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승전'핵'…제 갈 길 가겠다는 김정은
입력 2021.01.09 14:59
수정 2021.01.09 18:02
"최대 주적 미국 제압·굴복에 초점 맞춰야"
'신무기' 지속 개발 의지도 천명
"새로운 북미관계 구축 포기한 듯"
"남북관계도 크게 기대않는 모양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미국을 '주적'으로 명시하며 '핵 카드'를 꺼내 들었다. 남북관계와 관련해선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던 "3년 전으로 회귀했다"며 '일방적 선의'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식이 10여 일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군사적 역량에 방점을 찍는 한편 남북관계 개선에도 '수동적 입장'을 밝힘에 따라, '핵보유국'으로서 제 갈 길을 가겠다는 뜻을 대내외에 천명했다는 평가다.
9일 북한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5∼7일 진행된 당 중앙위원회 사업총화보고(결산보고)에서 "대외정치활동을 우리 혁명발전의 기본 장애물, 최대의 주적인 미국을 제압하고 굴복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지향시켜나가야 한다"며 "앞으로도 강대강, 선대선의 원칙에서 미국을 상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새로운 조미관계(북미관계) 수립의 열쇠는 미국이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는데 있다"면서도 '적대시 정책'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향후 다양한 전략무기 개발을 통한 군사역량 강화 의지도 거듭 피력했다. 우선 "새로운 핵잠수함 설계연구가 끝나 최종심사단계에 있다"며 새로운 전략 무기 공개가 임박했음을 알렸다. 군사정찰위성을 확보 의지를 천명하며 '다탄두 개별 유도기술' 연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고도 했다. 아울러 '극초음속 활공 비행전투부(탄두)'를 비롯한 탄두 개발연구 역시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극초음속 활공 탄두는 마하 5~10 이상의 고속으로 날아가 요격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다탄두 개별 유도기술은 미국을 겨냥한 대륙간탄토미사일(ICBM)의 파괴력을 한층 끌어올릴 수 있는 핵심 기술로 평가된다. 앞서 북한은 지난해 10월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다탄두 ICBM으로 추정되는 신무기를 공개한 바 있다.
다만 김 위원장은 "'책임적인 핵보유국'으로서 침략적인 적대세력이 우리를 겨냥하여 핵을 사용하려 하지 않는 한 핵무기를 남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나라처럼 항시적인 전쟁위협을 받고 있는 나라는 없다. 그만큼 평화에 대한 우리 인민의 갈망은 매우 강렬하다"고 주장했다.
'대미 강경책' 내놓으며 '도발' 시사
美에 핵능력 내세우며 중·러 밀착할 듯
전문가들은 북한이 미국 정권 교체와 무관한 핵능력 강화를 천명한 것은 핵보유국 지위를 공고히 하려는 의도라고 평가했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 교수는 "북한은 대미정책에서 기존의 정면돌파 노선’을 오히려 강화하는 강경책을 발표했다"며 "북한은 핵보유 의지를 넘어서 극도로 고도화된 핵능력을 지속 개발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특히 주목되는 것은 군사 정찰위성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라며 "위성발사를 명분으로 ICBM 시험을 감행하겠다는 예고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위성 발사에 필요한 추진체 기술이 ICBM에 그대로 활용될 수 있는 만큼 북한이 우회적으로 도발 가능성을 시사했다는 평가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김 위원장이 "미국을 최대 주적으로 규정한 점이 가장 눈에 띈다"며 "새로운 북미관계 구축이라는 희망은 거의 포기한 것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북한은 향후 상당 기간 대미관계에 있어 강력한 '핵전쟁 억제력' 강화로 맞서며 중국, 러시아와의 전략적 협력관계를 강화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남북관계 개선, 남측 노력에 달렸다"면서도
사실상 수용 불가능한 조건 제시
한편 북한은 남북관계가 지난 2018년 판문점 선언 이전으로 회귀한 것이나 다름없다며 문재인 정부의 '노력'을 촉구했다.
김 위원장은 "북남관계가 회복되고 활성화되는가 못되는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남조선 당국의 태도 여하에 달려있다"며 "대가는 지불한 것만큼, 노력한 것만큼 받게 되어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남조선 당국의 태도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가까운 시일 안에 북남관계가 다시 3년 전 봄날과 같이 온 겨레의 염원대로 평화와 번영의 새 출발점으로 돌아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지난 2018년 신년사에서 '남북 공동의 노력'을 강조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관계개선 이슈를 남측에 떠넘긴 모양새다.
이어 그는 남북관계 개선과 관련해 "상대방에 대한 적대행위를 일체 중지하며 북남선언들을 무겁게 대하고 성실히 이행해나가야 한다"며 문재인 정부가 추진 중인 △코로나19 대북지원 △인도주의적 대북지원 △개별관광 등이 '비본질적인 문제'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첨단 군사장비 반입 △한미연합훈련을 지속해온 문 정부가 한반도 평화와 군사적 안정을 보장하는 남북합의 이행에 역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임을출 교수는 북측이 남북관계 회복 가능성을 피력한 것은 "명분 축적용으로 보인다"며 "우리가 수용하기 쉽지 않은 조건들을 추가로 제시함으로써 남북관계에 대해 크게 기대하지 않는 것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한미연합훈련 중단, 첨단 군사장비 반입 중단 등을 한국이 수용하기 어렵다는 점을 북한도 잘 아는 만큼, 향후 남북관계 개선 여부에 괘념치 않겠다는 입장을 내놨다는 평가다.
정대진 아주대 통일연구소 교수 역시 북한이 "'3년 전 봄날'로 돌아갈 수 있다고 했지만 실현 가능성은 의문"이라며 "남북합의 이행을 재강조하는 기조로 보면, 상당한 제재완화를 통한 대규모 경협, 철도 인프라 구축 같은 수준은 되어야 할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정책 검토 기간, 북한의 대미압박 자세를 감안하면 단기간에 해결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이 한국 정부의 '제한적 역할'을 모를 리 없다며 "북한이 그걸 모르고 관련 언급을 했겠는가. 북한이 남한이 정말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를 하겠는가"라고 되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