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반통일·반평화 헌법과 우리의 방관이라는 죄
입력 2026.05.15 07:00
수정 2026.05.15 07:00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연합뉴스/조선중앙TV화면
지난 2023년 12월 북한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남북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 관계'(Two Hostile States Relation)로 규정하며 헌법 개정의 필요성을 처음 언급했다. 그리고 이듬해 1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헌법에서 '평화통일', '동족' 등의 개념을 삭제하고 영토·영해·영공 규정을 신설할 것"을 구체적으로 지시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올 3월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헌법 개정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것이 최근에 그 내용이 확인되었다.
대한민국 헌법과 북한 헌법을 나란히 놓고 읽는 것은 꽤나 고역이다. 한쪽이 시민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감시와 균형의 ‘조화’라면, 다른 한쪽은 오직 한 사람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 구성원을 부품으로 전락시킨 '매뉴얼'이기 때문이다. 2026년 현재, 북한이 개정한 헌법은 단순한 법전이 아니다. 그것은 한반도의 미래를 영구히 두 동강 내겠다는 노골적인 선전포고이자, 우리 체제를 향한 실존적 위협의 기록이다.
화려한 수식어 뒤에 숨은 집단주의의 발톱
대한민국 헌법은 전문을 지나자마자 제 2장에서 국민의 기본권을 선언한다.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가 개인의 존엄에 있다는 고백이다. 반면 북한 헌법은 정치·경제·문화·국방을 실컷 자랑한 뒤 제 5장에 이르러서야 '공민의 권리'를 슬쩍 끼워 넣는다. 그마저도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집단주의 원칙을 명시함으로써, 개인을 거대한 기계의 톱니바퀴로 규정해버렸다.
이러한 구성은 역사적으로 지난 1936년 소련의 '스탈린 헌법'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스탈린 헌법 역시 표현의 자유와 인권을 화려하게 나열했지만, 실제로는 당의 영도 아래 모든 개인을 말살하는 도구로 쓰였다. 북한 헌법 역시 그 독재의 DNA를 충실히 계승하며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체제 유지를 위한 장식물로 전락시켰다. 이를 '그들만의 체제'로 치부하며 외면하는 것은 보편적 인권의 가치를 수호해야 할 헌법적 책무를 방기하는 것과 다름없다.
헌법에 박힌 핵(核), 그리고 '국가'라는 이름의 괴물
더욱 기괴한 것은 북한 헌법 제 4장(국방)이다. 대한민국 헌법이 평화적 통일과 국제평화 유지를 노래할 때 북한은 제 56조를 통해 스스로를 '책임적인 핵보유국'이라 칭하며 핵무기 발전을 헌법적 의무로 못 박았다. 헌법이 평화의 약속이 아니라, 언제든 상대를 잿더미로 만들 수 있다는 협박장이 된 셈이다.
제 89조는 한술 더 뜬다. 핵 무력 지휘권을 오직 '국무위원회 위원장' 일인에게 부여함으로써 한반도의 생사여탈권을 헌법적 정당성 아래 한 명의 손가락에 맡겨버렸다. 이는 단순한 군사적 위협을 넘어, 대한민국 헌법이 지향하는 항구적 평화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뿌리부터 뒤흔드는 체제적 도전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6일 중요군수기업소를 방문해 "올해 중에 남부 국경 장거리 포병부대에 장비시키게 되어 있는 3개 대대분의 신형 자행평곡사포 생산실태를 료해"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8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영토 조항의 배신: 분단의 고착화와 역사적 범죄
가장 치명적인 균열은 영토 조항에서 발생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 3조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를 우리 영토로 규정하며 통일의 당위성을 법적 근거로 삼는다. 그러나 북한은 2026년 헌법 제 2조를 통해 "남쪽으로 대한민국과 접하고 있는 령토"라고 선을 그었다. 이는 수천 년을 이어온 한민족의 역사적 정통성을 부정하고, 대한민국을 '주적'이자 '별개의 국가'로 고착시키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북한의 이러한 '두 국가론'은 단순히 선언적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통일이라는 민족적 숙명을 거부하고, 한반도 남북을 영구적인 적대 관계로 고정하려는 고도의 정치적 술수다. 만약 우리가 북한의 이러한 헌법적 도발을 '그들 내부의 문제'라며 묵인한다면, 우리는 후대에 '분단을 법적으로 완성한 세대'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될 것이다.
방관은 또 다른 이름의 공범이다
북한 헌법은 이제 더 이상 우리가 알던 '통일의 파트너'의 법전이 아니다. 그것은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이질적인 체제의 설계도이자, 핵무력을 앞세운 반통일적·반평화적 선언문이다. 체제의 이질성이 임계점을 넘어 분단의 고착화로 치닫고 있는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대한민국 헌법 제 4조가 명시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반드시 지켜내야 할 실천 지침이다. 북한 헌법이 뿜어내는 독기를 '평화'라는 안일한 환상으로 가리려 해서는 안 된다. 북한의 체제 위협 요인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헌법적 정체성을 위협하는 모든 시도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
역사는 기록할 것이다. 북한이 헌법을 통해 민족을 버리고 핵을 선택했을 때 우리가 무엇을 했는지를. 이 명백한 반역사적 흐름을 방관하고 침묵하는 것은 미래 세대의 자유를 저당 잡히는 역사적 범죄이다. 우리는 종이 위의 평행우주를 깨부수고, 오직 자유라는 하나의 가치 아래 다시 만날 한반도를 설계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것이 대한민국 헌법이 우리에게 부여한 준엄한 명령이다.
ⓒ
글/이인배 한반도미래포럼 수석연구위원
※외부 필진 칼럼입니다.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