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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성 홍수경보①] 경기부양 쏟아부었는데…실물경기 회복 물음표

이충재 기자 (cj5128@empal.com)
입력 2020.08.03 05:00 수정 2020.08.02 16:33

시중에 풀린 돈 3054조 역대 최대…생산·투자·소비 대신 단기자금에 몰려

2분기 성장률-3.3% 외환위기 후 최저…6월에만 일자리 35만2000개 증발

한국은행 본점에서 현금 유동성 확보를 위한 자금 방출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자료사진) ⓒ데일리안 한국은행 본점에서 현금 유동성 확보를 위한 자금 방출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자료사진) ⓒ데일리안

초유의 통화·재정정책으로 시중 유동성이 사상 최대로 불어났다. 정부와 중앙은행이 코로나19발(發)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역대급 돈풀기에 나섰지만, 정작 시장에선 자금이 생산과 투자‧소비로 흐르지 않는 유동성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재 불어난 유동성은 부동산시장에 몰리거나 은행 예금같은 단기자금으로 흘러드는 등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경제지표를 살펴보면 곳곳에서 '유동성 홍수경보'가 울리는 상황이다.


시중엔 천문학적 유동성이 풀린 상황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5월 중 통화 및 유동성'에 따르면, 지난 5월 광의 통화량(M2)은 3053조원으로 한 달 전보다 무려 35조4000억원 늘었다. 월간 증가액은 1986년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후 최대다. 정부와 한은이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수준으로 끌어내리고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헬리콥터 머니'를 뿌린 탓이다.


한국 경제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유동성 홍수시대에 진입하게 된 형국이다. 하지만 최악의 경기침체와 고용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한 극단적 처방이 부른 부작용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특히 한은이 찍어낸 돈이 민간으로 흘러들어가 얼마만큼 다시 신용을 창출하는지를 나타내는 통화승수(통화량÷본원통화량)는 15.06으로 역대 최저치로 떨어졌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극심한 돈맥경화를 겪은 지난 2008년(26.2)보다도 크게 낮은 수준이다. 그만큼 현재 시중에 풀린 돈이 엉뚱한 곳에 묶여 있다는 의미다.


실제 불어난 유동성 흐름의 한줄기는 은행 예금으로 흘러들었다. 한은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은행 수신액은 1858조원으로 작년 말 대비 108조7000억원 급증했다. 이는 상반기 기준 역대 최대 증가폭이다. 가계와 기업이 코로나19 여파에 따른 불확실성에 대비해 금융권 대출 등을 통해 자금을 쌓아둔 영향이다.


상반기 은행권 대출 총액은 118조3000억원으로 기업은 77조7000억원, 가계는 40조6000억원 각각 늘었다. 문제는 가계와 기업이 대출을 받은 돈을 투자나 소비에 쓴 것이 아니라 은행 예금에 다시 넣어뒀다는 점이다. 한은 관계자는 "가계나 기업이 경제위기 상황을 맞아 일단 대출을 받아 현금을 확보했지만 막상 쓰지 않고 예금으로 쌓아뒀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돈의 흐름이 느려진 것도 문제다. '통화유통속도'는 지난 1·4분기 기준 0.64까지 떨어졌다. 한은이 통화량 집계를 시작한 2001년 12월 이후 최저치다. 통화유통속도는 명목 국내총생산(GDP)을 M2로 나눈 수치로 통화 1단위가 상품·서비스를 생산하는 데 몇 번이나 쓰였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이에 홍남기 경제부총리도 지난달 25일 "전세계적인 유동성 공급 확대 등으로 우리나라도 광의의 통화가 사상 최초로 3000조원을 넘었는데, 이런 상황에서도 생산적인 부문에는 자금이 돌지 않아 유동성 부족을 호소하는 '돈맥경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도 '치솟는 저축률이 전 세계 중앙은행에 정치적인 딜레마를 제기하고 있다'고 유동성 문제를 제기했다.


더욱이 정부가 올해 세 차례에 걸쳐 편성한 추가경정예산(추경) 59조원을 쏟아 부어 경기부양에 나섰지만, 정작 올해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 성장률은 직전분기 대비 -3.3%로 뒷걸음쳤다. 이는 1분기(-1.3%)에 이어 연속 마이너스 성장일 뿐만 아니라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1분기(-6.8%) 이후 22년 3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돈을 풀어서라도 반드시 지키겠다"던 일자리는 6월 한 달에만 35만명이 줄어들었다. 통계청이 발표한 6월 고용동향 지표를 보면, 취업자 수는 2705만5천명으로, 1년 전보다 35만2천명 줄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일자리를 잃은 사람이 4개월 만에 78만6000명에 달한다. 실업률은 통계를 처음 작성한 1999년 이후 6월 기준 역대 최고치였다. 청년실업률은 10.7%로 21년만에 최악의 한파를 맞았고, 지난달 제조업에서만 7만7000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이에 정부의 돈풀기 정책이 당초 예상처럼 '기업 활력→일자리 회복→소비 증가'의 선순환을 낳을지 의문이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실물경기와 주가간의 괴리가 심해 엄밀히 말하면 버블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면서 "전세계적으로 유동성이 풀려있고 주식시장으로 유입되면서 실물경기과 주가간의 괴리를 발생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금리를 낮추고 재정도 풀지만, 그 돈이 가장 어려운 기업과 가계로 가진 않는다"며 "없는 사람들에게 유동성이 적셔지지 않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잉여가 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김현태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각국 정부‧중앙은행의 재정지출 확대와 유동성 공급을 고려할 때 기업부문 부실로 인한 글로벌 금융불안이 단기간에 현실화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전 세계적 코로나19 유행이 장기화하면 그동안 차입경영을 확대해온 기업들의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라며 "기업부문 리스크 현황에 대한 모니터링을 지속적으로 실시해 위기 발생 가능성을 조기에 경보하는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충재 기자 (cjle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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