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막는 시위도 '공공일자리' 되나… 시민 세금으로 시민 불편 키울라
입력 2026.08.18 06:00
수정 2026.08.18 06:00
서울시의회, 민주당 주도로 2023년 폐지된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부활 추진
개정안에 '권익옹호 활동 수행하는 캠페인 형식의 공공일자리' 명문화
과거 서울시 조사결과 장애인 직무활동 50.4%가 집회·시위·캠페인에 집중
전장연 지하철 시위에 재정 투입되면…시민 불편 유발행위에 정당성까지 부여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소속회원들이 3일 혜화역 4호선 플랫폼에서 "장애인 권리예산 책임 보장" 등을 촉구하며 지하철 탑승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시위로 시민 불편이 이어지는 가운데, 서울시의회에서 2023년 폐지된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를 다시 제도화하는 조례안이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추진되고 있다.
특히 이번 조례안이 권익옹호를 위한 '캠페인 활동'을 공공일자리의 직무로 명문화하고 있어, 과거와 같이 집회·시위에 참여하는 활동까지 시민 세금으로 임금을 지급하는 일자리로 운영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장애인의 노동권 보장이라는 정책 취지와 별개로, 시민의 일상에 직접적인 불편을 주는 활동을 공공재정으로 지원하는 것이 적절한지를 놓고 보다 엄격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17일 서울시의회에 따르면 이상훈 서울시의원이 대표 발의하고 더불어민주당 소속 시의원 80명 전원이 참여한 '서울특별시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 지원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은 '권리중심공공일자리'를 "중증장애인이 노동자로 고용되어 「장애인의 권리에 관한 협약」을 홍보하고 그 이행을 촉구하기 위해 장애인 인식개선, 문화‧예술 활성화 및 권익옹호 활동을 수행하는 캠페인 형식의 공공일자리"로 정의하고 있다.
또 서울시장이 관련 일자리의 개발·보급·확대와 참여 규모, 전담인력, 위탁기관 선정‧운영 등에 대한 계획을 세우도록 하고 있다.
지원 내용도 구체적이다. 개정안은 참여자에게 최저임금 이상의 임금 지급 및 1년 이상의 계속고용을 보장하도록 하고 있다. 위탁기관에는 전담인력 인건비 등을 지원하고, 전담인력을 근로자 5명당 1명 수준으로 배치하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이 1일 서울 종로구 혜화동로터리 버스정류장에서 열린 출근길 버스 탑승 시위에서 교통약자이동권보장법 전면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과거 권리중심공공일자리의 실제 운영 과정에서 상당한 비중이 집회와 시위, 캠페인에 집중됐다는 점이다. 장애인의 사회적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 추진된 권리중심공공일자리가 오히려 시민의 불편을 초래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이같은 문제를 인식한 서울시가 2023년 사업 운영 실태를 조사한 결과 당시 참여자의 직무활동 가운데 50.4%가 집회·시위·캠페인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는 이 같은 운영 실태와 정책 효과를 검토한 끝에 해당 사업을 종료하고, 2024년부터 카페·병원·교육기관·제조·IT 등 실제 직무 경험과 민간 취업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높인 '장애 유형 맞춤형 특화일자리'로 사업을 전환했다.
특히 전장연의 출근시간대 지하철 탑승 시위가 계속되는 시점에서 이러한 사업을 추진한다면 "세금으로 시민 불편을 초래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전장연은 지난 10일에도 2027년 정부 예산안에 '장애인 권리 예산' 반영을 요구하며 용산역과 혜화역에서 지하철 탑승 시위를 진행하였다. 용산역 상행선 열차가 한때 무정차 통과하면서 월요일 출근길 지하철 이용객들이 불편을 겪었다.
물론 이번 조례안이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 참여 자체를 공공일자리로 인정하거나 임금을 지급하도록 직접 규정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조례가 권익옹호를 위한 '캠페인 형식의 공공일자리'를 명시하고 있고, 과거 사업에서 실제 직무의 절반 이상이 집회·시위·캠페인에 집중됐던 만큼 사업이 부활할 경우 유사한 논란이 재연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회원들이 지난 7월2일 오전 서울지하철 1호선 시청역 승강장을 점거하고 탑승시위를 준비하고 있다.ⓒ데일리안 진현우 기자
결국 이번 조례안의 쟁점은 장애인의 사회 참여와 노동권을 보장할 것인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활동까지 시민 세금으로 지원하는 '공공일자리'로 인정할 것인가로 보인다.
중증장애인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하고 경제활동 참여 기회를 넓히는 것은 공공의 중요한 역할이다. 다만, 시민의 이동권을 제한하거나 출퇴근길에 직접적인 불편을 주는 집회·시위가 공공일자리의 업무로 인정될 경우, 시민 입장에서는 자신이 낸 세금이 자신과 다른 시민의 일상을 불편하게 만드는 활동에 사용되는 모순적인 상황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더구나 개정안은 일회성 지원을 넘어 참여자에게 1년 이상의 계속고용을 지원하고 위탁기관과 전담인력에 대한 재정지원 근거까지 마련했다. 조례 제안 이유에서도 권리중심공공일자리의 '체계적인 예산 지원'과 위탁기관 운영 근거 마련을 명시하고 있어 사업이 제도화될 경우 지속적인 재정 투입이 뒤따를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은 서울시의회 전체 118석 가운데 재의결 기준인 3분의 2를 넘는 80석을 확보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오세훈 서울시장이 재의를 요구하더라도 민주당 의원들이 찬성 입장을 유지하면 단독으로 재의결할 수 있다. 충분한 사회적 논의와 서울시와의 협의 없이 의석수를 앞세워 조례가 강행 처리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장애인의 일할 권리를 보다 두텁게 보장해야 한다는 것은 사회의 당연한 과제다. 다만 '권리 보장'이라는 이름 아래 시민 불편을 유발하는 집회·시위까지 공공의 일자리로 인정하고 세금으로 지원하는 것이 타당한지는 별개의 문제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부활 논의에 앞서 어떤 활동을 공공일자리로 인정할 것인지, 집회·시위와 공공재정 지원 사이에 어떤 기준과 경계를 둘 것인지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