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자’, ‘이여자’들로부터도 버림받는 문재인
입력 2021.03.20 08:00
수정 2021.03.20 14:08
중도우파는 물론 중도좌파도 정권교체로 돌아서며 청년층 합세
불공정, 법치 후퇴 민감 세대, 성별의 반(反) 문재인 기류에 주목
이십 대 여성들의 문재인 지지율 폭락이 놀랍다.
지난 17일 발표된 데일리안 의뢰 알앤써치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문재인의 국정 수행 긍정 평가가 36.7%로 올해 최저치를 기록했다. 그중에서도 18세 이상 20대 여성(일명 ‘이여자’)의 지지율이 33.6%로 나타나 지난주의 63.8%에서 무려 30.2% 포인트가 추락, 눈을 의심케 했다. (자세한 내용은 알앤써치나 중앙선관위 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조사 방법이나 다른 알 수 없는 이유에 의한 과대 반영일 수도 있으나 이 조사가 전적으로 엉터리가 아니라면, 우리나라 젊은 여성들이 LH(한국토지주택공사) 사태가 난 지난 한 주 사이에 대통령을 무척이나 부정적으로 보게 됐다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이여자들은 그동안 대통령의 열렬 지지층이었기에 상징적 의미가 매우 크다.
문재인의 지지율은 역대 문민 대통령들보다 훨씬 견고한 수치를 보여 왔다. 지금의 전체 평균 36.7%도 임기 1년여 전의 김영삼(28%), 김대중(31%), 노무현(12%), 이명박(32%), 박근혜(12%)에 비하면 양반 급이다.
문 콘크리트 지지층 유지는 이 정부 들어 병적으로 악화된 정치적 양극화와 관계가 있다. 집권 세력이 펴는 정책 등을 보고 합리적으로 평가하는 게 아니라 그 진영이 하는 일이면 무조건 옳거나 틀리다고 보는 시각들이 어느 시기 우리 사회에 굳어졌다.
문재인 정권은 이런 양극화를 교묘히 또는 공공연히 이용해 왔다. 편 가르기다. 주요 이슈를 놓고 가진 자와 안 가졌거나 덜 가진 자, 영남과 비(非) 영남, 늙은이들과 중년, 청년 계층 대립으로 몰고 가 큰 재미를 보았다.
그러나 나라 전체를 고루 만족시키고 불만을 최소화하는 것이 의무인 국정 책임자가 이렇게 정파적 접근으로 인기를 유지하려고 했을 때, 잘해야 40%대를 자기 편으로 건질 수 있다. 잘못하면 그 이하로 떨어져 나라도 자신도 큰 어려움에 빠지게 된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가 보여 주는 결과가 그것이다.
대깨문 세력의 주축이라 할 콘크리트 지지 지역과 연령대인 호남, 40~50대에서 문재인 평가가 부정적으로 기울고 있다. 이런 균열 흐름 속에서 20대 젊은 여성과 남성들이 더 가파르게 지지를 철회하고 있는 것이다.
20대 젊은이들은 학업과 취업, 결혼이라는 일생일대의 중대 관문을 통과하는 연령층이다. 이들은 사회의 평등, 공정, 정의에 누구보다 민감하다. 이들의 문재인 정부 평가가 급전직하한 것은 이 나라가 평등하지 않고 공정하지 않으며 정의롭지 않다, 또 법치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는 의사 표시다.
이번 알앤써치 조사에서 특히 18세 이상 20대 남성 응답층에서 문 정부가 지난 정권들보다 과정이 “불공정하다”고 바라본 비율이 64.4%로 전체 성·연령별을 통틀어 가장 높게 나타났다. 젊은 사람들인 만큼 기대와 실망의 진폭이 상대적으로 커서 LH 개발 정보 이용 투기 사태 충격파도 이들에게 상당했을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알앤써치나 중앙선관위 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20대 남녀들의 ‘문재인 버리기’는 최근 검찰총장 윤석열의 사퇴와 오세훈 같은 서울시장 보궐선거 경선 과정에서 등장한 인물들을 대안으로 받아들이는 태도 변화와도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에게 가 있던 정을 옮겨 줄 사람들이 나타남으로써 그 정 떼기가 가속화하고 있다는 가설이다.
이들 연령대의 현 정부 지지율 변화는 그러나 당장의 서울, 부산 보선, 그리고 내년 대선 전망과 관련해서는 실질적 의미가 아주 크진 않다. 투표할 의향이 가장 적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반문 정서가 원래 강한 중노년층에 청년, 특히 젊은 여성들까지 반문으로 돌아서고 있다는 게 중요한 변화다.
중앙일보 의뢰 입소스가 지난 5~6일 서울지역 유권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0대의 서울 보선 투표 의향이 46%에 그쳤다. 60세 이상 89%, 50대 82%, 40대 76%, 30대 74%였다. 지지 정당별로도 국민의힘이 90%, 민주당은 77%로 야권 후보들이 월등히 유리한 상황으로 급변한 모습이다. (자세한 내용은 입소스나 중앙선관위 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원래 반문이었던 중노년층과 반문으로 돌아선 20대에 원래 친문인 사람들의 이탈까지 뚜렷해져 대통령 문재인과 진보좌파 진영의 위기가 심각한 국면을 맞고 있다. 최근 한겨레21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만18~59살 성인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2월22~26일 온라인 심층 조사한 결과는 격세지감(隔世之感)과 표변(豹變) 그 자체다.
이 잡지는 지난 대선 때 문재인을 찍었다는 1135명에게 ‘내년 대선에서는 어느 정당 후보에게 투표할 의향이 있습니까?’라고 질문했다. 절반이 넘는 응답자, 55.2%가 정부여당에 대한 계속 지지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절반이 약간 안 되는 응답자, 44.8%가 ‘유보’나 ‘다른 정당 지지’로 생각을 바꿨다. (자세한 내용은 한겨레21이나 중앙선관위 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약 45% 이탈자들은 대부분 바뀐 지지 정당으로 기존 야당보다는 ‘아직 모름’이라고 대답했는데, 이것은 당연하다. 이들은 윤석열, 오세훈 이전까지는 문재인도 싫지만 야당도 싫은, 철저히 제3지대에 남아 있기를 고집하던 중도층이기 때문이다.
핵심은 중도우파는 물론 중도좌파도 문재인을 버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대통령 문재인과 친문 패거리 리더는 이러한 현실 인식을 제대로 못 하고 있는 듯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문재인은 주초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LH 사태와 관련 난데없는 촛불 정신과 적폐 청산을 강조, 이 정부 특유의 내로남불 남 탓으로 지지층 결집을 시도했다.
법무부 장관 박범계는 노무현 정부 국무총리 한명숙 뇌물수수 사건과 관련 대법원판결을 뒤집는 수사지휘권을 발동, 제2의 추미애임을 확인해주고 있다. 일선 검사들은 “우리가 뭘 잘못했는지 대검 의사결정 과정을 생중계하라”고 반발한다.
‘보수 궤멸, 진보 20년 집권’론을 펼쳤던, 친문 패거리들의 전략통으로 불리는 전 민주당 대표 이해찬은 불리한 서울 보선 판세를 (흑색선전으로) 뒤엎고자 친문 방송들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는 엊그제 한 진보좌파 선전선동 TV 매체에 나와 윗물은 맑은데, LH 아랫사람들 일은 어쩔 수 없다는 논리를 구사했다.
서울과 부산 보선 성격에 대해서는 “이런 게 없었으면 내년 대선까지 아스팔트 길을 달리는 거였는데 자갈길로 들어서느냐, 포장길로 가느냐를 결정하는 중요한 선거가 생겨 버렸다”고 규정, (민주당 시장들의 성추행에 의한 선거라는 건 인정할 수 없고) 괜한 선거를 해서 어렵게 됐으니 우리 지지층들이 (시를 상대로 처가가 해 먹은 오세훈 같은 자영업자에 흔들리지 말고) 힘을 모아야 된다는 식의 선동을 했다.
등 돌리고 떠나는 민심은 다 이유가 있어서 등을 돌리고 그들 곁을 떠난다. 사람들이 돌리는 등을 바라보는 그들만 그 이유를 모르고 있다.
글/정기수 자유기고가(ksjung7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