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로 쪼개진 ‘공룡 기재부’…예산권 쥔 기획처 위상은 여전 [기자수첩-정책경제]
입력 2026.06.16 07:00
수정 2026.06.16 09:58
권한 분산 내세웠지만 예산권 위계 그대로
기획예산처. ⓒ데일리안DB
기획재정부를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로 나눈 명분은 권한 분산이었다. 경제정책과 예산권이 한 부처에 과도하게 집중됐다는 비판을 덜고 부처 간 균형을 맞추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조직을 나눴다고 해서 예산권 자체가 가진 힘까지 약해진 것은 아니었다. 현장에서는 상대가 기재부에서 기획처로 바뀌었을 뿐, 예산을 쥔 쪽과 예산을 받아야 하는 쪽의 위계는 여전하다는 말이 나온다.
예산권은 정부 안에서 가장 강한 권한 중 하나다. 각 부처 사업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부처든 사업을 추진하려면 결국 예산 문턱을 넘어야 한다. 부처 입장에서는 기재부가 쪼개졌다고 한들 '돈줄 쥔 부처'를 상대해야 하는 현실이 크게 달라지지 않은 셈이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최근 예산 편성 과정에서 일부 부처 실무자들 사이에서도 감지된다. 인사 때마다 각 부처 예산 담당자를 불러 사업 설명을 듣는 관행이 대표적이다. 형식은 사업 설명이지만 예산을 쥔 쪽이 부르면 들어가 설명해야 하는 구조 자체가 이미 수평적 관계와는 거리가 멀다.
한 정부 관계자는 "굳이 불러서 사업 설명을 시킨다"며 "예산을 쥔 쪽이 부르면 들어가 설명해야 하는 구조 자체가 이미 수평적 관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최근 추가경정예산 편성 과정에서도 비슷한 얘기가 나온다. 아직 본예산이 많이 남아 있는 사업인데도 추경 편성을 사실상 요구받았다는 것이다. 당장 추가 예산이 필요하지 않더라도 예산을 쥔 기획처가 받으라고 하면 부처 입장에서는 거부하기 어렵다고 한다.
의무지출 감액을 둘러싼 불만도 같은 맥락이다. 의무지출은 법령에 따라 지급 의무가 발생하는 예산이다. 각종 수당이나 법정 급여처럼 대상과 산식이 정해진 예산은 제도 변경이나 법 개정 없이는 줄이기 어렵다. 그런데도 일단 감액안을 내고 나중에 기획처가 다시 조정해주겠다는 식의 요구가 있었다는 말이 나온다.
실질적인 지출 구조개혁이라기보다 '대통령에게 재정을 아끼고 있다'는 숫자를 먼저 보여주려는 전시성 행정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줄일 수 있는 예산과 줄이기 어려운 예산의 구분보다 감액 실적을 앞세우는 순간, 재정개혁은 숫자 맞추기로 전락한다.
공직사회에서는 이런 문제가 일회성 관행이 아니라 예산 권력에 기대 굳어진 문화라고 본다. 한 정부 관계자는 "다른 부처에서는 보기 힘든 문화가 예산 쪽에서는 너무 당연하게 굴러간다"며 "예산을 쥔 부처 앞에서는 결국 을이 될 수밖에 없다는 체념이 퍼져 있다"고 말했다.
정부조직 개편의 성패는 부처 이름을 어떻게 나눴는지에 있지 않다. 예산권이 어떻게 행사되는지, 그 과정이 얼마나 투명한지, 각 부처가 실제로 수평적 협의를 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권한 분산이 조직도 위의 변화에 그치고 예산권력의 작동 방식이 그대로라면, 현장에서는 개혁이 아니라 '갑'의 주소 이전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