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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비상상황' 선포한 한국당, 정권심판론 예열한다

정도원 기자
입력 2018.12.29 01:00
수정 2018.12.29 05:34

헌정 사상 세 번 있었던 긴급재정경제명령 촉구

민주당 "어처구니없는 발언" 민감반응한 이유는

경제통 의원·경제단체 임원과 '비상상황' 선언
"극빈층 전락이 소득주도성장이라면, 거부한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정용기 정책위의장이 28일 오전 국회에서 회의를 주재하고 경제비상상황을 선포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자유한국당이 연말에 돌연 '경제비상상황'을 선포했다. 소득주도성장 등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으로 새해에는 민생경제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보고, 내후년 총선에 대비해 정권심판론 예열에 들어간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당은 28일 나경원 원내대표 주재로 경제비상상황선언회의를 열어 '경제비상상황'을 선포했다.

소득주도성장 폐기·경제활력 되살리기 특위 위원장을 맡은 김광림 의원은 "이명박정부 시절 연간 28만 개씩 늘던 일자리가 이 정부 들어 고작 10만개 늘고 있는데, 이마저도 국민 세금으로 메운 공공일자리 18만 개를 생각하면 민간 일자리는 오히려 8만 개 정도 줄어들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경제라는 단어는 '나라를 잘 다스려서 백성을 구한다'는 뜻의 경세제민(經世濟民)에서 나왔는데, 문재인정부는 이 나라 어떤 백성을 대체 구하고 있느냐"며 "일부 기득권 노조만 눈에 어른거리는 게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탄식했다.

김선동 여의도연구원장은 "글로벌 경제 대비 (문재인정부의) 성적표를 보면, 전 세계 주요 국가들은 실업률이 내려가고 있는 하향 추세인데 우리만 유독 실업이 올라가는 추세"라며 "미국·독일·일본 등 주요 국가와 비교했을 때, 우리가 현재 실업률 1등에 위치해 있다"고 비판했다.

이처럼 객관적 자료를 통해 문재인정부의 경제 실정 현황을 파악한 한국당 원내지도부는 이후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했다. 이 자리에는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장과 신정기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 등이 참석했다.

올해 8·29 3만 소상공인 총궐기를 이끌었던 최승재 회장은 "2년 사이에 29%의 임금을 올리고, 대법원 판례와 국회의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있는데도 장관 시행령으로 주휴수당을 포함해 인건비를 대폭 상승시키려 하니 삼권분립이 있는 나라냐"며 "우리더러 도대체 뭘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최소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면서 버티게 해야 되는데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며 "스스로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빚을 내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을 중산층에서 사회극빈층으로 전락시키는 것이 소득주도성장이라면, 우리는 단호히 거부한다"고 천명했다.

신정기 부회장도 "내년 1월말에 임금 계산을 해주고나면 기업주들은 얼굴이 하얗게 질리겠다"며 "투자 여력이 있는 업체들은 자동화를 해서 사람을 줄일 것이고, 그런 여력조차 없는 기업이라면 결과는 뻔한 것"이라고 비관했다.

현장의 목소리까지 청취한 한국당 원내지도부는 오는 31일 국무회의에서 주휴수당을 포함하는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안 의결을 중단할 것과, 내년 1월 1일부터 적용되는 10.9% 최저임금 추가 인상의 단속·처벌 유예를 주장했다.

헌정 사상 세 번 있었던 긴급재정경제명령 촉구
민주당 "어처구니없는 발언" 민감반응한 이유는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2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경제비상상황 선언회의에서 김광림 소득주도성장 폐기·경제활력 되살리기 특별위원장으로부터 뭔가를 조언받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나경원 원내대표는 "31일 국무회의에서 시행령 개정이 강행되면 가뜩이나 어려운 산업현장은 더 이상 버틸 여력조차 남지 않게 된다고 한다"며 "내년도 10.9% 최저임금 인상분에 대해서도 제도 개선이 있을 때까지 계도기간을 설정해 단속과 처벌을 유예해달라"고 요구했다.

정용기 정책위의장은 "세계경제가 호황일 때 출범한 문재인정권은 호황 기간 동안에 세금 포퓰리즘과 친노조·반시장 정책을 펴더니, 대외환경이 악화되는 지금에는 '시장을 이겨보겠다'는 독단과 오만을 버리지 않고 있다"며 △소득주도성장 폐기 △최저임금제도 수정 △가짜 일자리 정책 중단을 촉구했다.

특히 이날 회의에서 나경원 원내대표는 경제비상상황을 선언하며, 최저임금 인상과 주휴수당 산입과 관련한 문재인 대통령의 긴급재정명령발동을 요구하고 나서 눈길을 끌었다.

긴급재정·경제명령은 헌법 제76조 1항에 규정된 대통령의 비상대권의 일종이다.

헌정사에서 지금까지 발동된 사례는 단 세 차례에 불과하다. 1953년 기존의 100원을 1환으로 변경하는 화폐개혁 특별조치, 1972년 모든 기업사채를 동결하고 상환을 유예하는 이른바 8·3 사채동결조치, 1993년 금융실명제 전격 실시 등이다.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화폐개혁, 사채동결, 금융실명제 등 극단적인 경제적 변화를 수반하는 한편 극도의 기밀·보안성이 유지되는 조치가 그 대상이었다. 최저임금 시행 유예와 주휴수당 산입범위 조정이 그 대상이 된다고 보기는 쉽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헌법에서도 △중대한 재정·경제상의 위기 시에 △국가안보와 공공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에 한해서 △최소한으로 필요한 조치만 할 수 있도록 제약을 걸고 있다.

이 때문에 더불어민주당은 나 원내대표의 긴급재정·경제명령 발동 요구를 향해 "정말 어처구니 없는 발언"이라고 즉각 반발했다.

판사 출신인 나 원내대표도 긴급재정·경제명령의 발동 요건이나 역대 사례를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생경제가 어려워진 게 어제 오늘 일이 아닌데 갑자기 연말에 '경제비상상황'을 선포하며, 긴급재정·경제명령 발동을 촉구하는 등 위기감을 고조시킨 것은 무엇 때문일까.

정치권 관계자들은 새해에 들어서면 현 정부의 무리한 경제·재정운용으로 인해 민생경제 파탄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고, 내후년 총선을 겨냥해 미리 정권심판론을 예열하려는 뜻이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버스요금 인상 등 줄이어…민생어려움 심화될듯
미리 '경제비상상황'선언, 정권심판론 불지핀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정용기 정책위의장 등 원내지도부가 28일 오전 국회에서 김광림 의원 등 당내 경제 전문가,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장, 신정기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 등 현장 경제단체 관계자들과 함께 경제비상상황 선언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새해 들어서면서 추가로 10.9%의 최저임금 인상이 단행되는 한편 탄력근로 확대 없이 주52시간 근로제가 전면 도입되면 산업현장의 피로감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경제통으로 알려진 한국당 의원은 이날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산업현장의 피로감을 차치하고서도 일단 (현장이) 전혀 준비가 돼 있지가 않다"며 "올해는 자영업자·소상공인들만 피눈물을 흘리는 선에서 넘어갔다면, 내년에는 전국민에게 그 폐해가 체감되기 시작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당장 버스업계 등이 최저임금 인상과 주52시간 근로제 등에 준비가 전혀 돼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새해에 광역버스와 시외버스의 요금을 인상하는 한편 버스업계의 기사 추가 채용에 재정 지원을 고려한다는 방침이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이와 관련해 "소득주도성장의 후폭풍과 부작용이 자영업계를 넘어 국민생활 전반에 미치는 것"이라며 "버스요금을 인상하고 정부지원금을 늘린다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가재정과 서민에게 돌아간다"고 성토했다.

새해 들어 민생경제 각 영역에서 이러한 부작용이 빈발하면서 국민들이 체감하는 어려움이 가중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럴 경우 미리 '경제비상상황' 선포로 경고해놓고, 긴급재정·경제명령 발동까지 요구했던 한국당의 '혜안'에 국민의 시선이 쏠릴 수 있다는 관측이다.

나아가 버스요금 인상 등이 기폭제가 돼 불경기 속에서 생활물가만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에 경제에 진입하면, 내후년 총선에서 '정권심판론'이 무르익게 된다고 보고 이를 예열하는 의미도 있다는 분석이다.

민주당도 한국당의 이같은 의도를 들여다보고 있지만, 마땅한 대응 수단이 없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같은 '함정'에서 벗어나려면 청와대가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대한 고집을 꺾어야 하는데, 현재의 수직적 당·청 관계에서 여당이 청와대에 경제정책 수정 요구를 할 수 없는 국면이기 때문이다.

이해식 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한국당을 향해 "실체없는 경제위기를 얘기할수록 어려워지는 것은 경제"라며 "한국당은 혹세무민을 멈추라"고 촉구했지만, 경제위기의 실체가 없는 게 아니라는 점이 고민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내년 4·3 재·보궐선거를 변곡점으로, 한국당이 예열해놓은 '정권심판론'이 열기를 띄기 시작하면 경제정책 방향을 놓고 당청 간의 이견이 본격 노출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버스요금 인상 등 생활물가 앙등과 계속되는 실업대란·불경기는 선거의 악재 중의 악재"라며 "4·3 재보선에서 집권 세력이 일격을 맞게 되면, 총선에서의 재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여당 의원들이 본격적으로 경제정책에 관해 다른 목소리를 내기 시작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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