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뒤흔드는 조커 활약…남아공전 손흥민도 교체 활용?
입력 2026.06.23 08:46
수정 2026.06.23 08:47
체코전 교체 투입돼 득점에 성공한 오현규. ⓒ 연합뉴스
감독의 교체 카드 한 장에 경기 양상 자체가 바뀌고 있다. 경기 막판 교체 투입돼 승부를 뒤집는 게임 체인저, 일명 조커의 활약이 그 어느 대회보다 두드러지고 있다.
체코전 극적인 역전골을 터뜨린 한국 대표팀의 오현규는 물론, 독일을 위기에서 구해낸 데니스 운다브 등 교체 멤버들의 발끝이 불을 뿜고 있다.
조별리그 반환점을 돌고 있는 현재 흥미로운 통계가 눈에 띈다. 21일까지 대회 전체에서 터진 총 109골 중 무려 31골이 후반 31분 이후, 즉 경기 종료를 불과 15분 안팎으로 남겨둔 시점에 터져 나왔다. 전체 득점의 약 3분의 1(약 28.4%)에 달하는 수치다.
경기 막바지에 승부를 바꾸는 ‘극장골’이 유독 많이 터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선수들의 체력 저하와 집중력 붕괴가 꼽힌다. 이번 대회는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에서 나눠 치러지며 이동 거리가 만만치 않아 선수들의 피로 누적이 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후반 막판생생한 체력을 갖춘 교체 멤버가 투입되면 경기 템포가 순식간에 바뀌고 있는 것.
이에 대해 영국 공영방송 BBC는 "이번 북중미월드컵에서 나타나는 가장 뚜렷한 전술적 흐름 중 하나는 후반 막판의 폭발력"이라며 "과거 체력 안배나 시간 끌기용으로 쓰이던 교체 카드가 이제는 승부를 결정짓는 가장 강력한 공격 무기가 됐다"고 분석했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도입한 제도적 변화도 조커들의 활약에 날개를 달아줬다. 코로나19 이후 완전히 정착된 ‘5인 교체 제도’가 대표적이다. 과거 3장의 교체 카드를 쓸 때는 부상 변수 등을 고려해 감독들이 전술적 교체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5장으로 늘어나면서 필드 플레이어의 절반 가까이 바꿀 수 있게 됐고, 이는 감독들에게 엄청난 전술적 유연성을 부여했다.
여기에 이번 대회에 도입된 ‘하이드레이션 브레이크(Hydration Break·경기 중 수분 섭취 시간)’ 역시 숨은 변수다. 무더운 날씨 속에서 선수들에게 휴식을 주기 위해 마련된 이 짧은 시간은 감독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작전 타임이다. 흐트러진 전술을 재정비하고 교체 투입될 조커들에게 세부 지침을 내리는 전술 회의의 장으로 변모하면서 경기 흐름을 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되고 있다는 평가다.
실제로 이번 대회에서 조커의 활약 여부는 승패와 직결되고 있다. 스위스는 보스니아와의 경기서 후반 26분, 분위기 반전을 위해 3명의 선수를 동시에 교체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교체 투입된 만잠비는 그라운드를 밟은 지 단 3분 만에 동점골을 터뜨리며 감독의 믿음에 보답했다. 만잠비가 불어넣은 에너지에 자극받은 스위스는 이후 성난 파도처럼 몰아치며 3골을 추가했다.
전차군단 독일 역시 조커의 힘으로 한숨을 돌렸다. 코트디부아르전에서 교체로 들어온 데니스 운다브가 순식간에 멀티골을 폭발시키며 팀을 진흙탕에서 건져 올렸다. 선발 명단에는 이름을 올리지 못했지만, 단 몇 분 만에 경기 주인공으로 우뚝 선 조커들의 활약은 이번 월드컵을 보는 가장 큰 묘미로 자리 잡았다.
손흥민의 교체 투입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연합뉴스
한국 역시 ‘조커 트렌드’의 수혜자다.
홍명보호는 지난 체코와의 조별리그 1차전서 상대의 탄탄한 수비벽에 막혀 고전을 면치 못했다. 답답한 흐름이 이어지던 후반, 홍명보 감독은 아껴둔 오현규 카드를 빼 들었다. 오현규는 강력한 피지컬과 저돌적인 돌파로 체코 수비진을 뒤흔들기 시작했고, 경기 종료 10분을 남겨두고 페널티 박스 안에서 수비수와의 몸싸움을 이겨낸 뒤 오른발 슈팅으로 골망을 갈랐다. 침묵하던 한국 응원석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극적인 역전골이었다.
오현규는 경기 후 "선발로 뛰든, 벤치에서 시작하든 내 역할은 팀이 필요로 할 때 골을 넣는 것"이라며 "짧은 시간이라도 내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 상대 수비진을 무너뜨리겠다는 각오로 들어간다"고 밝히며 조커로서의 책임감을 전하기도 했다.
오현규의 활약으로 조커 전술의 재미를 본 대표팀이 남아공전에서 새로운 조커 카드를 꺼내들지 관심사다. 무엇보다 ‘캡틴’ 손흥민의 조커 투입 가능성이 점쳐진다.
손흥민은 적지 않은 나이로 인해 후반 들어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다만 수비 라인을 무너뜨리고 뒤로 침투해 들어가는 움직임이 여전히 날카롭기 때문에 이와 같은 칼을 후반 중반 이후 꺼내든다면 위력이 배가될 수 있다.
물론 에이스를 경기 시작 벤치에 앉혀둔다는 것은 또 다른 모험일 수 있다. 하지만 이번 대회 흐름이 ‘후반 막판 승부수’로 전개되는 만큼 홍명보 감독이 실리적인 운영의 묘를 선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