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은 준비해 왔다…그의 어록 복기(復棋)
입력 2021.03.08 07:00
수정 2021.03.07 17:05
도인 멘토가 지도자 수업도…사퇴 전 이틀 행적은 치밀한 계산
언론 인터뷰-대구 방문-전격 사퇴, 과거와는 다른 선제적 행보
윤석열의 3월 4일 거사(擧事)는 주도면밀하게 계획된 일정에 의한 것이었다.
그의 이날까지의 3일간 어록을 복기(復棋)해 보면 잘 짜인 영화 대본 같은 흐름이 읽힌다. 정치 개시 선언을 할 최선의 타이밍을 그는 놓치지 않았고, 또 그것을 더 완벽하게 만들었다.
그는 국가의 최고 수사 기관인 검찰을 폭파해 버리는 문재인 정권의 소위 검찰개혁 시즌2 윤곽이 처음 드러난 지난 1월 하순 이후 40여 일 동안 침묵하며 은인자중(隱忍自重)해 왔다. 2월 초순 민주당 의원 황운하 등이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치법을 발의한 이후에도 즉각적인 반응을 하지 않았다.
중수청 설치는 이 신설 수사 기관이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불과 몇 달 전 검찰에 남겨진 6대 범죄 수사마저 떼어 감으로써 검찰을 공소 유지만 전담하는 공소청으로 바꾼다는 검찰 해체 작업의 핵심이다. 극소수 언론 매체에서만 이 문제의 심각성을 다뤘다.
다른 언론 기자들과 논자(論者)들은 그 시도가 너무나 어처구니없고 과격한 종류라 설마 한 것이다. 필자가 ‘문재인 검찰개혁은 한동훈 같은 검사들 무장해제다’(데일리안 [정기수 칼럼] 2월 16일 자)라는 글을 쓴 지는 20일이 안 됐다.
대통령 문재인과 조국, 추미애, 그리고 최강욱, 김남국, 김용민, 황운하 등 여권의 친문 강경파 의원들이 부르짖는 검찰개혁이란 다름이 아니고 검찰 해체를 뜻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해독(解讀)하고 고발하는 비상 사이렌이 다른 언론들에서 비로소 울리기 시작했다. 2월 하순이었다.
윤석열은 이때까지 언론 보도와 여론 동향을 살피며 날을 잡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추미애의 집요하고도 치사한 쫓아내기 공세에 “임기는 국민과의 약속, 소임을 다하겠다”라며 정계 진출 시기를 늦춰 왔다.
며칠 후 드디어 검찰총장 윤석열의 신문 인터뷰가 나왔다. 3월 2일이었다. 도하(都下) 모든 언론 매체들에서 안 받을 수가 없는, 파괴력 엄청난 뉴스였다. 그가 왜 국민일보를 미사일 발사대로 택했는지는 흥미로운 추측 거리다. 강성 보수 기독교 계열인 이 신문은 윤석열이 골랐든 대검 출입기자가 우연의 일치로 운 좋게 요청을 해서 이뤄진 것이든 ‘올해의 특종’을 한 셈이다.
인터뷰는 장장 3시간에 걸친 대담 형식이었다. 마음먹고 하지 않으면 검찰총장이 한 언론사에 집무 중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질문하고 답변하는 일정을 할애하기 쉽지 않다. 그는 3시간을 알맹이 있고, 일관된 내용의 메시지를 말로 전할 수 있도록 많은 조사와 생각, 정리했을 것이다. 준비된 대담이라 하더라도 그의 달변과 논리, 순발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윤석열은 이 인터뷰에서 중수청 설치 등 여권의 검찰개혁 추진에 대해 “민주주의의 퇴보이자 헌법정신의 파괴이며 법치를 말살하는 것이다”라고 청와대와 여권에 선전포고하면서 “단순히 검찰 조직이 아니라 70여 년 형사사법 시스템을 파괴하는 졸속 입법”이라고 난타했다.
그는 이어 “직을 걸어 막을 수 있는 일이라면 100번이라도 (직을) 걸겠다”고 했고, “국민들께서 졸속 입법이 이뤄지지 않도록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시길 부탁드린다”라고 말했다. 윤석열의 입에서 국민이 이때부터 여러 번 나온다.
그리고 윤석열은 다음날 대구로 내려갔다. 대구는 그가 서게 될 보수 진영의 심장으로 불리는 곳이다. 그가 사퇴 전날 하필 이 도시를 골라서 방문한 이유가 그래서 얘깃거리가 된다. 이른바 적폐 수사의 선봉에 서서 결국 박근혜와 이명박 두 전 대통령을 구속함으로써 극성 보수 지지자들에게는 원한을 산 윤석열이다.
그는 ‘마음의 빚’ 청산을 위한 첫걸음으로 대구를 찾은 것이다. 앞으로 기회 있을 때마다 나올 적폐 수사 전과(前科) 논란을 의식한 포석(布石)이다.
그는 대선 출정식을 방불케 한, 환영 나온 시민들에게 “대구는 내 고향 같은 곳이다”라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그가 국정원 대선 개입 수사 후 좌천당해 간 곳이 대구고검이다. 대구, 경북은 윤석열에게 원한을 가지면서도 그 어느 지역보다 열렬히 윤석열을 지지해 왔고, 그가 대선에 출마할 경우 부친 윤기중(공주, 연세대 명예교수)의 고향인 충청과 함께 압도적으로 밀게 될 지역이다.
윤석열은 대구 검찰청 방문 자리에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은 부패가 완전히 판치는 부패완판이다”라고 2차 공격을 감행했다. 부패완판은 미리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나오기 힘든 4자 조어이다.
그리고 4일 오후 대검에 나와 사퇴를 발표했다. “이 나라를 지탱해온 헌법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지금 파괴되고 있다. 그 피해는 오로지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다. 저는 우리 사회가 오랜 세월 쌓아 올린 상식과 정의가 무너지는 것을 더는 지켜보고 있기 어렵다”라는 입장문과 함께.
4일은 최강욱 등이 발의한 ‘윤석열 출마금지법’(현직 검사·법관이 출마하려면 1년 전 사직 의무화)이 소급적용 조건으로 통과될 경우 차기 대선일 내년 3월 9일에서 1년 5일 전이다. 그는 이날 검찰을 떠나면 정치인으로 법치 말살 정권과 싸우겠다고 읽히는 선언을 했다. 사실상 대선 출사표다.
“검찰에서의 제 역할은 지금, 여기까지다. 앞으로 제가 어떤 위치에 있든지 자유민주주의와 국민을 보호하는 데 온 힘을 다하겠다.”
때마침 한 인터넷 언론 매체에는 윤석열의 멘토 중 한 사람이라는, 긴 머리를 뒤로 묶은 도인(道人)과의 인터뷰가 올라왔다. 전 조선일보 기자 최보식이 만난 이 사람은, 검찰 주변에서 총장이 위기 때마다 자문하는 승려가 있다는 소문에 따라 찾게 된 특정 종교 승려다.
서울시장 보선 경선 후보 안철수와 스님 법륜과의 과거 관계를 연상케 하는 대권 도전자와 승려와의 만남이다. 이 승려는 책과 유튜브 추종자들이 상당히 많다고 알려진 인물로 윤석열이 부인을 통해 만나 친해졌다고 한다. 그는 열흘에 한 번 정도씩 지도자 교육을 하며 “윤석열이 정리를 잘하고 있고, 내가 다듬어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 도인은 “닥칠 수밖에 없는 어떤 일에 대해 대처하는 법을 가르쳐 주며 돕고 있다”고 했다. 4년 전 최순실 수사 때부터 추-윤 갈등 때까지 고비를 잘 넘기도록 코치를 했다는 것인데, 특히 ‘목까지 고비가 오기 전에 넘기도록 주의하라’는 당부를 해왔다고 한다.
그의 이 말을 듣고 보니 윤석열이 전 법무부장관 추미애에게 “총장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고 치받은 것도 한참 참다가 터뜨렸고, 이번 중수청 설치를 통한 검찰 해체 추진에도 오랜 침묵 끝에 대포를 발사한 사실이 떠올랐다.
윤석열의 2일부터 시작된 융단폭격과 4일 전격 사퇴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기습적이었다. 그의 이 사흘은 최근 1년 사이 행적 중 가장, ‘목까지 고비가 오기 전에’ 선제적으로 취한 속전속결(速戰速決)의 정치 출발 신호탄이었다.
글/정기수 자유기고가(ksjung7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