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세계를 넘어 너에게로"…감독 변영주가 다시 묻는 동시대 영화의 역할 [27th JIFF]
입력 2026.04.30 15:47
수정 2026.04.30 16:02
4일부터 5월 8일까지 개최
전주국제영화제 ‘J 스페셜’의 주인공으로 나선 변영주 감독이 자신의 영화적 계보와 문제의식을 드러내며, 동시대 영화가 마주한 질문들을 한 자리에 모았다.
'J 스페셜: 올해의 프로그래머'는 전주국제영화제만의 특별한 섹션으로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영화인 중 프로그래머를 선정해 자신만의 영화적 시각과 취향에 맞는 영화를 선보이는 프로그램이다. 2022년 시작된 이 섹션은 배우 류현경, 영화감독 연상호, 배우 백현진, 영화감독 허진호, 배우 이정현을 거쳐 올해 변영주 감독을 6회차 주인공으로 맞이했다.
변영주 감독ⓒ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변 감독은 '낮은 목소리 -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1995)을 시작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에 대한 삼부작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 2',(1997) '낮은 목소리 3 - 숨결'(1999)을 완성했다. 이후 '밀애'(2002), '발레교습소'(2004), '화차'(2012), 드라마 '백설공주에게 죽음을'(2024), '사마귀: 살인자의 외출'(2025)을 연출했다.
30일 오후 전북 전주 완산구 중부비전센터에서 진행된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 'J 스페셜: 올해의 프로그래머' 기자회견에 참석한 변 감독은 "좋은 역할을 하게 해주셔서 감사하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고 소감을 밝히며 "오늘부터 상영되는 5편의 프로그램을 마음껏 즐겨달라"고 당부했다.
변 감독은 자신이 연출한 '낮은 목소리 2', '화차'를 비롯해 '아라비아의 로렌스'(데이비드 린), '청년의 바다'(오가와 신스케), '내일을 위한 시간'(장피에르 다르덴, 뤼크 다르덴) 5편 선정했다.
변 감독은 "일단 제일 처음 떠올린 영화가 '아라비아의 로렌스'다. 이 작품은 전주와도 맞닿아 있다. 이 영화가 개봉되던 시절, 놀랍게도 전주는 거대한 메가폴리스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70mm 영사기가 3~4개가 있을 정도로 영화 문화가 활성화된 곳이었다"라며 "개인적으로는 저런 팀과 함께하고 싶다고 꿈꾸게 해 준 영화였다. 오늘날 우리 모두를 걱정하게 만들고 있는 시작점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이어 '청년의 바다'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오가와 신스케 감독은 스승님 같다. 사적인 기억이 있다. 1997년 '낮은 목소리' 일본 상영회를 하고 있을 때 니가타라는 도시에서 상영할 시 초등학교 체육관에서 오가와 신스케 감독의 전작을 틀었다. 한 순간도 안 쉬고 틀어도 4박 5일이 걸리는 분량인데, 이불이 다 깔려 있었다. 자면서 보고, 밥 먹고 와서 누워서 보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그때 봤던 작품이었다. 사실 자막이 없어 무슨 내용인지 몰랐는데도 너무 좋았다. 언젠가는 이 작품을 한글 자막으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청년의 바다'에 어울리는 내 작품으로 '낮은 목소리 2'를 생각했다. 그렇게 '낮은 목소리'와 '화차'를 결정하면서, '나라는 사람에게 영화란 무엇인가'를 만들어준 오늘의 선생님은 누구일까 생각했을 때 다르덴 형제였다. 다르덴 형제와 저는 굉장히 다른 형식으로 영화를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 세상을 이해하는 상태가 내가 꿈꾸고 있는 무언가다. 함께 나눌 사람들도 그때 결정했다"라고 덧붙였다.
변영주 감독ⓒ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또한 연상호 감독의 '염력'도 고민했었다며 "너무 좋은 작품인데 충분히 사랑받지 못했다. 개봉 당시 사랑받지 못했지만 사랑받아 마땅한 작품을 찾는 것도 영화제의 일이다. 대한민국 영화 최고의 이야기꾼은 연상호 감독이다. 그래서 연상호 감독의 영화를 상영하고 싶다고 생각했다"라고 전했다.
프로그래머 제안을 받았을 때도 떠올렸다. 변 감독은 "마음 잡고 준비하라는 뜻인가 싶었다. 지금이 다시 돌아볼 때인가 싶어 고마웠다"라며 "'화차'를 끝내고 이후 준비하던 영화를 6년 끌다 엎어진 뒤 방송 프로그램을 거쳐 드라마 연출 제안을 받았었다. 내가 기획하지도, 하고 싶어 하지도, 쓰지도 않은 걸 연출하는 게 재미있을까 했는데, 진짜 재미있었다. 현장과 작품을 컨트롤하고 지휘한다는 것이 이럴 수 있구나, 난 이제 다 할 수 있구나 싶었다"라고 말했다.
변 감독은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사마귀' 사이에 제안 받은 작품이 있다. 읽고 조금 바꾸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된다고 역제안했고, 제작사 대표들이 흔쾌히 받아줬다. 그렇다면 할 수 있겠다 싶어서 2년 정도 시나리오를 썼다. 그 작품이 '당신의 과녁'이다"라며 "지금 바짝 긴장한 상태다. '화차' 이후에 보다 더 섬세한 영화를 만들겠다는 걸 14년 만에 대답하게 됐다. 박정민, 고현정 등 너무 하고 싶었던 배우들과 하게 됐고,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제가 즐거워하며 만든 걸 관객들도 즐겁게 보셨으면 좋겠다"라고 신작 소식을 전했다.
젊은 창작자들을 향한 조언도 이어졌다. 그는 "다큐멘터리를 준비하는 창작자라면 '청년의 바다'는 절대 놓치지 않길 바란다. 죽어라 좋은 영화를 많이 보고, 좋은 소설을 많이 읽는 것, 그것만이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단편영화 심사 경험을 언급하며 "젊은 창작자들을 보며 가장 우려했던 건 왜 이렇게 나로부터밖에 이야기가 없을까 하는 것이었다. 왜 이렇게 내가 불쌍할까. 자기의 걱정을 세상으로 넓혀야 한다. 다르덴 형제가 그랬듯이, 나라는 세계에 대한 관심을 넘어 너에게도 관심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단편, 독립경쟁에서 떨어지는 건 다 이유가 있다. 그걸 인정해야 한다"라며 "삐지지 말고 와서 선정된 작품을 보셨으면 한다. 젊은 감독들에게 아쉬운 건, 자기 것만 보고 우르르 나간다는 점이다. 그 영화제에서 경쟁하는 친구들이 여러분과 평생 영화를 함께할 사람들이다. 자기가 떨어진 섹션의 작품을 다 보시면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어질 것이다. 그게 여러분의 다음 걸음이 될 것이다"라고 격려했다.
영화가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가야 하는 가를 묻는 질문에서 연상호 감독의 '지옥' 시리즈를 언급했다. 변 감독은 "'지옥' 시리즈가 굉장히 대한민국 현재 사회적인 이슈 한복판에 있다고 생각한다. 잘못된 생각을 신념으로 삼아 그 힘을 무섭게 이용하는 사람들이 지금 제일 중요한 문제 같다. 지금 미국을 보면 세상에서 오랫동안 가장 강력한 나라가 흔들리면 지구 전체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다. 너무나 많은 학살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영화가 인간을 위해 어떻게 무언가를 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차별이나 혐오와 싸우는 이야기를 많이 했으면 좋겠다. 저도 많이 고민하고 있다. 그게 우리의 의무"라고 답했다.
마지막으로 극장 문화 위기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더 이상 영화는 '핫'하지 않다. 하지만 극장이라는 체험은 다시 '핫'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며 "영화 관련 모든 산업들이 힘을 모아, 지금보다 훨씬 덜 부담스러운 마음으로 극장에서 불특정 다수와 공통의 경험을 하고 각자 다른 생각을 하고 헤어지는 것까지 하나의 코스로 만들어봤으면 한다. 언제까지 코로나 핑계를 댈 것인가. 북미, 유럽은 일정 부분 관객이 다시 돌아왔다. 거기엔 이유가 있고 우리 또한 그 이유를 못 찾을 이유가 없다"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