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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 대통령’ 앨런 그린스펀 前 연준 의장 별세

김규환 기자 (sara0873@dailian.co.kr)
입력 2026.06.22 22:28
수정 2026.06.22 22:30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 ⓒ 로이터/연합뉴스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이 22일(현지시간) 별세했다. 100세.


미 CNN방송 등에 따르면 그린스펀 전 의장의 부인인 미첼 여사는 이날 성명을 통해 “앨런이 오늘 아침 파킨슨병 합병증으로 100세의 나이로 자택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며 “그는 수십 년 동안 미국 경제를 형성하는 데 이바지한 거물이었지만, 항상 자신의 실수를 솔직하게 인정했던 인물”이라고 밝혔다.


1926년 3월 미 뉴욕에서 태어난 그린스펀 전 의장은 뉴욕대 박사학위를 받았다. 컨설팅회사 대표를 지내던 중 1968년 당시 공화당 대선후보인 리처드 닉슨 대선캠프에 합류하며 정치계에 입문했다. 1974~1977년 제럴드 포드 행정부에서 경제자문위원회(CEA) 의장을 지냈다.


1987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지명으로 전설적인 ‘인플레이션 퇴치자’ 폴 볼커에 이어 연준 의장에 오른 그는 2006년까지 19년 간 조지 H W 부시,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까지 공화·민주 양당 4명의 대통령 아래에서 미국 통화정책을 총괄해 연준 역사상 두 번째로 긴 재임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린스펀 의장의 재임 기간은 미 경제의 '골디락스 시대‘(높은 성장을 이루면서도 물가가 안정된 상태)와 겹친다. 낮은 물가와 안정적인 성장, 정보기술(IT) 혁신이 맞물리며 미 경제는 사상 최장기 확장 국면을 이어갔다. 시장의 자율과 기술 혁신을 신뢰하고 정부 규제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그의 철학은 당시 미국식 자본주의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특히 그는 취임 직후인 1987년 ‘블랙 먼데이’ 증시 폭락을 비롯해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2001년 9·11 테러 등 굵직한 금융·경제 위기를 비교적 안정적으로 관리해 세계 경제 대통령 또는 세계 경제의 지휘자라는 뜻의 ‘마에스트로’라는 별명을 얻었다. CNN은 그린스펀이 연준 의장으로 재임하던 시절 미 경제는 역사상 가장 강력한 경기확장기를 경험했다“고 평가했다. 실업률은 4% 아래로 떨어졌고, 주식 시장은 최고치를 경신했으며, 연방 정부는 재정적자에서 흑자로 전환한 것이다.


화려한 업적 이면에는 어두운 그림자도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2000년 닷컴 버블(거품) 붕괴 이후 2001년 경제는 불황에 빠졌고, 9·11 테러 공격으로 더욱 큰 충격을 받은 이후 연준의 대응은 논란이 됐다. 그린스펀 의장과 연준은 기준금리를 당시로서는 전례 없는 수준인 1%까지 낮췄다.


다만 재임 후반기에 단행했던 지나친 초저금리 기조와 파생금융상품 규제 완화 중심의 통화 정책이 결국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사태로 이어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하고 세계 금융시스템을 망가뜨렸다는 비판을 피해가지 못했다. 그 역시 미 의회 청문회에서 시장 능력을 과신했던 규제완화 신념에서 비롯된 오류라고 인정했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시장에 충격을 최소화하고 연준의 정책 방향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기 위해 특유의 길고 모호한 화법을 구사하는 것으로도 정평이 나 있었다. ‘닷컴 버블’ 시기 미 주식시장을 ‘비이성적 과열’ 상태(과도한 주가 급등에 대해 경고할 때 사용)라고 표현한 발언은 인공지능(AI) 열풍이 거센 지금 다시금 회자되고 있다.


한때 미국 경제의 상징으로 추앙받았고 이후 금융위기의 책임론 속에 혹독한 재평가를 받았지만, 그린스펀이 현대 중앙은행 역사에 남긴 영향력만큼은 부인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김규환 기자 (sara0873@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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