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투자 결정 임박한 삼성, 총수 사법리스크 부담 악재 우려
입력 2021.05.20 12:14
수정 2021.05.20 12:44
한·미 정상회담에 현지 투자 40조 중 절반 책임져도 경영활동 원천봉쇄
시스템반도체 투자 증액 발표...향후 투자 결정에도 악영향 우려 커져
적극 투자 행보 나서는 SK와 상반...각계 사면 건의에도 정부 묵묵부답
삼성전자가 약 20조원에 달하는 미국 파운드리(위탁생산) 추가 투자 결정이 임박한 가운데 총수 이재용 부회장은 옥중 재판의 사법 리스크가 지속되고 있다. 비단 이번 투자뿐만 아니라 향후 대규모 투자 결정에서 총수의 부재 상황은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20일 재계에 따르면 오는 21일(이하 현지시간) 진행되는 한·미 정상회담에 맞춰 삼성·현대차·SK·LG 등 4대 그룹이 내놓을 최소 40조원 규모의 미국 현지 투자 중 절반을 책임지는 삼성의 오너 리스크는 계속 지속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현재 미국 현지에 170억달러(약 20조원) 규모의 반도체 파운드리 라인 추가 증설을 계획 중이다. 주 정부들과 세부 인센티브 협상을 진행중으로 기존 생산시설이 있는 텍사스주 오스틴이 가장 유력한 후보지로 부상한 상태다.
삼성으로서는 미국 정부가 반도체 투자 요구에 대한 강도를 점차 높여 가고 있어 고민이 깊다. 지난달 12일 백악관 주관으로 진행한 반도체 공급난 대책 회의와 20일 상무부 주관으로 열리는 회의에도 초청을 받는 등 미국 측의 투자 압박을 받고 있다.
두 회의 모두 온라인 화상 방식으로 진행됐지만 조 바이든 대통령에 이어 지나 러만도 미국 상무장관도 기업들의 투자 요구에 나서는 모습이어서 20조원 규모의 미국 현지 투자 결정을 앞두고 있는 삼성전자로서는 추가 투자 고민이 깊어지는 모양새다.
하지만 이러한 중요한 의사결정을 앞둔 상황에서 최종 결정권자인 총수는 부재중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현재 지난 1월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고 구속된 상태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의혹 재판도 진행 중으로 20일 3차 공판이 열렸다.
사실 이번 투자는 삼성전자가 지난해부터 신규 라인 증설 차원에서 검토해 오던 사안으로 기존 오스틴 공장 정전 사태뿐만 아니라 이 부회장 구속이 투자 최종 결정 지연에 영향을 미친 측면도 없지 않다.
총수의 부재는 신속한 투자뿐만 아니라 추가 투자 결정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재계의 판단이다. 특히 총수 부재가 장기화될 수 있는 만큼 비단 이번 투자만이 문제가 아니라는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앞서 지난 13일 정부가 발표한 ‘K-반도체 전략’에 맞춰 오는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 투자 규모를 171조원으로 증액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 2019년 4월 개최된 ‘시스템 반도체 비전 선포식’에서 오는 2030년까지 전 세계 시스템반도체 1위 달성을 위해 총 133조원을 투자하는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한 바 있는데 이번에 이를 38조원 증액한 것이다.
결국 시스템반도체 전체 투자 규모를 증액한만큼 시점과 대상을 잘 맞춰 투자가 이뤄져야 하는데 총수가 옥중에 있는 상황에서는 의사 결정이 제한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같은 상황은 반도체 경쟁사로 총수가 직접 움직이고 있는 SK와도 큰 차이가 있다. SK는 최태원 회장과 박정호 SK하이닉스 대표이사 부회장 투톱체제로 반도체 계열사 SK하이닉스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와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10월 인텔의 낸드플래시 사업 인수를 발표한 데 이어 최근에는 일부 지분을 보유한 키파운드리(구 매그나칩 파운드리부문) 완전 인수 방안을 확정 짓고 협상에 나설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키파운드리는 지난 2004년 당시 하이닉스(현 SK하이닉스)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비메모리 부문을 분리한 매그나칩반도체에서 지난해 9월 파운드리만 별도로 떼어내 독립법인으로 설립된 회사다.
새마을금고와 사모펀드가 보유한 나머지 지분 전부를 인수하는데 지분 인수에 최소 4000억원 이상의 자금이 필요할 전망으로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의 이번 행보를 두고 차량용 반도체 부족으로 중요성이 커진 파운드리 역량 강화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한·미 정상회담에 맞춰 미국 출장길에 오른 최 회장은 오는 22일 조지아 주 배터리 공장을 방문할 예정으로 추가 투자계획이 나올지 주목되고 있다.
또 이번 방문에서 지나 러만도 미국 상무장관이 주재하는 경제인 행사에 참석하고 수잔 클락 미 상공회의소 회장 등 경제계 인사들과도 만남을 가지는 등 활발한 경영 행보를 이어갈 전망이다.
옥중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이재용 부회장으로서는 이같은 정상적인 경영 행보는 고사하고 투자 결정을 내리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사회 각계 각층에서 사면 건의가 이어지고 있고 정치권에서도 사면 필요성이 제기되고는 있지만 아직 정부의 가시적인 움직임은 없는 상태다.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부재가 장기화되면서 삼성의 반도체 투자 결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기업을 넘어선 국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모습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20조원에 달하는 투자를 해도 현지 방문 등 정상적 경영 활동이 이뤄질 수 없는 실정”이라며 “반도체 시장의 변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투자 시기와 대상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데 총수 부재는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