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카카오톡
블로그
페이스북
X
주소복사

자폭의 폭음을 울리고 자결에 주저 없어라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6.05.09 08:00
수정 2026.05.09 08:03

기념관 묘소 앞에서 눈물을 삼키는 유가족들. 조선중앙TV 캡쳐

“아, 많이 죽었구나”가 절로 나오는 이른바 ‘해외군사작전 전투위훈기념관’이다.


‘꾸르스크해방작전종결’ 1돌이라는 4월 26일(노동당 중앙위원회는 지난해 4월 27일 해방작전의 승리적 종결을 선언) 준공으로 공개된 기념관의 광장 좌우 추모벽에는 북한 파병군 전사자 이름이 빼곡히 들어찼다.


좌측 명판에 8행 144열로 이름이 새겨져, 이것만 해도 1152명이다. 우측 추모 명판도 그렇다고 보아 2304명, 해서 전사자가 약 2천3백 명이라는 보도도 있다.


그러나 조선중앙TV 영상을 자세히 보면, 우측 명판은 좌측과 달리 새김에 공간이 있다. 어쨌건 전사자가 1천5백 명에 달할 것이라는 그간의 추정이 맞았고, 실제 그 이상으로 보인다. 파병군 규모를 1만5000명 정도(우크라이나 매체는 최대 3만 명으로 파악)로 보아, 10% 이상의 전사가 놀라운 게 아니다. 단 2명밖에 되지 않는 포로에 놀랄 뿐이다.


전사자가 2000여 명에 달한다면 그보다 많았을, 수배에 달할 수 있는 부상자에도 불구하고 단지 2명의 포로라, 이성을 뛰어넘는다. 도대체 그들이 어떤 정신적·사상적으로 세뇌·무장되었을까.


그간 북한은 파병군에게 포로는 ‘배신자’라며, 적에 생포될 위기에 처하면 수류탄 등으로 자폭·자살하라고 명령했다고 듣고 있다. 포로 2명이 강제 북송 시 처형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적도 있다고 하여, 북한이 포로들을 어떻게 평가하고, 이들과 그 가족들에 어떤 대우를 할 것인지 짐작하게 한다. 그럼에도 포로 2명,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해답이 김정은 입에서 나왔다. 그가 준공식에서, 공개적으로 특히 모든 북한 주민이 다 들어라는 듯 당당하게 행한 육성 연설에서, 김정은 자신이 포로 대신 자폭·자결의 명령자임을 확인했다.


“최후에까지도 포기하지 않는 명령집행정신과 죽음을 마주 향해가는 무비의 희생성, 운명을 판가리하는 시각의 그 영웅적인 선택은 세상이 놀라기 전에 우리들 자신이 먼저 놀라게 되고 전승세대도 경의할만큼 전무하고 전설적인 것이였습니다.”


“특출한 위훈을 세웠어도 그 값을 묻지 않았고 자폭의 폭음을 울리면서도 희생의 대가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피를 쏟으며 쓰러지면서도 당이 준 명령을 끝까지 수행해달라는 부탁만을 남기였고 최후를 마치면서도 《평양 만세!》를 부르고 조국의 번영만을 기원하였습니다.”


“당에 충실함으로써, 조국에 충실함으로써 이들은 인간생리의 법칙을 훨씬 뛰여넘는 불사신의 용맹과 돌격의 힘을 획득했고 세상이 여직 리해하지 못하는 최후를 선택할수 있었으며 생명을 내대는 전우애의 화폭들도 펼칠수 있었습니다.”


“위대한 명예를 지키고저 자폭, 자결의 길을 주저없이 선택한 영웅들만이 아니라 돌격전의 앞장에서 내달리다 쓰러진 이들 (…) 당의 충직한 전사들, 애국자들이라고밖에 달리 부를수 없습니다.”


“여기 두 나라 군인들의 불멸의 군상이 말해주는것처럼 시대는 우리가 항상 이렇게 준비되여있고 이렇게 바칠수 있고 이렇게 단호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유가족이 대성통곡할 수 있겠는가. 조용히 아픔을 가슴에 묻을 수밖에.


납골당에서 눈물을 삼키는 유가족들. 조선중앙TV 캡쳐

2000여 명에 달하는 전사자 중에는 포위되었거나 부상의 상황에서, 자신의 명예 혹은 남겨진 가족의 삶을 위해, 일부는 포로가 되는 것이 자신에게는 훨씬 좋을 것임을 알면서도, 자폭·자결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이들이 있었을 것이다. 같은 인간으로서, 같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그들의 명복을 빈다.


우크라이나군에 생포된 포로 리모(27)씨와 백모(22)씨, 그들에게 대한민국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김정은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차원을 달리하는 삶을 선물해야 한다.


서해에서 우리 공무원이 총탄으로 쓰러지고 불태워질 때까지, 정치적 이유로 지켜보기만 했던 문재인 정권을 닮아서는 안 된다. 자칭 인권변호사였던 문재인과 다른, 결단이 아니라 너무도 당연한 결정을 하루빨리 역시 인권변호사를 자처했던 이재명 대통령이 내려야 한다.


필자가 거듭 지적한 것처럼 김정은은 전사자들과 유가족들에게 열과 성을 다하는, 최대·최상의 예우를 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과연 진심이었을까.


아니라는 사실이 이번 준공식에서 보여준 그의 행태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도열한 참전부대 여단장·대대장을 일일이 안아주고 연설, 준공 테이프 절단에 이어 야외 묘역에 유해 안치(시신 화장 재 뿌려 묻기), 헌화로 진행된 유해 안장식이 끝나고 행사장으로 향하던 김정은,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서 묘소들 앞에서 참배를 위해 서서 기다리던 유가족들에게 고개를 숙여 정중히 예를 표했다.


여기까지 그의 연기는 완벽했다. 엄숙했고, 침통했고, 북한이 즐기는 표현으로 ‘숭엄’했다. 하지만 돌아서자마자 아차 본심이 드러났다. 그의 얼굴에 순식간 생기가 돌고, 걷는 걸음에는 활기마저 풍긴다, 발걸음도 가볍다. “끝났다, 이 정도면 됐다, 잘했어”라 자신에 주는 칭찬이 들리는 듯하다.


러시아 대표단(국가회의 의장·국방상)을 안내하며 기념관에 들어서서 1층 중앙에 설치된 조각상에 헌화, 2층 납골당 3곳에 헌화를 다시 ‘숭엄 모드’로 진행한 이후, 김정은 얼굴은 다시 환해졌다, 웃음이 번졌다.

기념관의 전시물들을 마치 판매용 무기·장비처럼 자랑스레 소개했다. 하나하나가 모두 자신이 구상·결정·지시·확인한 것임을 강조하는 모습이었다.


이런 평가가 필자의 주관적이고 오류일 수 있는 것이라 백번 양보하더라도 김정은은 전사자들에, 그들을 영웅으로 기리기 위한 성전에 진심이었다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다.


기념관 내부 마지막 행사로 그는 방명록 제일 앞장에 《품고 싸운 그 흙에 생은 덮여도 지켜낸 위대한 명예와 더불어 렬사들의 넋은 영원할 것이다 장한 이 나라의 아들들, 군관 병사들에게 “해외군사작전 전투위훈기념관” 이 명예의 단상을 삼가 드린다 김정은 2026.4.26》이란 글 발을 남겼다.


김정은의 전투위훈기념관 방명록. 조선중앙TV 캡쳐

그런데 사진이 보여주듯 ‘전투위훈기념관’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 잘못 써 수정을 보태 전투위훈기념관으로 보이듯 만들었다. 그렇게 정성을 다하는 모습이 연출이 아니었다면, 이 글자를 잘못 썼을 리 없다.


방명록 서명을 마친 러시아 대표단과 김정은, 화기애애한 대화를 웃음을 머금고 이어갔다. 기념관은 사실 그에게 바쳐진 신전이자, 그의 권력 유지·확산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기념관 개관 후 10일 만에 23만 2000여 명의 각 계층 근로자와 군인, 학생이 참배했다고 한다.


필자는 지난 2월의 9차 노동당 대회가 김정은 우상화의 출발로 규정한 바 있다. 그 법제화가 헌법 개정으로 나타났다. 김정은의 직책인 국무위원장을 입법·사법·행정을 초월하는 국가수반으로 정의하고 직무도 핵무력에 대한 독점적 지휘권을 명시하여 절대적 권한을 부여했다.


‘조국통일’과 ‘민족대단결’ 등 동족 관계를 상징하는 표현을 모두 삭제하고, 북한의 영역을 북쪽으로 중국·러시아와 접하고 남쪽으로는 대한민국과 접하는 영토·영해·영공을 포함한다고 명시했다. 민족통일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정벌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2민족·2국가론’을 법제화한 것이다.


통일부가 이런 북한의 헌법 개정을 5월 6일 공개했는데, 그 시점이 묘하다. 개정이 3월 23일 개회한 최고인민회의 제 15기 제 1차 회의에서 진작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6월 3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사법 소추를 원천적으로 제거하려는 ‘공소취소 특검법’ 추진을 포함한 대통령의 독재화 논란, 정동영 통일부 장관을 중심으로 한 통일이 아닌 평화공존 및 2국가 주장이 선거 쟁점으로 부각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남북 최고지도자가 정부가 여러 면에서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글/ 손기웅 한국평화협력연구원장·전 통일연구원장


※외부 필진 칼럼입니다.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댓글 0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