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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은 서두르지 않는다 [조남대의 은퇴일기(100)]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6.06.02 14:01
수정 2026.06.02 14:01

도시의 시간은 늘 직선이었다.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속도의 강박 속에서 호흡은 자주 가빠졌고, 문장은 점점 여유를 잃어갔다. 그러나 여기 양평은 다르다. 강물이 산허리를 휘감아 돌며 속도를 늦추는 곳. 안개는 마을의 경계를 흐릿하게 덮으며,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고 조용히 일러준다. 나는 이곳에서 비로소 시계를 풀고 대지의 리듬에 몸을 맡긴다. 전원이라는 말은 이제 단순한 주거의 형태가 아니라, 잃어버렸던 나를 찾아가는 회귀의 이정표가 되었다.


처마에 달리 풍경 ⓒ

양평의 봄은 귀부터 열린다. 겨우내 적막하던 처마 밑 풍경이 봄바람에 살랑인다. 맑은소리로 몸을 깨우니 비로소 굳어 있던 마음이 조금씩 풀린다. 울림을 시작으로 산천은 온통 연록빛 나무들로 차분히 채워진다. 덜 여문 잎사귀들이 햇살에 몸을 뒤척일 때면 세상은 막 찬물에 세수를 마친 소녀의 얼굴처럼 맑고 투명해진다. 새벽 개울 따라 피어오르는 아침 안개는 양평이 주는 첫 번째 선물이다. 날선 현실의 모서리들을 부드럽게 감싸 안으며 태고의 시간 속으로 안내한다. 안개가 걷힌 자리, 흙 밑에서는 쑥과 냉이, 눈개승마들이 고개를 내민다. 땅의 온기를 뚫고 올라온 강인한 생명력 앞에 서면, 펜을 멈추고 대지의 호흡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새벽에 피어오르는 안개 ⓒ

먼 산 능선을 따라 촘촘히 줄을 선 소나무들은 마을을 지키는 듬직한 파수꾼이다. 해거름이면 떠나가는 계절을 붙잡으려는 듯 처량하게 울어대는 뻐꾸기가 애틋하여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제 둥지를 짓지 않는 새라서인가 울음소리는 늘 남의 시간에 기대어 사는 쓸쓸함이 묻어 있다. 마당 잔디밭 건조대 위에서는 빨래가 햇살을 머금고 뽀송뽀송하게 익어간다. 가끔은 예기치 않은 손님도 다녀간다. 밤사이 마당 잔디밭에 살짝 들어와 놀다 간 고라니가 미안했던지, 농사에 보태라며 배설물을 거름으로 남겨두고 간다. 이렇듯 전원의 삶은 자연과 인간이 서로의 영역을 조금씩 양보하며 조화롭게 공존하는 법도를 배우는 과정이다.


잔디밭 건조대에 널린 빨래 ⓒ

산천에만 아름다움이 있는 것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따스한 물길이 흐른다. 이웃은 울타리를 세우되 대문이 없고, 마음의 문은 빗장 지르지 않는다. "봄나물로 부침개를 좀 부쳤어요."라며 울타리 너머로 오가는 손길에는 수식어가 필요 없는 진심이 담겨 있다. 길을 지나다 마주치면 스스럼없이 "들어와서 밥 한 끼하고 가세요."라고 말하는 이웃 덕분에 외로움은 늘 짧다. "올해는 눈개승마가 잘됐네요. 살짝 데쳤으니 맛 좀 봐요."라며 내미는 나물 한 접시에 양평의 봄볕과 흙내음의 맛이 배어 있다. 쌉싸름하면서도 끝 맛이 달큼한 나물을 씹으며 여기에 뿌리내리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앞집 울타리에 심은 주목을 낮게 자른 모습 ⓒ

앞집에 사는 목사님댁 울타리의 주목이 어느새 훌쩍 자라 시야를 가린다 싶었는데, 어느 날 외출하고 와 보니 말끔히 정리되어 앞이 훤히 트여 있었다. 답답해하는 뒷집의 마음을 어떻게 헤아렸을까. 칠십 대 후반의 연세에도 톱과 사다리를 능숙하게 다루는 목사님의 모습이 그저 감탄스러울 따름이다. 그 광경을 보며 문득 우리 집 울타리의 자작나무가 떠올랐다. 지붕 키보다 두 배나 더 자라 사다리차를 불러 잘라야 하나 고민하던 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목사님께서 나무가 너무 크면 부러져 피해를 볼 수도 있다며, 괜찮다면 함께 손을 보지 않겠느냐고 먼저 말을 건네셨다. 도움을 청하기도 전에 이웃의 수고를 헤아리고, 마치 제 일처럼 팔을 걷어붙이는 마음이 어떤 설교보다도 더 깊고 따뜻하게 다가왔다. 이런 분들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은 더없이 축복이다. 전원생활이란 혼자 이뤄내는 성취가 아니라, 서로의 손길과 배려로 완성되는 공동체의 예술임을 새삼 깨닫는다.


목사님의 도움을 짧게 자른 자작나무 ⓒ

양평의 하루는 여백으로 가득하다. 아침 안개에 가려 희미하게 보이는 백운봉은 하루를 너그러움과 한가로움으로 시작하게 한다. 오일장이 서는 날이면 읍내는 다시 활기로 넘친다. 덤으로 한 움큼 더 얹어주는 좌판 아주머니의 인심은 값으로 따질 수 없는 넉넉함을 느끼게 해준다. 순대와 어묵, 머리고기를 안주 삼아 막걸리를 나누는 사람들 사이에는 고단함보다 웃음이 먼저 돈다. 이런 기억을 품은 어르신들은 장터에서 술 한잔에 얼굴이 붉어지며, 목소리도 자연스레 높아진다. 옆에서 혼자 밥을 먹고 있으면 “이리 와서 막걸리 한잔하소” 라며 스스럼없이 자리를 내준다. 그 한마디에 어색함은 금세 풀리고, 사람 사이의 거리도 자연스럽게 가까워진다. 어머니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어린 날의 장터 풍경이 떠오른다. 손에 쥐여주던 따뜻한 호떡 하나,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지나가던 좁은 길의 온기까지도 그대로다. 양평의 장날은 단순한 거래의 자리가 아니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웃음을 건네고, 하루를 나누는 삶의 자리다.


양평 장날 좌판에서 물건을 구입하는 주민들 ⓒ

옆집 닭의 울음소리에 잠을 깨고, 강이 보이는 카페에서 노트북을 펼쳐 글을 쓰는 시간은 작가에게 허락된 최고의 사치다. 문장은 강물처럼 유연해지고, 생각은 산 그림자처럼 깊어진다. 때로는 두물머리의 거대한 느티나무 옆 강변을 걷는다. 거기엔 다정히 손을 잡고 걷다가 벤치에 앉아 남자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는 희끗희끗한 머리칼의 중년이 있다. 그들의 뒷모습은 완벽한 한 편의 수필이다. 세월의 풍파를 견디고 비로소 얻어낸 평화는 양평의 잔잔한 물결과 닮았다. 강변에서 한가로이 노닐다 잔잔한 물 자국을 남기며 힘차게 차오르는 철새들을 본다. 그들의 비상은 무겁지 않다. 떠나야 할 때를 알고, 머물러야 할 자리를 지키는 몸짓처럼, 나의 삶도 양평의 품 안에서 더 차분하고 맑아질 수 있을까.


쉬엄쉬엄 흐르는 남한강 ⓒ

양평은 이제 단순히 머무는 물리적 공간이 아니다. 비워진 마음을 다시 채우고, 흐트러진 영혼의 결을 천천히 다듬어주는 삶의 터전이다. 강물이 산자락을 따라 제 속도로 굽이쳐 흐르듯, 나 또한 이곳에서 서두르지 않는 삶의 리듬을 배워간다. 아침 안개가 백운봉 자락을 부드럽게 감싸고, 마당의 철쭉 위에 맺힌 이슬이 햇살에 반짝이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하루의 마음도 맑게 깨어난다. 오늘도 나는 양평의 강물 곁에서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천천히 시간을 닮아가고 싶다.


조남대 작가ndcho5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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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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