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피플라운지] "90조 떠났다"…디지털자산 골든타임은?
입력 2026.06.09 08:32
수정 2026.06.09 08:32
윤현근 인사이트3 대표, "입법 지연 비용 현실화…시간은 한국 편 아냐"
"입법 공백 길어질수록 자본·기업 해외로 이동"
윤현근 인사이트3 대표가 지난 5일 롯데 시그니엘에서 데일리안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김민희 기자
지난해 하반기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해외 사업자와 개인지갑으로 빠져나간 자금은 약 90조원.
윤현근 인사이트3 대표는 이 같은 자금 이동이 국내 투자자들의 수요를 제도가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스테이블코인, 디파이(DeFi), 글로벌 거래소 서비스 등 다양한 수요가 존재하지만 국내 규제 체계는 여전히 제한적인 영역에 머물러 있어 투자자와 자금이 해외 시장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상자산 업계에서 윤 대표는 정책 전문가이자 현장을 경험한 실무가로 통한다.
그는 블록체인 프로젝트에서 8년간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맡으며 토큰 이코노미 설계부터 국내외 거래소 상장(업비트·빗썸·Gate.io·HTX), 금융당국 대응, 세무조사까지 전 과정을 주도했다.
현재는 테더(Tether), 리플(Ripple), 퍼스트디지털트러스트(First Digital Trust) 등 글로벌 디지털자산 기업들의 한국 진출 관련 전략 자문을 수행하며 정책과 산업 현장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장과 정책을 모두 경험한 윤 대표는 국내 디지털자산 시장의 가장 큰 문제로 산업과 제도 간 속도 차이를 꼽았다.
산업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제도 정비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가 대표적인 사례로 지목한 것이 디지털자산기본법 입법 지연이다.
윤 대표는 "선거 결과보다 중요한 것은 정무위원회 재편"이라며 "누가 디지털자산 논의를 주도하느냐에 따라 입법 속도와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입법 지연은 단순히 법안 처리 시기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 경쟁력의 문제"라며 "지난해 하반기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외부 출고액 107조3000억원 가운데 약 90조원이 해외 사업자와 개인지갑으로 이동했다. 이용자는 늘고 있지만 자본은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입법이 늦어질수록 한국은 규칙을 만드는 나라가 아니라 규칙을 따라가는 나라가 된다"며 "미국과 유럽이 제도를 먼저 완성하면 국내 산업은 결국 그들이 만든 기준에 맞춰 움직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윤현근 인사이트3 대표가 지난 5일 롯데 시그니엘에서 데일리안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김민희 기자
윤 대표가 꼽은 디지털자산기본법의 핵심 과제는 ▲명확한 자산 분류 체계 ▲유통시장 설계 ▲통합 감독 거버넌스 구축이다.
현재 논의가 발행 인가와 발행자 규제에 집중돼 있는 반면 실제 투자자 보호와 산업 육성에 필요한 유통시장 규율은 부족하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그는 "시장조성자(MM) 규율과 수탁, 거래, 지갑 관련 제도 설계가 빠져 있다"며 "발행만 규제하고 유통을 비워두면 이용자 보호 역시 완성될 수 없다"고 말했다.
감독 체계 역시 개선이 필요하다고 봤다. 현재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 금융정보분석원(FIU), 국세청 등이 권한을 나눠 갖고 있지만 이를 총괄하는 컨트롤타워는 부재하다는 지적이다.
윤 대표는 "사업자 입장에서는 어디에 무엇을 신고해야 하는지조차 혼란스러운 경우가 많다"며 "기본법에 통합 거버넌스 체계를 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상자산 과세를 둘러싼 논란도 같은 맥락에서 바라봤다.
그는 최근 과세 폐지 청원이 5만명을 넘긴 현상을 두고 "세금 저항이 아니라 조세 체계의 일관성에 대한 문제 제기"라고 평가했다.
이어 "산업을 제도권 안으로 편입하는 법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는데 세금부터 부과하는 것은 순서가 뒤바뀐 것"이라며 "산업 제도화와 과세 체계 개편이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역시 마찬가지다.
윤 대표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논의하는 사이 해외에서는 이미 원화 연동 스테이블코인이 등장하고 있다"며 "정책 결정이 늦어질수록 시장 주도권을 잃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시간은 한국 편이 아니다"며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AI 에이전트 경제의 사실상 표준으로 자리 잡기 전에 원화 스테이블코인과 토큰화 인프라 구축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입법 공백이 길어질수록 자본과 산업은 해외로 이동하고 한국은 글로벌 디지털자산 시장에서 해외가 만든 규칙을 수용하는 위치에 머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윤 대표가 인터뷰 내내 강조한 것은 결국 '속도'였다.
산업은 이미 움직이고 있는데 제도가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면 한국은 기회를 놓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그가 거듭 "시간은 지금 한국의 편이 아니다"라고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