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없인 전기차 못 만든다”…베이징서 드러난 韓 자동차 위기
입력 2026.05.08 12:21
수정 2026.05.08 12:23
中 배터리·자율주행·부품망 의존 확대
日·EU는 자국 생산 방어 나서
“국내생산촉진세제 서둘러야”
정구민 한국모빌리티학회장이 8일 서울 서초구 자동차회관에서 열린 ‘미래차 산업발전 전략 포럼’ 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
중국이 배터리와 부품, 자율주행 소프트웨어까지 미래차 핵심 생태계를 장악하면서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중국 기업과의 협력을 경쟁적으로 늘리는 모습이 뚜렷해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흐름이 단순한 기술 경쟁을 넘어 국내 자동차 산업의 생산기반 약화와 부품 생태계 붕괴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모빌리티학회와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는 8일 서울 서초구 자동차회관에서 ‘미래차 산업발전 전략 포럼’을 열고 중국 중심으로 재편되는 전기·자율주행차 생태계에 대응하기 위한 국내 산업 지원 방안을 논의했다.
정구민 한국모빌리티학회장은 이날 발표에서 “2026 베이징모터쇼에서는 중국의 자율주행·전기차·스마트카 생태계가 핵심 이슈로 부상했다”며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이 가격 경쟁력 확보를 위해 중국 부품사 및 완성차 기업과의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 올해 베이징모터쇼는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중국 시장을 겨냥해 현지 기술을 대거 끌어안는 무대가 됐다. 현대차는 중국 전략형 전기차 아이오닉 V를 공개하면서 베이징자동차와 공동 개발한 플랫폼, CATL 배터리, 중국 자율주행 기업 모멘타의 지능형 주행 기술을 적용했다. 현대차는 향후 5년간 중국에 20개 신차를 투입하고 2030년 연간 판매 50만대를 목표로 제시했다.
정 회장은 이 같은 흐름을 두고 ‘ESR(Empty Shell Risk)’ 우려가 심화되고 있다고 봤다. 브랜드와 완성차 조립 기능은 남아 있지만, 배터리·전자장비·소프트웨어 등 핵심 부품과 기술은 중국 공급망에 의존하는 구조가 굳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자동차 산업의 경쟁축이 엔진과 변속기에서 배터리, 반도체, 자율주행 소프트웨어로 넘어가는 상황에서 국내 기업이 핵심 생태계를 잃으면 완성차 경쟁력도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자율주행 분야에서도 중국 기업의 존재감은 빠르게 커지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도 올해 모멘타와 공동 개발한 첨단 운전자보조 시스템을 2026년 출시 예정인 9개 차종에 적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대진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 회장은 “최근 베이징모터쇼에서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이 중국 자율주행 기업 모멘타와 협업한 신차를 공개하는 등 중국 기업이 협력의 대상이자 동시에 위협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가 베이징 국제 모터쇼에서 중국 전용 모델 ‘아이오닉 V'를 공개하고 있다.ⓒ데일리안 편은지 기자
이에 따라 이날 포럼에서는 국내 생산기반을 지키기 위한 정책 지원 필요성이 집중적으로 제기됐다. 주요국들이 자국 생산기반 방어에 속도를 높이는 만큼, 한국도 국내 업체와 생산기반 보호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한다는 지적이다.
EU는 중국산 배터리 전기차에 대해 2024년 10월부터 확정 상계관세를 부과하고 있으며, 일본 역시 배터리를 경제안보 핵심 품목으로 보고 2030년까지 자국 내 150GWh 규모의 배터리 생산능력 확보를 목표로 지원책을 집행하고 있다.
김성준 골든오크세무법인 대표는 “주요국의 자국 내 생산 유인 정책과 중국산 저가 전기차의 시장 확대에 따라 국내 전기차 생산 가동률 저하와 생산기지 해외 이전 가능성이 우려된다”며 는 “태양광 산업에서 중국이 시장을 빠르게 잠식했던 사례가 전기차 산업에서도 재현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정규 KAIST 교수는 “일본은 경제안전보장추진법에 따라 배터리 설비 투자액의 약 3분의 1을 직접 지원하고 있다”며 “토요타는 2023년 1차 지원 사업에서 총 사업비 3300억엔 가운데 1178억엔을 지원받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도 전기차 생산 촉진을 완성차 기업 지원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배터리, 부품, 소재, 소프트웨어까지 연결된 산업 생태계 유지 정책으로 봐야 한다는 취지다.
특히 국내 부품업계의 취약성은 미래차 전환 과정에서 가장 큰 부담으로 꼽힌다.
오성민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 정책기획실장은 “전기차 생산은 완성차뿐 아니라 소재·부품 등 전후방 산업 전반의 사업 기반과 직결된다”며 “국내 2만여 부품기업 중 95% 이상이 연매출 300억원 미만의 중소·중견기업”이라며 “낮은 수익성과 거래처 확보의 어려움으로 인해 사업전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우려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