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체' 김신록 "지창욱 등에 업혀 사투, 설명 없어도 정서적 연결감 생겨" [칸 리포트]
입력 2026.05.17 15:40
수정 2026.05.17 15:40
"단순한 좀비물 아냐…AI·집단지성 녹여낸 '요즘 느낌'의 영화"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배우 김신록이 영화 '군체'를 통해 다시 한번 연상호 감독의 세계관, 이른바 '연니버스'에 탑승했다. 오는 21일 국내 개봉을 앞둔 '군체'는 의문의 존재들로 인해 사회적 혼란이 야기된 가운데, 폐쇄된 쇼핑몰 안에서 벌어지는 인간들의 통제 불능한 욕망과 사투를 그린 스릴러다. 이번 제79회 칸 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공식 초청되며 일찌감치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쇼박스
김신록은 극 중 최현석(지창욱 분)의 누나 최현희 역을 맡았다. 다리가 불편해 휠체어에 의지해야 하는 최현희는 감염자가 속출하고 건물이 폐쇄되는 극한의 재난 상황 속에서 가장 취약한 약자가 될 수 밖에 없는 인물이다. 동생 최현석이 지게 위에 누나를 업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나누는 모습은 영화의 핵심 감정선 중 하나다. 김신록은 신체적 제약 속에서도 밀도 높은 감정 연기를 선보이며 지창욱과의 절절한 남매 케미스트리를 완성, 극의 몰입도를 한층 끌어올렸다.
16일(현지시간) 프랑스 칸에서 국내 취재진과 만난 김신록은 칸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군체'가 처음으로 스크린에 걸리던 순간의 황홀했던 감격을 고스란히 털어놓았다.
"한국에서 봤을 때보다 훨씬 새로웠어요. 2500명이나 되는 관객들, 그리고 1·2층으로 된 그렇게 큰 극장이 한국에는 거의 없잖아요. 그런데 또 저희 상영이 조금 딜레이가 됐었거든요. 앞 영화가 늦게 끝나기도 해서 차 안에 앉아 줄 서 있는 사람들을 봤는데, 다 턱시도를 차려입고 계시더라고요. 그게 일종의 영화에 대한 존중처럼 느껴졌어요. 한편으로는 자유분방하게 모여 있다가 우리 영화를 보러 들어오는 모습이 너무 신기한 경험이었고요. 사운드 시스템이나 화면도 조금 다른 느낌이었어요. 아는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낯선 환경에서 보니까 되게 새로웠고, 저한테는 황홀한 첫 경험이었어요."
공식 상영이 끝나고 터져 나온 관객들의 환호 속, 김신록의 기억에 가장 강렬하게 남은 순간은 따로 있었다. 바로 대형 스크린에 포착된 연상호 감독의 얼굴이었다.
"상영 끝나고 카메라가 한 명씩 비추잖아요. 그런데 연상호 감독님 얼굴을 딱 비추는데 일본 지브리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아이 같은 표정이더라고요. 배우들이 다 같이 ‘어쩌면 저렇게 순수한 표정으로 좋아할 수 있을까’ 이런 얘기를 했어요. 큰돈이 오가고, 많은 사람들의 시간과 돈이 들어가는 일이니까 당연히 긴장과 기대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영화를 그렇게 순수하게 좋아하는 게 연상호 감독님의 힘 같았어요. 그 표정을 보면서 저희도 되게 기분이 좋았고요."
김신록이 분석한 연상호 감독의 세계관, 이른바 '연니버스'의 진짜 강점은 명확했다. 철학적인 질문을 대중적인 어법으로 풀어내는 연 감독의 탁월한 연출력에 대해 그는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연상호 감독님은 배우한테 굉장히 명쾌한 감독님이세요. 애니메이션도 하시고 만화책도 만드셔서 그런지 컷에 대한 감각이나 비주얼 이미지가 굉장히 명확하시거든요. 배우가 해내야 하는 몫도 분명하고요. 또 오래 합을 맞춰온 스태프들과 작업하시다 보니까 현장이 굉장히 체계적이고 효율적이에요. 프리 프로덕션도 정말 잘돼 있어서 현장에서는 낭비되는 시간이 거의 없어요. 배우는 그냥 준비된 스태프들과 잘 합을 맞춰서 한 번에 해내야 되는 거죠.”
대극장 안에서 느낀 압도적인 감동은 칸이라는 도시 전체가 뿜어내는 독특한 에너지로 이어졌다. 김신록은 화려한 쇼비즈니스의 이면에 자리한 영화를 향한 순수한 열정을 기민하게 포착해 냈다.
"이 도시 자체가 영화제로 완전히 들썩이잖아요. 한편으로는 굉장히 자본주의적이고 쇼비즈니스적인 공간이기도 해요. 레드카펫 의전 같은 것도 그렇고 정신이 하나도 없죠. 그런데 동시에 영화를 빌미로 놀고 싶고, 모이고 싶은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서 오잖아요. 티켓 사려고 줄 서 있고, 시네필들은 포스터 챙겨 다니면서 감독들 사인받고요. 영화에 대한 사랑이 있으면서 동시에 예술과 자본이 공존하는 한복판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균형을 잘 잡는 감독들이 초대되는 곳이구나 싶었고, 그런 작품에 참여했다는 게 되게 의미 있게 느껴졌어요.”
ⓒ쇼박스
김신록은 함께 남매로 호흡을 맞춘 배우 지창욱에 대한 깊은 신뢰와 고마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작품의 핵심 감정선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지창욱의 남다른 직관이 큰 힘이 됐다
"이 작품 시작할 때 감독님 작업실에서 현석과 현희의 서사를 얼마나 넣고 뺄지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어린 시절 트라우마 같은 걸 넣을까 고민도 했는데, 창욱 씨가 '그런 게 하나도 없어도 그냥 내 가족이고 내 누나라는 것만으로 충분히 연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되게 쿨하게 정리가 됐고, 결과적으로는 굉장히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요."
휠체어에 의지하거나 동생의 지게에 업혀 있어야 했던 신체적 제약은, 역설적으로 두 배우를 가장 끈끈하게 묶어주는 매개체가 됐다. 김신록은 현장에서 지창욱과 온몸으로 주고받았던 강렬한 연기 호흡의 순간을 생생하게 회상했다.
"계속 몸이 붙어 있다 보니까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정서적인 연결감이 생기더라고요. 비주얼적으로도 작동하고 실제 연기할 때도 그 연결감이 살아났어요. 그리고 창욱 씨 연기할 때 보면 실제로 그 친구의 노하우 같은 게 느껴져요. 촬영장이 워낙 즐겁다 보니까 뒤에서는 화기애애하게 이야기하다가도 레디 액션 들어가면 어느 순간 딱 상황 안으로 들어가는 힘이 있거든요. 저도 업혀 있다가 창욱 씨가 숨을 딱 쉬면 같이 그 감정으로 타고 들어가는 느낌이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진짜 편하게 찍었어요."
지게 위 누나를 업고 달리는 남매의 사투는 작중 의문의 존재들에게 뜻밖의 방식으로 복제된다. 김신록은 이 소름 끼치는 비주얼의 이면에 숨겨진 연상호 감독의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예리하게 짚어냈다.
"좀비들이 계속 진화한다고 표현하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진화의 방향성 자체가 굉장히 편협할 수도 있는 것 같아요. 지금 우리가 보기에는 불편하고 덜 진화한 것처럼 보여도, 다른 관점에서 보면 위에서 고개를 사방으로 돌릴 수도 있고 팔도 자유롭게 움직이고 더 발전한 형태일 수도 있는 거잖아요. 저는 그 장면만으로도 감독님이 질문을 던진다고 생각했어요. '무엇을 진화라고 부를 것인가', 정상성이나 일방향적인 진화에 대한 편협한 상상력에 대해서 직관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거죠."
작품을 통해 곁에서 지켜본 동료 배우 전지현을 향한 아낌없는 극찬도 이어졌다.
“전지현 씨는 영화 산업이나 대중예술 산업에 대한 이해와 애정, 헌신이 굉장히 깊은 사람이에요. 사람들이 ‘엽기적인 그녀’나 천송이 같은 이미지만 생각하면 발랄한 배우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 이후에 ‘암살’, ‘베를린’ 같은 작품들로 이어지는 연기나 장르물, 또 작품을 홍보하고 선보이는 자리에서의 애티튜드나 아이디어까지, 계속 즐기면서 해내는 게 쉽지 않거든요. 그런데 그걸 다 해내는 사람이에요. 그 여유와 헌신, 애정이 정말 대배우 같았어요.”
칸에서의 황홀한 첫 경험을 뒤로하고 이제 국내 관객들과의 만남을 앞둔 김신록. 그는 마지막으로 '군체'가 선사할 압도적인 오락성에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관객분들이 정말 재미있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연상호 감독님 작품을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정말 엔터테이닝하고, 진화하는 좀비라는 존재 자체도 정말 못 보던 새로운 느낌이거든요. 새로운 좀비의 세계를 함께 즐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