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개방' 전망…석유 최고가격제 출구전략 논쟁 가열
입력 2026.06.16 11:36
수정 2026.06.16 11:36
정유업계, 누적 손실 3조원 주장
지정학적 리스크 해소에 즉각 종료 요구
산업부, 유가 90달러 하향 안착이 먼저
'시장 자율 회복'·'민생 충격 최소화' 연착륙 무게
호르무즈 해협 케심섬 해안에 지난 4월 18일 이란의 해협 봉쇄로 발이 묶인 컨테이너선이 보이고 있다.ⓒ뉴시스
미국과 이란의 극적인 종전 합의로 중동 물류의 핵심 동맥인 호르무즈 해협의 재개방 가능성이 열렸다. 이에 국내 에너지 시장을 통제해 온 '석유 최고가격제'의 종료 여부와 구체적인 시점을 둘러싼 공방이 본격화되고 있다.
정유업계는 공급 리스크가 해소된 만큼 기업에 막대한 손실을 유발하는 비정상적인 가격 통제 조치를 즉각 철회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정부는 실제 국제 유가의 안정세와 국내 시장에 미칠 충격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며 속도 조절론을 고수하고 있어 시장의 자율성 회복과 민생 물가 안정이라는 두 가치가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16일 업계와 시장 일각에서는 최고가격제의 실효성이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며 즉각적인 제도 폐지를 요구하고 나서고 있다. 가장 큰 명분은 중동발 지정학적 위기의 해소다.
미-이란 종전 선언으로 호르무즈 해협의 선박 통항이 자유로워지면 원유 공급망의 불확실성이 사라지는 만큼 가격을 인위적으로 묶어둘 정당성이 빈약해진다는 논리다.
경제적 피해도 한계 수치에 도달했다는 지적이다. 정유업계는 최고가격제 장기화에 따른 누적 손실액이 이미 3조 원을 넘어섰으며 이는 향후 고스란히 국가 재정 부담이나 기업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지난 5월 정유사가 주유소에 공급한 차량용 휘발유·경유 도매 판매량이 전년 대비 1.8% 반등한 점을 들어 가격 억제를 통한 소비 통제 효과가 무력화됐다는 '정책 시한부론'을 펼치고 있다.
반면 정부는 이러한 정책 한계론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제도 유지의 당위성을 옹호하고 있다. 산업통상부는 정유업계가 주장하는 5월 도매 공급량의 상승은 주유소들이 향후 유가 변동이나 재고 관리를 위해 선제적으로 물량을 확보한 데서 비롯된 일시적 '착시 현상'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정부가 제시한 지표는 한국석유관리원의 실질 소비 데이터다. 분석 결과 소비자의 유류 소비 추세를 정확히 반영하는 '주유소 소매 판매량'은 5월 기준 전년 동월 대비 오히려 5.6%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최고가격제가 고유가 정국에서 국내 가격 급등을 차단하는 강력한 방파제 역할을 해냈고 소비 억제 효과 역시 시장에서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입증하는 결과라고 강조한다.
이에 따라 정부는 최고가격제 종료를 위한 가이드라인으로 우선 지정학적 불안이 해소되어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 통항이 지속적으로 보장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국제 유가가 배럴당 90달러 이하 수준에서 하향 안정화돼 예측 가능성이 확보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제도 종료 시 국내 유가 급등 방지과 서민 경제 충격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중동의 정치적 합의가 실제 국제 원유 시장의 물리적 거래 가격 하락으로 정착되기까지는 필연적인 '시차(Time Lag)'가 존재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오펙 플러스(OPEC+)의 감산 기조 등 변수가 남아있는 상황에서 섣불리 가격 규제를 풀었다가 국내 유가가 다시 요동치면 그동안의 정책적 비용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3조원 손실 보전 요구에 대해서도 석유사업법 제23조 제3항에 따른 지원 원칙은 재확인하되 실제 재정 지원 규모는 제도가 완전히 종료된 후 공인 회계법인의 엄격한 원가 검증을 거쳐 사후에 산출하겠다는 입장이다.
결과적으로 최고가격제의 종료 가능성은 열렸으나 실질적인 폐지 시점은 국제 유가가 90달러 이하로 떨어지고 물가 충격 완화 장치가 완비되는 시점까지 지연될 공산이 크다.
업계의 자율성 요구와 정부의 민생 안정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이에 시장 전문가들은 "한 번에 제도를 없애기보다 최고가 한도를 점진적으로 높여 시장 가격과의 격차를 좁히는 '단계적 연착륙(소프트 랜딩)' 시나리오가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