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천국 한국과 노조지옥 중국의 산업 대결
입력 2026.06.09 07:00
수정 2026.06.09 07:00
삼성전자의 잘못된 선례에 노란봉투법까지…한국은 노조천국
중화전국총공회 외에는 노조를 허락 않는 중국은 노조지옥
강력한 산업 라이벌 중국의 노조 운영에 대한 면밀한 연구 필요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카카오지회 조합원들이 지난달 20일 경기도 성남시 판교역 광장에서 '2026 임단협 승리 결의대회'를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데일리안 이주은 기자
삼성전자에도 노조가 생겼고 파업이 벌어질 뻔 했다가 정부의 중재에 따라 회사가 노조에 사실상 굴복하는 선례가 남겨졌다. 직원 1인당 6억원에 이르는 성과급을 받는다는 일등 기업의 사례는 다른 기업 노조들을 자극하고 있다.
현대차와 카카오 등 주요 기업들 노조는 삼성전자처럼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요구하며 파업을 예고했다. 민주노총도 7월 15일 총파업을 예고했고 김영환 고용노동부 장관은 하청업체와 이익을 나누는 사회연대임금을 제안해 논란이 되고 있다. 게다가 노조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노란봉투법'까지 이미 지난 3월 10일부터 본격 시행되면서 한국은 이제 확실한 '노조 천국'이 됐다.
하지만 한국의 주력 산업을 이미 추월했거나 바짝 추격하고 있는 중국은 노동자 계급이 영도하는 국가라는 헌법 1조에도 불구하고 노조가 아예 없거나 있더라도 서구와는 운영이 전혀 다르다. 독립 노조는 불법이며 노동자들이 임금인상이나 처우개선을 위해 집단 행동을 벌이면 즉각 체포되고 감금된다. 한국 노조의 입장에서 보면 중국은 '노조 지옥'이다.
지금 한국과 중국은 국가의 명운을 걸고 산업 전쟁의 제 2라운드를 맞고 있다. 트럼프 집권 이후 미국이 중국을 꽤나 견제하는 덕분에 한국은 시간을 벌고 있다고 기업인들은 말한다. 하지만 언제까지 미국이 그런 방패막이를 해줄 리가 없다. 여러 분야에서 자체 실력을 키운 중국에 우리가 뒤집히는 건 시간 문제라는 비관적 전망도 있다.
가전·철강·조선·석유화학 등 전통 산업은 물론이고 전기차·2차전지 등 첨단 산업에 이르기까지 모두 중국에 두 손 들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로봇 산업의 경우, 미국의 앞서가는 인공지능(AI) 두뇌와 중국의 압도적인 하드웨어(HW) 양산 능력 사이에서 한국이 맹추격하고 있지만 힘이 딸린다. 현재 한국이 범용 로봇 분야에서 유치원생이라면 글로벌 휴머노이드 시장을 독주하는 중국은 대학원생 수준이다.
반도체에서만 한국이 자존심을 지키고 있으나 여기도 중국 업체들의 맹추격이 진행되고 있다.
최근 화웨이는 반도체 공정에 쓰이는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수입이 미국의 견제로 막히자 '로직폴딩(LogicFolding·트랜지스터를 더 작게 만드는 대신 회로를 3차원으로 접거나 적층해 같은 면적에 더 많은 기능을 넣는 방식)'이란 대체 기술을 통해 오는 2031년까지 1.4나노미터(1나노미터는 10억분의1m) 미세공정을 달성하겠다는 충격적인 계획을 밝혔다.
전문가들은 "만약 중국이 비(非)EUV 생태계를 구축하는데 성공할 경우 한국이 주축인 글로벌 공급망이 뒤바뀔 수 있다"고 지적한다. 반도체 장비도 속속 자체적으로 만들고 있으며 메모리반도체에서도 창신메모리(CXMT)와 양쯔메모리(YMTC)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무섭게 따라잡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통제가 강할수록 대안을 더 잘 찾아내고 있다. 한국이 마냥 K-반도체 축포를 터뜨리고 있을 시간이 아니다.
문제는 한국 기업들이 강성 노조의 부담을 안고 회사의 에너지를 상당 부분 소진하는 동안, 한국식 노동운동을 불필요하게 여기면서 노사 갈등을 아예 없애 버린 중국과 어떻게 제대로 싸울지 걱정이 된다.
한국은 '무(無)노조 경영'을 잘해오던 삼성전자가 문재인 정권의 압박에 못이겨 노조를 허용하고 이번에는 파업을 무기로 맞서는 노조에 '영업이익의 N%를 성과급으로'라는 이단적인 규정에 합의하고 말았다. 천문학적인 추가 투자가 필요한 반도체 업종에서 경쟁국들과는 달리 ‘영업이익 연동형 성과급’ 제도에 묶이면서 향후 수십조 원의 자금 유출이라는 리스크를 미리 떠 안게 되었다.
이동근 경총 상근부회장은 "노동조합이 기업 이익의 선제적 배분을 요구하는 것은 주주의 권리를 제약하는 결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면서 "기업 이익의 배분 기준 제도화는 기업의 고유한 경영판단에 속하는 사항으로 단체교섭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밝혔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문재인과 이재명 정권을 통해 제도화된 노란봉투법이다. 노동자의 파업권은 강화되었지만 경영자의 방어권은 약화되었다. 노조의 교섭 범위가 넓어져 ‘근로 조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경영상 결정’에 대해서도 교섭과 파업의 대상이 되었다. 사측이 노조에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경우는 확 축소됐다. 하청업체들은 곧장 원청업체를 상대로 단체교섭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 법률) 시행 첫날인 지난 3월 10일 서울 세종로에서 열린 민주노총 투쟁 선포대회에서 양경수 위원장을 비롯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연합뉴스
반면 중국에는 노란봉투법 같은 것이 없다. 물론 중국에도 노조는 있다. 중국의 유일한 합법적인 노동조합은 중화전국총공회(中華全國總工會 · ACFTU)다. 중화전국총공회는 산하에 31개 성(省)급 총노동조합과 10개 산업별 노조를 두고 있다. 조합원 수로만 따지면 세계 최대 규모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노동자들이 정부나 공산당과 무관한 독립 노조를 자유롭게 설립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고, 법률상 파업권도 보장되지 않는다.
중화전국총공회는 중국 공산당의 지휘와 통제를 받는 관변 단체 성격이 강하다. 중국 당국은 1980년대 레흐 바웬사가 이끄는 폴란드의 자유노조 운동 이후 동유럽 공산권이 무너진 것을 교훈 삼아 노동자의 집단화된 파워가 독자적인 정치세력으로 성장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래서 중국 노조는 임금 인상과 근로환경 개선을 위해 사측과 격렬하게 대립하며 파업을 주도하는 한국 노조와 달리, 마치 중국 공산당의 하부 조직처럼 움직인다.
특히 기업의 생산성을 제고하기 위해 노동자를 관리하고 사회 안정을 유지하는데 주력한다. 복지 제공도 주요 역할이다. 명절 때 선물을 배포하는 일부터 문화 행사 기획, 저소득 노동자 지원 등을 하기 때문에 마치 기업 내의 복지 담당 부서 같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해 4월 28일 중화전국총공회 창립 100주년 경축 연설에서 "품질 발전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역량과 창의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독려해야 한다. 고품질 발전은 고품질의 노동과 창조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면서 "기술 혁신과 산업 변화의 흐름에 발맞춰 노동자들의 전반적인 역량을 지속해서 끌어올려야 한다. 중국 노동계급이 ‘가장 진보적인 계급’으로서 시대의 전면에 서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능력 제고가 요구된다"고 밝혔다.
시진핑의 연설을 들어보면 노조가 임금을 올려 달라고 파업을 하겠다는 으름장은 중국에서 꿈도 꾸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노조가 기술 혁신과 능력 제고를 통해 중국의 경제발전에 앞장서야 한다는 내용을 강조한다. 마치 어느 대기업에서 회장님이 임직원들에게 경영혁신을 촉구하는 모습 같았다. 한국식 노동운동이 중국에서 통할 기미는 아예 없다. 대신 중국 전체가 하나로 똘똘 뭉친 기업이 되어 세계를 장악하겠다는 결의가 엿보인다.
물론 중국에서도 노동자들이 임금 체불이나 열악한 노동환경에 항의해 파업이나 집단행동을 벌인 사례가 있기는 하다. 중국 정부는 자그마한 경제적 요구는 일정 부분 받아 주지만 이것이 정치적 요구로 확대되거나 독립 노조 결성을 시도하는 움직임이 보이면 매우 강력하게 통제한다. 한국 노조의 기준에서 보면 중국은 분명한 '노조 지옥'이다.
노조지옥 중국과 노조천국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을 비교하면 어떨까. 노동자의 권리는 중국이 상대적으로 제한적이지만 한국은 법적 보호가 매우 강력하다. 인건비는 중국이 상대적으로 낮고 한국이 상대적으로 높다. 기업 내부 의사결정 속도는 중국이 빠르지만 한국은 노사협의가 필요한 경우가 많아 상대적으로 느리다. 노동자의 숙련도는 중국이 편차가 크지만 한국은 평균적으로 높다. 제조업 생산성은 중국이 매우 높아졌는데 한국은 아직 첨단산업과 자동화 분야에서 강점을 지니고 있다.
중국에도 법정 근로시간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이른바 '996 근무제(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 6일 근무)'가 대다수 기업에 관행처럼 이어지고 있다. 반도체 연구개발(R&D) 파트에 대해서만 주 52시간 근로규제를 풀어 달라는 요구가 씨도 먹히지 않는 한국의 모습을 보며 중국은 "몇 년만 그렇게 해주면 우리가 앞설 것이다"라고 비웃고 있다.
사실 현재 우리나라 노동관계법은 적지 않게 북유럽 사회민주주의 모델을 참고하고 있다. 하지만 유럽 국가들은 이제 우리의 경쟁 상대가 아니다.
지난 1963년 레닌그라드에서 태어났고 김일성종합대학교에 유학도 했던 '소련 386' 출신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는 "1980년대 한국의 학생들은 사회주의 건설을 목표로 투쟁했다. 학생운동권은 소련의 국가사회주의 정치경제 시스템을 지향하는 PD(민중민주) 계열과 북한을 모델로 하는 NL(민족해방) 계열로 양분돼 운동을 전개했다. 두 계열 모두 남한에 사회주의를 건설하고자 했다. 한국의 학생운동권이 이렇게 거꾸로 간 것은 해외 흐름을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눈부신 경제성장을 보지 못하고 빈부 격차 등에 집중한 것도 당시 학생운동권이 사회주의 운동을 전개했던 이유 중의 하나"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시간이 흘러 이들이 한국 사회의 정치·언론·법조·시민단체 등을 장악하면서 자신들의 사상과 철학을 노동관계법이나 노사문제에 투영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미 공산주의·사회주의의 쓴물과 단물을 모두 맛보고 이제는 자본주의 국가들보다 더욱 기업 밀어주기에 나선 중국이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이 장악한 한국을 중국은 가소롭게 바라볼 것이다. 이렇게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와 권위주의가 다양하게 동거하고 있는 중국을 두고 일부 학자들은 '국가자본주의' '붉은 자본주의' 등의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한국은 중국의 노조 운영을 보다 깊게 연구하고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장 우리가 여러 산업 분야에서 필사적으로 경쟁해야 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정부·경영자·노동자가 어떻게 똘똘 뭉쳐서 산업과 수출 경쟁력을 키우고 있는지 연구하자는 얘기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승리를 거둔 민주당 정권이 과연 이런 생각이라도 할 수 있을 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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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홍섭 칼럼니스트
※외부 필진 칼럼입니다.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