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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성 홍수경보④] '돈잔치' 즐길 때 아냐…"유동성 '출구전략' 마련할 때"

이충재 기자 (cj5128@empal.com)
입력 2020.08.06 05:00 수정 2020.08.05 17:55

코로나19 진정 후 경기불안‧악화 가능성에 유동성 회수땐 '긴축발작' 우려도

전문가 "시중에 풀린 돈 효과적 흡수 대책 마련해야…실물경제 뒷받침 중요"

설 명절을 앞둔 2018년 2월 8일 서울 한국은행 강남본부에서 관계자들이 시중은행에 공급할 설 명절자금이 방출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설 명절을 앞둔 2018년 2월 8일 서울 한국은행 강남본부에서 관계자들이 시중은행에 공급할 설 명절자금이 방출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초유의 통화·재정정책으로 시중 유동성이 사상 최대로 불어났다. 정부와 중앙은행이 코로나19발(發)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역대급 돈풀기에 나섰지만, 정작 시장에선 자금이 생산과 투자‧소비로 흐르지 않는 유동성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재 불어난 유동성은 부동산시장에 몰리거나 은행 예금같은 단기자금으로 흘러드는 등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경제지표를 살펴보면 곳곳에서 '유동성 홍수경보'가 울리는 상황이다.


최근 금융가에선 코로나19 사태 진정 이후 경기회복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유동성 후유증' 대비해야 할 때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울리고 있다. 막대한 유동성이 실물경제가 아닌 부동산과 주식시장 등으로 흘러들어 자산버블 조짐을 보이자 선제적으로 출구전략을 마련해둬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된 이후 시중에 풀린 돈은 자산시장으로 몰리고 있다. 실제 불어난 부동산금융은 1년 사이 168조3000억원 늘어나 국민총생산(GDP) 규모를 뛰어넘었고, 증권시장에는 '동학개미운동'으로 상징되는 유동성 광풍이 몰아쳤다. 상반기에만 은행 금고에 새롭게 쌓인 돈이 108조7000억원에 달할 정도다.


거대한 유동성 파고에 실물과 자산시장의 괴리가 점점 확대되는 상황이다. 시장‧금융전문가들은 자산거품이 불어나면서 소비와 투자가 회복되지 않는 '유동성 함정'에 빠질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지난달 말 국제통화기금(IMF)은 "실물과 금융시장의 괴리가 역사적인 수준"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향후 '인플레이션 헤지'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원은 '금 온스당 2천달러 진입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실수요 증가에 따른 물가 상승과 과잉 유동성으로 인한 자산 인플레이션 현상을 구분해 대처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이 요구된다"며 "경기 회복 시점을 진단하고 효과적으로 유동성을 흡수하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플레이션 헤지는 앞으로 화폐가치가 떨어질 것에 대비해 자금 일부를 화폐와 비슷한 가치가 있는 상품이나 자산으로 바꿔 보유하는 것을 말한다. 금(金)은 대표적인 인플레이션 헤지용 자산으로, 최근 국제금값이 연일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그만큼 시장에서는 넘치는 유동성에 따른 통화 가치 하락과 인플레이션을 피할 수 없는 상황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실제 시장에선 실물 경제 대신 자산 가격이 들썩이고 있다. 경제위기 때마다 작동한 '믿을 건 달러밖에 없다'는 시장심리도 깨졌다. 주요국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 인덱스는 지난달 31일 기준 93.35까지 떨어지며 2018년 7월 이후 2년 만에 최저치로 추락했다.


반면 시장에선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금과 위험자산인 주식은 동시에 상승하는 이례적인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국제 금값이 4일(현지시각) 사상 최초로 온스당 2000달러 고지를 넘어서며 유동성 함정의 깊은 골을 확인했다. 코로나19 여파로 타격을 입은 경기에 대한 불확실성이 여전한데다 저금리와 인플레이션 우려까지 더해지며 나타난 현상이다.


향후 막대한 유동성 회수 과정에서 긴축발작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긴축발작이란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경기부양을 위해 시중에 푼 돈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신흥국의 자금이 우선적으로 빠져나가 통화가치와 주가가 동반 하락하는 현상을 말한다. 한은은 "코로나19 진정 이후 선진국 중앙은행이 공급한 막대한 유동성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국제 금융불안이 유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신흥국 통화가치가 하락했다는 점도 향후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요인으로 꼽혔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코로나19 사태로 실물경제가 악화한 상황에서 금융·자산시장은 활황을 보이는 비동조화 현상이 가져올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해야 한다"면서 "금융시장은 상승하는데 실물경제가 뒷받침해 주지 못하면 후에 자산가치 급락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이로 인한 또 다른 경제 위기가 오거나 경기 회복이 늦어질 수 있기 때문에 면밀하게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유동성 확보에 비상이 걸린 산업계에서도 향후 닥쳐올 유동성 후유증에 대한 불안감이 작용하고 있다. 권태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은 지난달 6일 '코로나19 이후 세계경제 전망과 한국의 대응 세미나'에서 "한국경제의 버팀목인 수출이 4월과 5월 20% 이상 줄고, 6월에는 10% 감소했다"면서 "어려운 경영여건을 차입금 확대와 자산매각 등으로 견뎌온 기업들이 하반기에도 코로나19 지속될 경우 대출상환 유예기간이 끝나는 10월부터 유동성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권에선 한국은행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아직까지 한은은 유동성 회수 보다는 경기부양 정책 연장쪽을 바라보고 있다. 한은 경제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은 지난달 22일 '코로나19 관련 거시경제 주요이슈에 대한 논의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향후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은 보건·경제상황에 대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높은 만큼 유동성·지급능력 관련 정책을 추가·연장하는 방안도 계속 점검해야 한다"고 밝혔다.


현재 유동성이 향후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가능성에 대해선 "경제 네크워크 보전 과정에서 공급된 대규모 유동성이 향후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이는 중앙은행이 본연의 의무인 물가·금융안정을 도모하는 과정이므로 인플레이션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또 "향후 새로운 충격이 발생하지 않는 한 인플레이션 발생 가능성도 크지 않다는 반박이 유력하게 제기됐다"고도 했다.


한은 금통위원들도 유동성 확대에 따른 자산시장 과열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은이 공개한 '7월 금통위 의사록'에 따르면 금통위원 다수는 최근 유동성에서 비롯된 자산시장 과열을 경계하고 있었다. 금통위는 지난 7월 만장일치로 기준금리(0.50%) 동결했다.


A금통위원은 "통화정책을 완화적으로 운영하더라도 실물경기가 상당한 회복시차를 보일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금융자금의 쏠림현상, 부채규모의 증가 등 금융불균형도 어느 정도 불가피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B금통위원은 "기업부문에서의 유동성 문제에 신속히 대응하지 못하면 보다 심각한 지급불능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에 대처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은 앞으로도 지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당장 한은이 적극적인 완화정책을 펴긴 어렵다고 보면서도 정부의 '정책 의지'에 따라 추가 경기부양정책이 나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또한 기준금리 조정 시점은 코로나19 사태 추이를 보면서 내년 이후 경기회복 조짐이 나타나면 인상카드를 꺼낼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앞서 한은은 지난 3월 16일 기준금리를 1.25%에서 0.75%로 0.5% 포인트 내리는 빅컷을 단행한 데 이어 5월 0.75%에서 0.5%로 0.25% 포인트 내리면서 거대한 유동성 흐름을 일으켰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달 16일 금통위를 마친 뒤 "코로나19로 시작된 위기가 언제 끝날지 모르고 국내 경제 흐름도 불확실하다"며 "현재 완화기조 유지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이충재 기자 (cjle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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