위안 적자에서 2025년 18억7500만 위안 흑자로 창사 이래 처음 돌아섰다. 공급이 빠듯할수록 중국 기업 수익성이 개선되는 구조다.
다만 미국의 통제와 중국의 흑자 전환을 곧장 인과로 단정하긴 어렵다. 공급 제약이 중국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상관성으로 읽는 편이 타당하다.
또 다른 역효과는 미국 스스로의 발등이다. AI 칩 제조원가의 45%를 HBM이 차지하고, 데이터센터엔 범용 D램·낸드가 대량으로 들어간다.
세계 데이터센터 용량은 2025년 102GW에서 2030년 200GW로 2배가 될 전망이며,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집계한 민간투자 4조8000억 달러 중 64%인 3조1000억 달러가 AI·데이터센터 몫이다. 메모리값을 정책으로 밀어 올리면 미국이 자국 성장 동력의 비용을 스스로 끌어올리는 결과가 된다.
물론 통제를 지지하는 쪽 논리도 분명하다. 미국 싱크탱크 FDD는 25억 달러 규모의 엔비디아 서버 밀반출 적발 사례를 들며 집행을 더 조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부연구위원은 “미국 편에 서서 자국 기업 넥스페리아 경영권까지 가져갔던 네덜란드가 미·중 합의 뒤에도 중국 사업 차질을 풀지 못한 사례가 있다”며 “미국과 중국 중 어는 한쪽에 편승 하기보다 위험 관리가 답”이라고 제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