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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남북 합의 위반을 위반이라 말 못하는 정부

강현태 기자 (trustme@dailian.co.kr)
입력 2020.06.24 04:00 수정 2020.06.24 05:15

통일부, 북한의 대남확성기 재설치를

판문점 선언 위반으로 평가하지 않아

국방부 "연락사무소 폭파와 군사합의는 별개"

전문가들 "정부, 스톡홀롬 신드롬에 빠졌나"

22일 경기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북측 접경지역 초소에 대남확성기로 추정되는 물체가 카메라에 포착됐다. ⓒ뉴시스 22일 경기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북측 접경지역 초소에 대남확성기로 추정되는 물체가 카메라에 포착됐다. ⓒ뉴시스

북한이 연일 남북 합의 위반 소지가 있는 행동을 예고‧실행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애써 의미를 축소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23일 통일부 당국자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북한의 대남확성기 재설치와 관련해 "하지 않는 행동까지 위반으로 볼 수는 없다"면서도 "확성기 용도를 생각하면 재설치는 위반으로 가는 길로 볼 수 있어 바람직한 길로는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북한이 확성기를 실제 가동하지 않은 만큼, 확성기 재설치 만으로는 판문점 선언 위반으로 평가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남북은 지난 2018년 4.27 판문점 선언을 통해 군사 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과 전단 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행위를 중지하고, 관련 수단을 철폐하기로 합의했다.


합의에 따라 남북은 판문점 선언의 첫 번째 후속조치로 접경 지역 곳곳에 배치돼있던 확성기를 철거한 바 있다.


북한이 판문점 선언의 '상징'인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상황에서 판문점 선언의 첫 번째 후속조치까지 뒤엎고 있는 만큼, 행동을 통해 남북 합의 파기를 거듭 선언하고 있다는 평가다.


폭파 전후의 개성 소재 남북공동연락사무소(자료사진). ⓒ뉴시스 폭파 전후의 개성 소재 남북공동연락사무소(자료사진). ⓒ뉴시스
사실상 파기된 군사합의
국방부는 애써 유효성 강조


판문점 선언과 함께 현 정부 대북정책 성과의 두 축으로 평가되는 9.19 군사합의 역시 사실상 파기 수순에 접어들었지만, 정부는 애써 합의 유효성을 강조하는 분위기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전날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북한의 연락사무소 폭파 행위가 군사합의 파기를 뜻하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정 장관은 "현재까지는 그렇다"고 조건을 달면서도 군사합의가 우발적 군사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합의라는 점에서 연락사무소 폭파와 군사합의 파기 사이에 연관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는 북한이 남측 재산에 해를 입힌 것은 맞지만,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 수 있는 접경지역이 아닌 곳에서 폭파를 감행했으니 군사합의와는 관련이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국방부 논리를 일부 받아들인다 해도 '남북 합의 정신'이라는 큰 틀을 감안해 북한의 최근 조치들을 평가하면 남북 합의 위반 소지가 다분하다는 평가다.


무엇보다 북한군이 최근 취한 조치들은 남북 합의를 정면으로 거스르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방부에 따르면, 북한군은 주둔지 일대 시설 보수·공사 활동을 벌이며 '민경초소(감시초소·GP)' 재정비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군사합의 주요 내용 중 하나가 'GP 철거'였다는 점에서 북한의 관련 조치는 군사합의 위반으로 볼 수 있다.


앞서 북한 군부가 비무장지대 민경초소(GP) 재진출을 포함해 △금강산·개성 일대 군부대 재주둔 △접경지역 군사훈련 재개 △대남전단 살포 보장 등 '4가지 후속조치'를 예고한 만큼, 향후 남북 합의 위반 사례로 평가될 수 있는 북한군 움직임이 잇따를 전망이다.



23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개풍군 일대 초소에서 북한군들이 초소 정비 작업을 하고 있다.ⓒ뉴시스 23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개풍군 일대 초소에서 북한군들이 초소 정비 작업을 하고 있다.ⓒ뉴시스
"정부, 北 좋은 얘기만 해"
"비핵화 北 책임 언급해야"


전문가들은 정부의 안이한 상황판단을 지적하며, 북한 비핵화에 대한 기본 원칙부터 재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휘락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는 통화에서 "정부가 '스톡홀롬 신드롬'에 빠진 것 같다"며 "어떻게든 북한을 이해하고 좋은 얘기만 하려한다"고 꼬집었다. 스톡홀롬 신드롬이란 '인질이 인질범에 동화돼 범인을 잡으려는 경찰을 오히려 적대시하는 심리 현상'을 뜻한다.


박 교수는 "판문점 선언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북한 주장에 끌려다니는 것부터가 문제"라며 "북한은 판문점 선언의 핵심인 비핵화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우리 정부가 이 점을 명백히 강조하고 지적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현태 기자 (trustm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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