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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하 감독, 귀신이 두렵지 않은 '아메바 소녀들'로 보여준 용기와 유머 [D:인터뷰]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4.11.11 14:03
수정 2024.11.11 20:26

김도연·손주연·정하담·강신희 주연

"시리즈로 만들고 싶어"

클리셰들 범벅으로 관객에게 외면 받기 일쑤였던 느슨한 호러 코미디 장르에 긴장감을 주는 영화의 등장이다. 바로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개교기념일'이 주인공이다. 영화는 학업 스트레스와 학교 괴담이 뒤섞인 개교기념일 밤, 소녀들은 저주의 숨바꼭질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한 사투를 그린다. 무거운 주제를 다루지만 예측을 불허하는 통통 튀는 전개로 공포와 웃음이 공존, 재기 발랄한 신선함이 퍼레이드처럼 이어진다.


영화의 완성도는 개봉 전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선보이며 입소문을 탔다. 부찬국제판타스틱영화제 2관왕 스페인 시체스판타스틱영화제, 대만 가오슝영화제, 스웨덴 룬드판타스틱영화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필름위크 등에 줄줄이 초청되며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다. 기대감이 커질 수록 만족시키기 어려운 법이지만, 김민하 감독은 빈틈 없이 충족시킨다.


김민하 감독의 비범함은 단편작 '슈퍼히어로' '빨간마스크 KF94' '버거송 챌린지'에서부터 느낄 수 있다. 코미디 톤을 유지하면서도 번뜩이는 재치와 기지가 영화 곳곳에 배어있다. 그러한 스타일이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개교기념일'에서 한층 더 완성도 있게 펼쳐지며, 자신만의 독특한 시선으로 호러와 코미디의 경계를 허물었다.


영화는 유쾌한 톤을 유지하지만 이야기는 김 감독의 슬픈 경험담에서 출발했다.


"몇 년 전에 학업 스트레스로 생을 마감한 친구가 실려가는 모습을 본 적이 있어요. 처음에 이유를 몰랐는데 나중에 학업 스트레 때문이었다고 하더라고요. 더 슬펐던 건 그 안에서 외마디 비명도 없었어요. 혼자서 많이 무서웠음을 텐데 슬프고 아프더라고요. 그 때부터 이 부분에 문제의식 고민이 있었습니다. 결정적으로 발전된 건 제 단편 '빨간마스크KF94'가 2022년 정동진영화제 초청 됐는데 관객상 '땡그랑 동전상'을 받았어요. 단편 내용이 코로나 때 여고생들이 빨간마스크 괴담 여자를 이기는 내용이거든요. 그 때 관객에게 어필하기 위해 큰절을 했는데 함성이 밀려오더라고요. 그 기운이 충격적일 정도로 긍정적으로 다가왔어요. 강당에서 우리끼리 뒤풀이를 하는데 기운이 가시질 않더라고요. 그래서 정동진 해변에서 일출을 기다리며 쓴 게 지금의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개교기념일'입니다. 량현량하의 '학교를 안갔어'를 들으며 '방송반의 여름방학'이라는 제목으로 일곱 줄의 줄거리를 썼어요."


영화 감독이 되고싶은 8등급 지연, 연예인 지망생 브이로거 은별, 공부에 누구보다 진심이지만 성적이 오르지 않는 현정, 이들의 후배로 주술에 관심 있어 숨바꼭질에 동참한 민주까지 캐릭터까지 만화에서 볼 법한 과장되고 독특한 성격과 행동을 한다. 현실보다 더 극적으로 표현되어 즉각적으로 이해되거나 반응을 끌어내기 위함이다. 배우들이 김 감독의 연출 의도를 이해하고 믿었기 때문에 완성될 수 있었던 부분이다.


"만화적이라 서로 만드는 과정이 재미있었어요. 강당 신을 다 몰아서 찍었는데 지연이가 2층에서 친구들에게 앉아서 미안하다고 우는 장면이 있잖아요. 도연 씨가 감정 잡을 시간을 달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딥한 감정이 아니니 그냥 말 그대로 '으앙' 울어도 해결되는 영화라고 설명드렸더니 바로 이해하고 연기해 주시더라고요. 하담 씨는 1회차 강당신에 없어서 제가 우는 연기에 주는 디렉션을 모르셨어요. 감정신에서 '어떤 오열을 원하냐'고 물어보셔서 첫 번째 정하담이 연기하느라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두 번째 우리 영화는 오열 하는 영화가 아니다. 세 번 째 인공눈물이 준비 돼 있다고 말씀 드렸죠. 배우들이 저를 믿어주고 저도 배우들을 믿었기 때문에 수월하게 잘 찍을 수 있었어요."


귀신 윌리밍키가 세강여고 학생들과 숨바꼭질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재미있으니까!" 과거의 어떤 사연이나 원한도 없다. 하지만 윌리밍키를 마주한 1998년 소녀들과 2024년 소녀들의 달라진 점을 통해 그가 말하고 싶은 메시지가 심어져 있다.


"윌리밍키가 세강여고에서 학업 스트레스로 죽은 선배 귀신이었고 소녀들이 비밀을 알게 돼 한을 풀어주든가, 일이 커지거나 하는 구조가 한국 공포영화의 일반적인 구조인데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우리 영화는 쿨하게 가고 싶었죠. 하지만 그저 재미로만 만들어진 캐릭터는 아니에요. 제가 봉준호 감독님의 '설국열차' 대사 중 '벽인 줄 알았는데 문이었다'라는 대사를 떠올리며 만들었거든요. 과거 귀신이 공포의 대상이었지만 오늘 날에는 소녀들이 귀신들에게 달려들어 머리채를 쥐어 뜯잖아요. 윌리밍키가 약해져서가 아닌, 처음부터 약했던 존재였지만 소녀들이 먼저 겁 먹고 도망갔을 뿐인 거죠. 이를 통해 전 세대가 만들어놓은 우리의 한계, 사회적 관계들을 우리는 충분히 넘을 수 있다는 걸 윌리밍키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필름 위크에서 GV가 끝난 후 히잡 쓴 여러 명의 관객들이 소녀들의 자존감, 용감함에 대해 질문하려고 기다리고 계시더라고요. 그 분들은 종교적인 규정에 억눌려 사는데 아메바 소녀들의 자존감이 위로가 됐다고 말해줬어요. 영화가 자생력을 갖고 모두의 것이 된다는 건 이런 것이구나를 경험했죠."


김 감독은 영화를 통해 사회적 교육이나 학교폭력 문제의식을 다루고는 있지만, 주입식 교훈이나, 관객들에게 가르침을 주는 인상은 피하고 싶었다.


"코미디 안에는 시대의 슬픔이 담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코미디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찰리 채플린이 영화로 산업화 시대를 풍자했잖아요. 인간이 공장의 부품처럼 돌아가고 그걸 우스꽝스럽게 표현한 걸 보고 '이런 게 코미디구나' 라고 쭉 느껴왔죠. 저도 시대의 슬픔을 담아 유쾌한 호러 형식을 가져가면서 비극적인 경쟁, 학교폭력 등을 함께 담았어요. 그러나 너무 자극적이지 않도록요. 문제의식을 짚으면서도 관객을 가르치는 인상은 주고 싶지 않았어요. 영화로 관객을 가르치는 계몽의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하거든요. 예전엔 영화를 보며 한 번 더 깨울 칠 수 있었던 시대지만 지금은 워낙 정보화 시대고 관객이 영화를 통해 인생의 가르침을 받을 만큼 모르거나 한가하지 않아요. 그러면 영화의 역할이 뭘까라고 해본다면 전 위로와 재미라고 대답하고 싶어요. 내가 아무리 철학적인 생각을 한다고 해도 집단의 생각과 개인의 삶, 내공을 깨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은 기존 호러 영화들의 클리셰를 역이용해 소녀들이 위기를 재치 있게 극복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지연(김도연 분)이 앞으로 전개될 장면을 대사로 미리 스포일러 하며 관객을 영화 속 세계로 자연스럽게 초대하는 연출이 인상적이다


"'여고괴담'에서 최강희 선배님이 점프 스퀘어로 다가오는 장면이 시그니처였잖아요. 예전에는 무서웠는데 요즘 다시 보면 무섭진 않잖아요. 그걸 무서워한 시대도 귀여운 것 같고 다가오는 귀신의 동선을 계산해 피하는 지연이의 모습으로 우리 영화의 메시지를 담아볼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또 지연이가 미리 장면을 알려주거나 설명하는 대사는 관객을 안심 시켜주고 원천적으로 차단하려고 역할로 심어놨어요. 또 지연이가 자기 친구들을 이끌고 가는 것처럼 관객들을 계속 끌고 가는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아 그렇게 설정했습니다."


영화 감독을 꿈꾸는 성적 최하위 소녀 지연은 김민하 감독의 상황과 내면이 많이 투영된 캐릭터라고 설명했다.


저도 학창 시절에 성적 등급이 별로 좋지 않았는데 영화 감독을 꿈꿨거든요. 우리 나라 교육에 구조적인 것에 대한 문제점에 대한 생각이 그 때도 들었어요. 학생들이 잘 할 수 있는 걸 살려줘야 하는데 앉아서 주입식으로 수업을 하잖아요. 지연이를 포함해 다른 아메바 소녀들도 마찬가지지만 지연이를 통해 이 문제의식을 짚어보고 싶었죠."


영화 속에는 각종 밈이 등장한다. 귀신에게 해코지를 당할 위기에 처해있으면서도 카메라를 켜고 브이로그를 하는 은별, 일본 문화에 심취해 한본어(일본어와 한국어를 섞어 쓰는 말)를 쓰는 민주 등 실제 SNS에서 유행하는 것들로 영화의 간장감을 환기 시킨다.


"평소에 콘텐츠를 많이 봐요. 릴스만 봐도 알고리즘이 알아서 요즘 유행하는 것들을 추천해 주잖아요. 그 중 밈을 잘 골라 써봤어요. 아무거나 쓰면 또 힘 빠질 수 있어서 아메 소녀들의 자존감을 통해 관객이 스스로 나를 볼 수 있게 빌드업 했죠."


현재 김 감독은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개교기념일'의 후속작 시나리오를 완성한 상태다. 향후 이 영화를 시리즈화 해나가고 싶은 바람이다.


"'여고괴담' 포맷처럼 시리즈로 가고 싶어요. 독립적인 내용으로 캐스팅을 모두 다르게 해서 '공부 못하는 소녀들이 이긴다'는 주제만 가지고요. 2편 시나리오도 지금 완성돼 있어요. 로그라인은 모교로 교생이 실습 와서 전국 모의 교사 1등 소녀그룹을 만나는데, 이들 모두 흑마술 동아리인 거죠.(웃음) 제 꿈은 5편까지 찍는 거예요. 그리고 6편에서는 팬분들을 위해 총동문회처럼 1편부터 5편의 소녀들이 다 모이는 거죠. 배우들에게도 미리 말씀 드렸어요. 이 영화를 만드는 데 아무리 빨라도 5년은 걸릴 텐데 교복은 입어달라고 안 할 테니 과잠은 입을 수 있도록 관리해달라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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