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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중 "안주가 가장 무섭다, 그래서 또 낯선 곳으로" [D:인터뷰]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6.06.21 16:09
수정 2026.06.21 16:09

'신사: 악귀의 속삭임' 한국·일본 오컬트

구마키리 가즈요시 감독 연출

김재중 주연

14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김재중이 이번에는 오컬트 호러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영화 '신사: 악귀의 속삭임'은 일본 고베의 폐신사에 답사를 갔던 대학생 3명이 실종된 뒤, 박수무당 명진이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며 정체불명의 악귀와 맞서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여름의 끝', '내 남자', '무곡' 등 일본 영화계의 독창적인 연출가로 평가받는 구마키리 가즈요시 감독의 첫 한국 영화이기도 하다.


작품은 단순히 악을 퇴치하는 영웅 서사보다 인간 내면에 잠재된 어둠과 악한 감정을 들여다보는 데 집중한다. 한국의 샤머니즘과 일본 폐신사가 지닌 기괴한 정서를 결합해 기존 오컬트 장르와는 또 다른 분위기를 구현했다.


ⓒ라이브러리컴퍼니


김재중은 극 중 특별한 능력을 지닌 박수무당 명진 역을 맡았다. 미대 출신의 세련된 무당이라는 독특한 설정부터 지금껏 보여주지 않았던 음울하고 미스터리한 면모까지 담아내며 새로운 변신에 나섰다. 2012년 영화 '자칼이 온다' 이후 14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인 만큼 작품 선택에도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배우라는 직업 자체가 너무 오랜만이었어요.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은 욕구는 있었는데 상황적으로 쉽지 않았던 부분도 있었죠. 연기는 굉장히 즐겁고 매력적인 일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많은 분들의 시간과 돈이 들어가는 작품에 '시간 나니까 한번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참여하면 안 되니까요. '신사: 악귀의 속삭임'은 제가 해보지 않았던 호러 오컬트 장르였고, 그런 점이 제 호기심을 자극했죠. 결국 쓰여 있는 걸 연기로 구현하는 작업이잖아요. 부담도 크지만 무언가에 깊게 집중하고 계속 고민하는 과정 자체가 굉장한 쾌감을 주더라고요. 이런 즐거움을 주는 일이 또 있을까 싶었죠."


김재중이 연기한 명진은 관객에게 많은 것을 설명하지 않는 인물이다. 영화 초반부터 무언가를 알고 있는 듯한 태도를 보이지만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감정 역시 절제된 상태로 유지된다. 이는 촬영 과정에서 캐릭터가 여러 차례 수정되며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결과였다. 김재중은 감독이 영화의 미스터리를 유지하기 위해 명진에게 많은 것을 숨기는 방식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대본이 두세 번 정도 수정됐고요. 처음에는 그냥 한국 또래 청년 같은 느낌의 캐릭터였는데 그런 부분들이 지금은 다 눌려 있는 상태였어요. 감독님이 영화 전체 흐름을 봤을 때 명진이 어떤 자세를 취하느냐에 따라 영화 분위기 자체가 완전히 달라진다고 판단하셨고요. 그래서 감정이나 표현을 최대한 누른 상태로 갔죠. 감독님은 영화 안에 많은 걸 숨기고 장치적으로 만들고 싶어 하셨던 것 같아요. 다만 표현되지 않은 부분도 많아서 해석이 필요한 영화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요."


다만 배우 입장에서 이러한 변화는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인물을 설득력 있게 만들어야 했고, 관객의 궁금증을 유발하면서도 인물의 중심을 잃지 않아야 했기 때문이다. 김재중 역시 수정이 거듭될수록 명진을 새롭게 이해해야 했다고 털어놨다.


"처음에는 선택지가 많은 캐릭터였어요. 배고프면 배고프다고 하고 즐거우면 즐겁다고 표현할 수 있는 인물이었죠. 그런데 수정 과정을 거치면서 훨씬 더 어둡고 무거운 인물이 됐고요. 단순히 신기가 있거나 사랑 때문에 힘든 사람이 아니라 계속 의문을 유발하는 인물이어야 했어요. 그래서 대사도 많이 줄었고 말수도 적어졌죠."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미스터리가 관객에게만 적용된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구마키리 감독은 명진의 과거와 숨겨진 서사 일부를 배우들에게도 처음부터 모두 공개하지 않았다. 김재중 역시 캐릭터에 대한 궁금증을 안은 채 촬영을 이어가야 했다.


"감독님이 배우들에게도 많은 정보를 일부러 늦게 알려주셨어요. 할머니 이야기나 명진의 과거 같은 것들이요. 그걸 너무 일찍 알면 초반에 드러나지 말아야 할 감정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명진은 끝까지 궁금한 인물이어야 했고요. 저도 감정을 누르는 데 정말 많은 노력을 했죠."


일본 감독과의 작업은 언어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같은 대사를 두고도 한국과 일본이 받아들이는 감정의 결이나 표현 방식이 달랐고, 그 간극을 좁혀가는 과정이 중요했다.


"같은 말이라도 한국어와 일본어는 표현 방식이 많이 다르잖아요. 일본어는 훨씬 시적인 표현들이 많고요. 그런 감정이나 뉘앙스가 잘 전달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저는 한국어로 연기하지만 감독님은 다른 감각으로 이 텍스트를 바라보실 테니까 그런 표현과 해석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를 정말 많이 나눴죠. 보통은 말투 하나, 어미 하나도 함부로 못 바꾸게 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데 감독님은 이미 한국어 대사를 충분히 숙지하고 계셨고 불편하면 편하게 바꿔보자고 하셨어요. 그래서 자유로운 분위기이긴 했는데 오히려 배우들 입장에서는 더 고민이 많았죠. 내가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 게 제3자가 보기에도 자연스러운 건 아닐 수 있으니까요."


오컬트 장르인 만큼 김재중 역시 촬영 전 다양한 레퍼런스를 떠올렸다. 특히 개봉 직전 흥행 돌풍을 일으킨 '파묘'를 자연스럽게 비교 대상으로 생각했지만, 실제 촬영에 들어가며 두 작품이 지향하는 방향은 전혀 다르다는 점을 깨달았다.


"'파묘'는 고증이 굉장히 중요한 영화였잖아요. 그런데 저희는 그런 방향은 아니었어요. 오히려 히어로물에 가까웠죠. 명진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무당이라기보다 뭐든 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일종의 슈퍼히어로 같은 캐릭터였죠."


ⓒ라이브러리컴퍼니


명진이라는 인물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내려놓아야 했던 것은 무당에 대한 고정관념이었다. 김재중은 한국인이 생각하는 무당과 일본 감독이 바라보는 무당의 이미지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며, 이번 작품은 현실적인 재현보다는 판타지적 해석에 가까운 접근을 택했다고 말했다.


"일본 감독님이 바라보는 무당은 우리와 다를 수 있잖아요. 락샤사 자체도 굉장히 판타지적인 존재고요. 무당이 다른 종교의 악귀와 싸운다는 설정 자체도 현실적이라기보다 판타지에 가까웠죠. 그런 상상력을 열어두고 접근했던 것 같아요."


영화 후반부와 결말은 관객들 사이에서도 가장 많은 해석이 오가는 지점이다.


"마지막에 방아쇠를 당긴 건 악귀가 아니라 명진이었어요. 자신이 악귀에게 지배당할 걸 알면서도 당긴 거죠. 지금까지는 스스로를 선하고 억울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결국은 받아들이기로 한 거예요. 다만 엔딩 자체는 악귀의 인격으로 끝난다고 봐야 할 것 같고요."


의외로 김재중이 아쉬움을 느낀 부분은 연기가 아니라 비주얼이었다. 영화 속 명진은 악귀를 쫓으며 폐신사를 헤매는 인물이지만, 스크린에 담긴 모습은 생각보다 깔끔하고 정돈돼 보였다는 것. 특히 클로즈업 장면이 많은 작품 특성상 배우 김재중의 외모가 먼저 눈에 들어가는 순간들이 있었고, 그는 오히려 그런 부분이 캐릭터 몰입에는 방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개인적으로는 명진이 조금 더 꾀죄죄하고 망가져 보여도 됐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는 거의 생얼에 가까웠거든요. 그런데 화면에는 생각보다 깔끔하게 나오더라고요. 저는 오히려 각도가 이상하게 나오거나 거칠게 보이는 장면들이 더 좋았어요. 그런 게 캐릭터에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죠."


가수, 배우, 제작자, 예능인까지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고 있는 김재중에게 도전은 선택이 아닌 삶의 방식에 가깝다. 익숙함에 머무르기보다 끊임없이 새로운 영역에 자신을 던져온 그는 연기 역시 같은 이유로 놓지 못했다고 했다. 안주보다 변화, 익숙함보다 낯섦을 택해온 김재중의 도전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저는 하나에 안주하는 걸 가장 힘들어해요. 익숙해지는 순간 오히려 스스로에게 독을 주고 싶어지더라고요. 일부러 힘든 걸 찾아가고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도 그런 이유고요. 연기도 같은 맥락인 것 같아요. 앞으로도 익숙한 것보다 새로운 걸 통해 계속 자극받고 성장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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