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받치는 바지랑대 [조남대의 은퇴일기(101)]
입력 2026.06.16 14:47
수정 2026.06.16 14:47
우리는 이따금 잊고 산다, 세상에 젖어 있는 것들은 대개 햇볕과 바람의 손길을 지나야 제 빛깔을 되찾는다는 사실을. 봄의 전령이 도착한 양평의 잔디 위 건조대에 널린 빨래를 바라보며 나는 마름의 의미를 떠올린다.
ⓒ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는 양평 농원이다. 따뜻한 커피잔을 앞에 두고 멀리 백운봉을 바라보며 테크 위 탁자에 앉아있다. 연초록 물이 오르기 시작한 잔디밭 가운데 건조대가 놓여 있고 그 위로 갓 세탁한 빨래들이 봄바람에 몸을 맡긴 채 잔잔하게 춤을 춘다. 하얀 수건과 다양한 빛깔의 옷들이 나풀거리며 내는 소리는 막 잠에서 깨어난 새들의 날개짓 소리처럼 싱그럽다. 도심의 아파트 단지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평온한 풍경이다. 도시인들에게 빨래란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일상적인 수고이다. 세탁기의 윙윙거리는 기계음 속에서 물기를 털어낸 옷가지들은 이내 컴컴한 건조기 안으로 들어가 몸을 말린다.
ⓒ
햇빛과 자연의 바람이 닿을 틈도 없이, 빠르게 처리되는 일련의 과정에서 뽀송뽀송해진 결과물만을 취할 뿐이다. 그러나 양평 마당의 빨래는 다르다. 온몸으로 쏟아지는 볕을 받아내고,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통과시키며 천천히, 확실하게 마르고 있다. 흰 셔츠는 더욱 희어지고, 꽃무늬 이불은 화사해진다. 젖은 직물의 올 사이로 따사로운 봄볕이 스며들어 물기를 증발시킬 때 풍기는 특유의 향기, 이른바 '햇빛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그것은 옷이 마르는 과정을 넘어 자연에 순응해 얻는, 일상에 묻어 있던 피로와 마음의 얼룩마저 하얗게 표백해 주는 선물인 게다.
파란 잔디밭 건조대에서 햇볕에 말라가는 빨래 ⓒ
양평의 아담한 건조대 위에서 펄럭이는 빨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니, 아득한 유년 시절 시골집 마당에 걸리던 빨래 풍경이 아득하게 떠오른다. 마당 한쪽 구석의 감나무에서 반대편 장독대 옆 자두나무까지, 굵은 철사 빨랫줄이 허공을 가로질러 길게 매달려 있다. 그것은 가족의 사계절이 걸리고 삶의 무게가 널리던 모습의 단면이었다. 특히 기나긴 겨울이 끝나고 봄기운이 완연해질 무렵이면, 어머니는 커다란 가마솥에 묵은 빨래를 푹푹 삶아내셨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빨래를 머리에 이고 개울로 가 방망이로 치고 얼음같이 찬물로 헹구어냈다. 다음은 빨랫줄의 고난이 시작되었다. 물을 잔뜩 머금은 두꺼운 이불과 식구들의 옷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팽팽하던 빨랫줄이 둥근 호를 그리며 속절없이 축 처지곤 했다. 자칫하면 애써 세탁한 이불이 마당 바닥에 닿을 찰나, 어머니는 마당 구석에 세워두었던 장대를 가져와 처진 빨랫줄 중간을 번쩍 치켜세우셨다. 끝이 Y자 모양으로 갈라진, 껍질 벗겨진 낡은 막대기, 바로 '바지랑대'였다.
많은 빨래가 널려있어 바지랑대로 받쳐진 기다란 빨래줄 ⓒ
무거운 수분을 머금고 중력에 굴복하려던 빨랫줄을 바지랑대가 꼿꼿하게 바치고 선 덕분에 빨래는 다시 허공으로 솟아올라 온전한 일광 소독을 누릴 수 있었다. 물먹은 빨래처럼 가난하고 척박했던 시절, 삶의 무게가 식구들을 짓누를 때마다 우리 가족의 빨랫줄이 진창에 처박히지 않도록 중간에서 묵묵히 버텨준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뼈마디가 굵어지도록 헌신하신 아버지의 손과 굽은 등이었으며, 허리띠를 졸라매며 끝내 무너지지 않으려던 어머니의 바지랑대가 아니겠는가.
추운 겨울에도 마을 뒤 개울에서 빨래하던 어머니 ⓒ
시선이 다시 뽀송뽀송하게 변해가는 양평의 뜰, 빨래로 향한다. 한 점 구김 없이 말라가는 평화로운 풍경 앞에서, 문득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겹쳐보게 된다. 지금 우리 사회는 과연 햇볕에 제대로 말려지고 있는가. 안타깝게도 화려한 고층 빌딩과 눈부신 디지털의 장막 뒤편에는 햇빛 한 줌 들지 않는 그늘지고 습한 밀실이 너무도 많다. 이곳에는 어김없이 곰팡이가 피어오르기 마련이다. 곳곳에 숨어 있는 묵은 관습과 불투명한 제도들이 바로 그러하다. 폐쇄적인 행정, 기득권의 담장 안에서 끼리끼리 이루어지는 밀실의 야합,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낡은 관행에 얽매여 있는 제도들은 사회의 건강을 갉아먹고 있다. 곰팡이를 없애는 확실한 방법은 축축한 어둠 속의 물건들을 눈부신 태양광 아래로 끄집어내 널어두는 일이다. 이런 병폐들을 투명성이라는 햇볕 아래, 공론의 마당이라는 바람 앞에 낱낱이 펼쳐 널어야만 제대로 된 일광 소독이 가능하다. 숨기고 덮어두려 할수록 부패의 악취는 짙어질 뿐이다.
바꾸어야 할 낡은 관행을 태양광 아래에서 말려 소독하는 모습 ⓒ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빨랫줄이 위태롭게 처져 있다는 사실이다. 극심한 경제적 양극화와 이념과 세대 갈등이라는 짐들이 사회적 안전망인 빨랫줄을 끝없이 아래로 끌어내리고 있다. 부유층과 빈곤층의 격차는 날로 벌어지고, 타인에 대한 이해와 관용 대신 날 선 혐오와 분노의 언어만이 난무한다. 갈등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공동체의 가치와 연대 의식이라는 깨끗한 빨래가 바닥에 떨어질 위기에 처해 있다. 빨랫줄을 다시 팽팽하게 받혀 올리기 위해서는 잃어버린 '바지랑대'를 찾아 세워야만 한다. 나와 다른 이를 포용하고, 상식과 대립을 넘어 타협을 끌어내는 성숙한 시민 의식이라는 튼튼한 바지랑대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이 막대기가 중심을 잡고 받쳐줄 때, 우리의 제도와 관습은 햇볕 아래에서 건강하게 소독되어 세상을 덮어줄 것이다.
우리 사회의 잘못된 부분을 바지랑대로 세워 바로잡는 모습 ⓒ
어느새 봄바람이 한바탕 회오리치며 마당을 쓸고 간다. 잔디밭 위 건조대에서 잘 마른 옷가지들이 눈 부신 햇살을 튕겨내며 환하게 웃고 있다. 저토록 밝고 건강한 풍경 앞에서 잠시 머문다, 사회 구석구석에 찌든 때와 눅눅한 곰팡이들도 용기 있게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어 맑은 바람과 따사로운 햇볕에 아낌없이 널어 말릴 수 있기를. 그리하여 마침내 뽀송뽀송하게 건조되고, 상식과 희망의 햇빛이 퍼지는 그런 세상이 오기를.
ⓒ
조남대 작가ndcho55@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