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박수갈채에 취하면 길을 잃는다
입력 2017.05.22 04:35
수정 2017.10.16 09:56
<칼럼>잘 쓰면 약이지만 못쓰면 독인 게 파격인사
개혁의지 너무 과시하면 반발 저항도 커지게 마련
문재인 대통령의 인사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인수위원회 과정 없이 바로 취임했으니 무엇 하나 녹록한 일이 없을 터이다. 특히 인사는 하루라도 미룰 수 없는 과제다. 당연히 서둘러야 할 일이긴 한데 임명, 지명 인원이 늘어날수록 이런 저런 세간의 평도 많아진다. 물론 박수를 보내는 사람도 있지만 의아해 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친박 의원 보좌관들에 따르면 대선 때 큰 역할을 했던 한 중진 의원은 선거에서 고생했던 사람들을 챙기기 위해 박 당선인에게 전화를 걸어 ‘부탁드릴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그러자 박 당선인은 차분한 목소리로 ‘의원님, 이러시려고 그렇게 하셨던 거세요? 이러려고 우리가 한 건 아니잖아요’라고 했다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인 시절 주요 일간지 기사 한 대목이다. 기사는 이어진다.
“전화를 건 의원은 무안해서 ‘죄송하다’며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소문의 당사자인 의원은 ‘그런 일이 없다’고 부인했지만 친박 의원들은 ‘그 얘기 자체는 사실이 아니더라도 당선인 스타일을 봤을 때 충분히 있을 법한 일’라고 말하고 있다.”
후보적 브레인 기용은 당연
이 기사는 아래와 같이 계속된다.
“당선인과 사적(私的)으로 가까운 한 지인은 작년 12월 말 인수위 인선과 관련해 몇몇을 추천했다가 ‘지금 당신 정신이 있는 거냐 없는 거냐’며 혼이 난 일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당선인은 그런 민원을 들어주기 시작하면 그 지인 주변에 사람이 꼬이게 되고 그러다 말썽이 날 것을 우려했다는 것이다.”
인사와 관련해 어떤 청탁도 용인하지 않겠다는 당선인의 의지가 묻어나는 일화였다. 논공행상 혹은 신세 갚기에 대한 기대를 단칼에 잘라버린 한 마디였다. 사람들은 박 당선인다운 반응이라고 여겼다. ‘인사가 만사’라고 했다. 특히 임기를 함께 시작할 주요 공직자들에 대한 인사는 새 정부의 성패를 좌우한다. 첫 인사를 보면 그 정부의 장래를 짐작할 수 있다고 해서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철저히 주변을 경계하던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이라는 ‘40년 지인’과의 개인적 연고에 휘둘렸다가 결국 대통령직에서 파면까지 당해야 한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언론보도로는 박 전 대통령이 검찰의 옥중 조사 때 “(최씨에게) 이용당하고 속았다”고 진술한 모양인데, 정말 그런 생각이라면 이 또한 기가 막힐 일이다. 지속적으로 측근들에 대한 사회적 경보음이 울릴 때 왜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챙겨보지 않았다는 것인가.
언제쯤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박 전 대통령 인사스타일과 관련, 여당 주변에서 추가열의 ‘나 같은 건 없는 건가요’라는 노래가 유행이라는 우스개 소문이 나돌 때였다.
“(전략) 그대만 행복하면 그만인가요./더 이상 나 같은 건 없는 건가요./한번만 나를 생각해 주면 안 되나요.”
노랫말의 이 부분만으로도 그게 왜 여당 및 그 주변 인사들의 심사를 대변하는 노래로 여겨졌는지 짐작하기에 부족하지 않다. 나름대로 박 대통령(당시)의 당선에 일익을 담당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의 심정이 오죽했을까. 정부가 출범한지 두어 해가 지났는데도 여태 소식이 없느냐며 안달했을 인사들의 ‘심사 대변곡’으로는 정말이지 적격이었을 법하다.
“박 대통령님, 그러자고 도왔지 왜 도왔겠습니까?”
방송에 나가서 몇 차례 그런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논공행상 식의 정부 인사는 곤란하지만 적재적소의 인사라면 충분히 듣고 살펴야 옳다. 수첩을 인재풀 삼아서 발탁하는 것은, 여당 리더들의 주문을 받아 기용하는 것보다 훨씬 위험하다. 무엇보다 대통령 선거란 단독플레이가 아니라 팀플레이다. 그런데 당선하고 나서 다리를 끊어 버리는 것은 너무 이기적인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코드인사 부활은 위험하다
대통령 후보라면 누구나 각 분야 브레인들의 조력을 받게 마련이다. 이들과의 논의 토론을 거쳐 자신의 국정철학을 정리하고 정책 내용과 목표를 설정한다. 그러므로 이 브레인들 가운데서 정부 요직 담당자를 발탁하는 것은 전혀 문제될 게 없다. 오히려 ‘책임의 공동체’를 형성한다는 차원에서는 바람직한 선택일 수 있다.
문 대통령의 인사원칙, 인사스타일을 세세히 짐작하기는 어렵다. 다만 기준 하나는 뚜렷해 보인다. 과거 노무현 정부 때 강조됐던 ‘코드’다. 특히 참여정부 출범 초기에 ‘코드 인사’가 당당히 과시되기도 했었다. 그 전통을 잇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게 사실이다. 아직 확연하다고까지는 말할 수 없지만 ‘지역적 보은’인사의 기미도 느껴진다. 더 보태자면 ‘파격’ 욕구도 감지된다.
대통령 중심제 정치체제 하에서 시시콜콜 비판성 인사평을 하는 게 좋지는 않다. 자신이 책임지고 이끌어갈 정부의 인적 구성에 자신의 의지를 반영하는 것은, 말하자면 정당한 권한 행사일 수가 있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50년 이상 살아가노라면 얼굴에도 행적에도 얼룩이 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자질을 따지되 취모멱자(吹毛覓疵: 털 사이를 불어가면서 흠을 찾는다)에 이를 정도여서는 곤란하다.
이런 인식을 전제로 말하고자 한다. 인사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이념성향과 의식의 획일성이다. 똑 같은 가치관, 행동원리를 가진 사람들이 팀을 만들게 되면 국정은 독선 독단 독주에 빠질 수밖에 없다. 박 전 대통령의 정치적 실패(사법적 판단은 사법부가 내려줄 일이다) 요인이 바로 3독(獨)의 리더십이었다고 본다. 인사 기준부터가 그랬던 것은 아니겠지만 용인의 방법에서 자기류(類)의 행동양식, 그러니까 대통령의 명령과 의지에 대한 순응을 요구했음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문 대통령은, 상대적으로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 방식을 선호하는 리더일 것으로 추측이 된다. 그간 언론들의 평가가 그렇기도 했지만 이른바 ‘송민순 회고록 파문’ 와중에 나온 그의 언급에서 묻어나는 이미지도 다르지 않았다.
“치열한 내부 토론을 거쳐 노무현 대통령이 다수의견에 따라 기권을 결정한 것이다. 노 대통령은 항상 내부에서 찬반을 놓고 치열한 토론을 거쳤으며 시스템을 무시하고 사적인 채널에서 결정하는 일은 없었다. 박근혜 정부는 노무현 정부를 배우기 바란다.”(페이스북, 16년 10월 15일)
사실 노 전 대통령 임기 초에는 수석비서관들과 격의 없이, 담배까지 같이 피우면서 담소하는 등의 ‘파격’이 자주 신문 지면을 장식했었다. 문 대통령도 스스럼없는 대화의 정치를 좋아할 것으로 믿는다. 다만 대화 참여자들 모두가 ‘모습은 다르지만 마음은 같은’ 사람들이라고 할 때, 아무리 대화와 토론이 활발하게 이뤄진다고 해도 그 결론은 획일성의 틀을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은 지적되어야 하겠다.
파격·잘 쓰면 약, 못 쓰면 독
대통령의 참모(내각까지를 포함)라면 마땅히 그 뜻을 잘 이해하고 이를 국정 운영과정에 효과적으로 반영시켜야 할 책임을 진다. 이건 상식이다. 그렇다하더라도 결정과정의 획일성은 극도로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다”는 분위기가 조성되면 정부는 3독정치의 늪 속으로 빠져들고 만다. 반대 의견을 소중히 여기고 최대한 존중할 수 있을 때에만 ‘치열한 토론’을 거쳤다고 말할 수 있다. 코드인사의 부정적 측면을 문 대통령과 인사팀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지역적 보은’은 아직 조짐만 보이는 단계니까 당장 부정적으로 지적할 일은 아니다. 다만 탕평인사를 하려면 철저히 하고, 능력중시 인사를 하려면 지역에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 지역을 고려한 인사를 해놓고 ‘대탕평’이라고 강변하는 것은 위세 대단한 새정부의 지록위마(指鹿爲馬)가 되고 만다.
다음으로는 ‘파격인사’에 대해서인데 잘 쓰면 약, 못 쓰면 독이 되는 것이 이른바 ‘파격’이다. 종전의 인사 관행, 원칙, 사회적 인식 같은 것으로는 이해가 안 될 만큼의 튀는 인사가 곧 파격적 인사이겠다. 개혁 목표 달성을 위해 꼭 필요한 역량을 갖춘 인재라면 과감한 기용이 바람직하다. 파격인사가 겨냥하는 또 다른 효과는 기선제압 이다. 이를 통해 대통령의 개혁의지를 분명히 하면서 국민적 동의를 이끌어내려는 인사기법이겠는데 이 또한 백 마디 말보다 효과적일 때가 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뜻으로 행하는 인사라고 해도 이런 점은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보란 듯이 하는 과시형 인사, 정치보복의 의도가 드러나는 위협형 인사가 그것이다. 대통령의 임기는 5년에 불과하다. 개헌을 해서 임기를 늘린다고 해도 현직 대통령에겐 해당되지 않는다. 현 임기는 대통령으로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하기에도 빠듯한 시간이다. 구 집권세력에게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하면 금방 감당하기 어려운 저항의 벽에 부닥치게 된다. 지금의 여당과 그 리더들은 박 전 대통령 임기 초부터 광장정치를, 때론 독려하고 때론 주도함으로써, 박근혜 정부 붕괴에 크게 한 몫 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음을 잊지 말 일이다.
더 경계해야 할 것은 임기 초에 쏟아지는 찬사다. 갈채에 취하면 길을 잃기 십상이다. 공짜 점심이 없듯이 공짜 박수도 없다. 인심은 조석변(人心朝夕變)이라고 했다. 영원한 지지자는 없다. 콘크리트 지지층이라는 것도 허상이다. 정권교체 후 첫 인사라고 해서 개혁의지를 너무 과시하면 반발 저항의 힘도 어딘가에서는 커간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