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율 고공행진' 문재인 대통령 '혁명의 유혹' 떨쳐야한다
입력 2017.05.29 04:54
수정 2017.10.16 09:56
<칼럼>노무현 전대통령을 힘들게한 시민혁명의 전사들
대중의 환호 경계하고 지지세력 청구서에 안 휘둘려야
문재인 대통령의 인기가 말 그대로 천정부지다. 한국갤럽이 지난 23∼25일 전국 성인 1천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앞으로 5년 동안 문 대통령의 직무수행 전망을 물었는데, ‘잘할 것’이라는 응답이 88%에 이르렀다고 한다. 언론들은 ‘역대 최고치’에 대한 찬사 경쟁을 벌이고 있다.
다행스럽기는 한데 마음에 걸리는 점이 없지 않다. 계기 때마다 대동소이한 보도 패턴이긴 하지만 승자에 대한 언론의 지나친 찬사는 독자‧시청자까지도 낯간지럽게 한다. 4년 3개월여 전엔 ‘박비어천가’라더니 요즘엔 ‘문비어천가’란다. 두보는 인심의 변덕스러움 개탄하여 ‘빈교행(貧交行)’을 지었다. “손을 뒤집어 구름을 짓고, 손을 엎어서 비를 만드니….”
대중적 인기에 너무 민감하면
“대통령 선거가 갖는 국민신임투표(plebiscitary)적 성격, 양극화와 그에 따른 감정의 고조, 정당차원을 벗어나 유권자에 대한 직접적인 호소, 그리고 실현 불가능한 공약제시 등에 의해 신임 대통령은 선거 직후 대단히 높은 지지율을 얻는 경우가 흔히 있다. 심지어는 70내지 80%의 유권자 지지도를 기록하기도 한다. (중략) 오도넬이 썼듯이, ‘오늘은 그들(대통령들)이 신의 섭리로 탄생한 인물처럼 추앙받다가도, 내일은 마치 무너져버린 신상들처럼 저주를 받는다’”(린쯔‧바렌쭈엘라, 대통령제와 내각제).
문 대통령의 경우는 ‘70~80%’를 훌쩍 넘겨 90%에 육박하는 긍정 응답을 얻어냈다. 아마 이런 예는 세계적으로도(민주주의가 작동하고 있는 국가들의 경우) 흔치 않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수치 속에 함정이 숨어 있다.
이전의 갤럽조사 지지율 최고 기록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갖고 있었다. 취임 1주차의 국민 기대치가 85%였다. 그는 취임 1년차 2분기와 3분기에 잇달아 83%씩의 지지율을 확보했다. 그런데 임기 5년차에 이르면 ‘인기는 간 데 없고 실망만 넘쳐나’는 상황이 되었다. 분기별 국정 지지율이 14%, 7%, 8%, 6%로 추락했다.
문 대통령이 조심해야 할 함정은 ‘취임 3주차 88%’ 그 자체다. 인수위 2개월을 거치지 않고, 당선 바로 다음날 아침에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역대 대통령들은 당선 후 취임 때까지 2개월 여 동안 인기의 고공행진을 즐기기도 했지만 조각 작업 등에서 민심의 이반을 경험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의 지금 인기는 역대 대통령 인수위 3주차의 그것에 조응한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특히 유의해야 할 부분은 김 전 대통령이 임기 초에 누렸던 높은 대중적 지지의 배경이다. ‘대중 보비위성 조치 및 정책의 효과’라는 측면을 간과할 수가 없다. 그는 취임하기 바쁘게 ‘신한국 창조 선언’ ‘공직자 재산 공개’ ‘칼국수 고정 식단’ ‘안가 12채 철거’ ‘하나회 척결’ ‘신경제 정책 제시’ ‘부패와의 전쟁 선포’ 등 각종 충격 조치들을 쏟아냄으로써 대중의 기대에 부응해 갔다. 대중의 욕구는 채워질수록 커지는 속성을 가졌다. 반면에 대통령이 줄 수 있는 선물은 한정돼 있다. 그나마 재정부담이 적고 대중적 울림이 큰 것이 부패, 그러니까 악과의 전쟁이었다. 그가 대통령이 되어서도 말안장에 버티고 앉아 돌격(개혁사정)만을 외쳤던 배경이 이로써 이해될까?
김 전 대통령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데는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 무엇보다 ‘3당 합당’ ‘내각제 비밀각서’의 부담이 컸을 법하다. 제1의 민주투사로 자부하던 그가 5공 및 5‧16세력과 연대해서 정권을 잡았다. 더욱이 이들과 내각제 개헌에 대한 비밀각서까지 주고받은 게 들통 나고 말았다. 이로 인해 생긴 콤플렉스를 해소하려면 대중의 환호가 필요했다. 보상심리가 작동했다고 봐서 무리가 없을 것이다.
정치는 선악의 대결이 아니다
문 대통령은 다른 이유로 역시 대중적 인기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는 민중의 지도자를 자임해 왔다. 그리고 그들의 열화 같은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했다고 여기고 있을 것이다. 그냥 민중이 아니다. 적폐세력에 의해 핍박받고 희생을 강요당해 온 양심세력, 선(善)의 전사단으로서의 민중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16일 미‧중‧일‧러‧유럽연연합에 파견할 특사들을 만난 자리에서 “새정부가 ‘피플파워’를 통해 출범한 정부라는 의미를 강조해 달라”고 주문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신의 당선에 대해 ‘시민혁명’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악에 대한 선의 승리가 곧 혁명이다. 문 대통령이 스스로를 선과 정의의 편에 두면 지지하지 않은 정치세력이나 국민은 불의의 집단이 된다.
그래서 그런지 문 대통령 취임 초에 보여주고 있는 리더십 스타일은 진두지휘형(그러니까 지시형), 징치(懲治)형이다. 그는 취임하자말자 △일자리위원회 설치 △국정 역사교과서 폐기 및 올해부터 5·18 기념식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30년 이상 노후 석탄 화력발전소 일시 가동 중단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기간제 교사 순직 인정 △검찰 '돈봉투 만찬' 사건 감찰 △4대강 사업 정책 감사 등을 지시했다. 오래 동안 정부‧정치권‧국민을 논란 속으로 몰아넣었던 문제 혹은 과제들을 말 한마디로 결정해 버린 것이다. 말하자면 ‘피플파워’로 등장한 대통령의 위력과시라 하겠다.
그는 대상을 선악 이분법으로 파악하는 인상을 준다. 그 예가 한국경영자총협회의 비판에 대한 위압적 대응이다. 일전 경총 측이 일자리 정책에 대해 앓는 소리를 하자 문 대통령은 즉각 대변인 브리핑으로 반박했다. “경총은 양극화와 청년실업 문제 등 우리가 안고 있는 모든 일자리 문제에 대해 정부·노동계와 함께 책임져야 할 분명한 축이자 당사자임에도 이에 대한 성찰이나 반성 없이…”라는 경고성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비정규직의 95%가 중소기업에 몰려 있는 상황에서, 회원사의 90%가 중소기업인 경총으로서는 충분히 문제를 제기할 만한 내용이었다”고 '한국경제'는 29일자 사설에서 지적했다. 중소기업 대다수는 언제나 어렵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새로운 일자리 창출의 요청에 부응할 여력이 이들에게 있을 리 없다. 게다가 중소기업이 제공하는 일자리라는 것은 대개 단순 기능직이다. 고학력의 젊은이들이 기피하기 때문에 외국 근로자들이나 아르바이터로 채우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문 대통령의 의욕은 충분히 이해되지만 업무지시를 통한 대통령의 권력과시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대통령의 업무지시와 직권남용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박 전 대통령에겐 허용되지 않았지만 문 대통령에겐 허용되는 권한‧권력이 따로 있지도 않을 것이다.
청구서 들이미는 지지세력들
정권이 바뀌었으니 추구하는 가치가 달라지리라는 점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이 요직에 발탁하는 인사들의 면면에서 이미 그 일단이 드러나고 있기도 하다. 인사는 그의 몫이다. 그렇다 해도 이념적으로 심하게 치우치거나 호오가 너무 분명한 인사들이 요직에 앉아 성급히, 또 교조적으로 자신들의 가치관을 우리 사회에 구현시키려 하는 일이 없어야 할 텐데 하는 조바심은 숨기기 어렵다.
굳이 표퓰리즘이라고는 하지 않겠으나 지나치게 대중적 호응과 찬사에 이끌리는 리더십은 아주 위험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임기 초부터 힘들게 했던 측은 정적이나 보수세력이 아니었다. 당시 ‘탈레반’ ‘홍위병’으로 자처한 인사들을 비롯, 시민혁명의 전사들이 대통령 지킴이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반대쪽 정치인이나 유권자들은 숨을 죽여야 했다. 대신 혁명 공로자나 지지자들의 압박이 가중됐다.
기원전 202년, 한왕 유방은 마침내 천하를 통일했다. 그는 진나라의 복잡한 의례를 모두 없애고 법을 간편하고 쉽게 만들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민심을 다독이는 데는 성공했으나 그 탓에 조정 안팎의 기강이 해이해 졌다. 신하들은 모이기만 하면 서로 공을 다투었고. 술에 취해 함부로 큰 소리를 지르거나 칼로 기둥을 내려쳤다. 말하자면 황제를 만든 유세를 톡톡히 했던 셈이다.
이미 전교조가 청구서를 내밀었다. “빚진 과거를 잊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라며 ‘법외 노조’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는 보도다. 이들 외에도 문 대통령의 당선을 도왔던 노동단체, 시민단체와 정치적 세력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신세 갚기’를 요구하고 나설 조짐이라고 한다.
임기 5년은 생각보다 훨씬 짧다. 말할 것도 없이 대통령은 제왕이 아니다.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은, 과욕을 부리지 않는다면 정말이지 제한적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예가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문 대통령은 혁명의 리더일 수가 없다. 혁명정부이려면 박 전 대통령 정부가 민주 말살을 기도하는 폭압 집단이어야 했다. ‘내란 또는 외환의 죄’가 아니면 그에 버금갈 정도의 범법행위라도 저질러야 대통령직을 박탈하고 법정에 세울 명분과 이유가 되지 않겠는가. 그야 물론 법정에서 재판관들이 판단해 줄 것이지만 어쨌든 혁명정부라는 과도한 의미 부여는 지금 바로 포기해야 옳다.
그런 마음가짐이 확고해져야만 군중을 앞세운 독선정부로의 유혹을 스스로 물리칠 수가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혁명이 아니다. 범정치권적이고 범국민적인 화해와 화합의 틀을 만드는 일이 급선무다. 싸우면서 배운다고, 이른바 적폐적 정치행태를 같은 행태와 방식으로 청산하겠다고 해서는 안 된다. 유념하고 또 할 일이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