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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소회동과 글로벌 네트워크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6.06.09 07:00
수정 2026.06.09 07:00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맨 오른쪽부터)와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이해진 네이버 의장이 5일 서울 마포구 홍대 인근 삼겹살 음식점 '형님 저요'에서 이른바 '삼소(삼겹살·소주) 회동’을 갖고 있다.ⓒ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삼겹살과 소맥의 세계화


며칠 전 젠슨 황 엔디비아 최고경영자(CEO)의 삼소 회동이 장안의 화제다. ‘삼소 회동’이 뭔지 궁금했는데, ‘삼겹살-소맥’의 준말이란다. 1차 반도체 회동, 치맥 회동만 해도 신기하고 반가웠다. 21세기 인공지능(AI)시대를 선도하는 세계 1위 기업 창업주 겸 CEO가 굳이 한국을 방문해 한국 대기업 CEO를 만나는 것만도 한국인으로서 어깨 으쓱할 일이었다. 그런데 만나는 장소와 메뉴, 술까지 한국의 일반 직장인과 같은 장소에 같은 메뉴, 같은 술이라니! 잰슨 황을 단 한 번 만나보지도 않았지만, 정말 호감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2차 반도체 회동은 1차에 비해 더 한국적인 느낌이 강하다. 1차 회동 메뉴였던 치맥(치킨+맥주)도 세계 공통의 먹을 거리요, 세계인의 맛이다. 2차 돼지 삼겹살은 베이컨·동파육 식으로 이름만 다를 뿐 이슬람을 제외한 세계 공통의 맛이긴 하지만 ‘소맥’은 한국만의, 그것도 서민의 술이다. 이제는 한국 서민의 술이 글로벌 대기업 CEO 식탁에 오르게 되었다. 가슴 뿌듯한 일이다.


20여 년 전 乙의 기억


20여 년 전 현역 언론인 시절, 한국을 방문한 앨빈 토플러와 단독 인터뷰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카메라팀을 대동하고 특급 호텔 별실에서 만나 30분 질문 답변하고 서명한 책을 교환하고 기념 사진을 찍고.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그랬다. 차 한 잔 못 마시고, 사진도 못 찍고 여왕에게 먼저 말도 못 걸고 심지어 여왕 만난 비표조차 반납하고 나오는, 일방적인 친견 절차였다. 여왕을 만났다는 증거가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유럽 지도자나 세계적 저술가, 글로벌 기업 CEO를 따로 만날 기회를 얻으면 그 자체로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하고 자랑했다.


나는 그들이 준 책 열심히 읽고 고이 간직했다. 그들은 내가 준 책 거들떠나 봤으려나? 인천 공항 출국장에 버리고 가지는 않았을지? 어차피 그들은 한글과 한국어 이해하지도 못하니. 그런데 이제 현 시점 가장 주목 받는 글로벌 기업 총수가 한국 직장인들이 만나는 평범한 맥주집과 삼겹살 집에서 한국 대기업 총수들을 만나 소맥 폭탄주를 마신다. 글로벌 대기업 총수가 한국을 더 알려고 하고 한국 기업인을 더 알려고 하고 더 친해지려고 한다. 한국의 국가적 위상이 크게 격상된 것이다. 국내총생산(GDP)·무역액같은 숫자가 다가 아니다. 이런 게 진짜 강대국이며 진짜 선진국이다.


삼소회동과 높아진 국격


젠슨 황 CEO은 숟가락을 휘저어 거품 가득한 소맥을 제조하고 “고 코리아”, “고 SK”, “고 LG”, “고 네이버”를 외치며 건배를 이끌었다. 이해진 네이버 의장이 쌈 싸는 법을 알려주자 젠슨 황은 깻잎을 집어 고추를 쌈장에 찍어 한 입 크게 먹었다. 이해진 의장이 골든 벨을 울려 그날 다른 테이블의 식비까지 네이버페이로 결제했다 한다. 식사를 마치고 젠슨 황과 최태원 회장, 구광모, 이해진 다섯 총수는 일반 시민들과도 흥을 나눴다 한다. BBQ치킨에서의 2차에는 젠슨 황의 부인과 장녀도 합류했다.


젠슨 황과 최태원 SK은 지난해 10월 이후 7개월 만에 여섯 번째 만났다. 2차 회동에서는 “PC방 다녀온 이야기”같은 “무겁지 않은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사실 이런 자리에서 AI니 로보틱스니 반도체니 얘기 꺼내는 것은 하수다. 거물들이나 고수들은 그런 이야기 쉽게 안 꺼낸다. 그 바쁜 사람들에게는 서로와의 인간적 대화가 중요하다. 메시지는 분명하다. “내게는 수 억 달러짜리 프로젝트보다 당신과의 이 시간이 훨씬 소중하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유태인 네트워크, 화상 네트워크가 바로 이렇다. 캐주얼한 스킨십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가까워진다. 케빈 워시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 역시 미국 내 유태계 인맥에 속한다. (본지 2월 3일자 김구철의 소프트파워 외교 ‘美 Fed 차기 의장 지명자, 케빈 워시의 놀라운 처가 인맥’ 편 참조)


변방에서 21세기 경제대국


20세기 초 일본 군인이 식민지 조선을 방문하면 식민지 조선인은 머리가 땅에 닿도록 굽신거렸다. 조금 거슬러 올라가 16세기 명나라 환관이 방문하면 번국(蕃國) 조선은 온 조정이 국력을 기울여 떠들썩하게 칙사를 맞았다. 그 칙사는 기껏해야 환관이나 내시에 불과했는데도 말이다. 청주 한씨 한확은 여동생을 명나라 황제의 후궁으로 집어넣어 권세를 누리고 반란으로 집권한 이유(세칭 세조)와도 사돈이 된다. 고려 말 원나라 황후를 탄생시켜 횡포를 부린 기씨와 다를 바 뭐 있었으랴. 그게 약소국 조선의 비애였다. 신라가 3국을 통일해 잠깐 한반도는 독립국 지위를 유지했을 뿐, 천 여 년 이렇게 서럽게 살아왔다. 그런데 그 한을 우리 기업들이 씻어주고 있는 것이다.


최태원 SK 회장(왼쪽)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7일 서울 강남구 깐부치킨 삼성점에서 치맥 회동을 하던 중 치킨을 나눠주고 있다.ⓒ연합뉴스

지난번 1차 치맥회동 때만 해도 ‘현실의 한국’이라는 느낌보다는 별나라 이야기 느낌이 더 컸다. 얼마 전 방한한 트럼프 주니어와 정용진 신세계 회장의 인연도 그런 느낌이었다. 이번 2차 삼소회동은 현실의 한국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왔다. 이제 그 차이를 알겠다. 1차 이재용 회장, 정 회장, 정용진 회장 모두 3세 총수다. 2차 삼소 회동에 참여한 이해진 의장은 자수성가한 창업 1세대다. 이제야 한국 경제도 정주영·이병철·박태준의 1세대에서 이명박, 김우중의 2세대 샐러리맨 신화를 거쳐 3세대 벤처 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것이다.


한국 경제의 새로운 병풍


30년 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데는 국민의 금 모으기 운동도 크게 작용했지만 박태준·김대중·김종필 3인의 일본 네트워크이 결정적이었다. 평생 다른 길을 살아온 3인이 국난 극복에 힘을 합쳤다. 평창 올림픽 유치에는 작고한 이건희 삼성 회장의 공이 매우 결정적이었다. 네 원로 모두 작고해 지금 한국은 대외 네트워크가 모두 사라졌다. 둔한 사람은 모를 것이다. 병풍 없는 한국 경제, 그 불안감을! 그러니 요즘 한국 대기업 총수들이 글로벌 대기업 CEO와 스킨십을 쌓는 것은 한국 기업과 경제를 위해, 국익을 위해 매우 바람직하다.


정부도 기업인들끼리 잘 하고 있는데 비공식 네트워크에 굳이 개입할 필요 없다. 기업과 기업주의 정치 성향이 특정 정권 입맛과 다를 수도 있다. 그러나 정권 취향과 다를수록 외교에는 더 도움될 수도 있다. 정권 취향에 맞지 않다고 불필요하게 공격하고 기업주를 탄압하면 장기적으로는 국익을 훼손하고 당장 정권에도 부메랑이 된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스타벅스 공격하다가 역풍을 맞지 않았던가? 당장 이용할 생각도 버려라. 황금알 꺼내려고 거위 배를 가르는 꼴이다.


짐짓 욕심도 생긴다. 경제의 쌀이라 불리는 반도체 부문만이 아니라, 경제의 피라 불리는 금융에는 이런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없을까?



글/ 김구철 금강대 연구교수·전 TV조선 선거방송기획단 단장


※외부 필진 칼럼입니다.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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