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만 쳐다보는 한심한 국회, 개헌 적기 놓칠 건가
입력 2017.03.06 10:59
수정 2017.03.06 12:40
<자유경제스쿨>국론분열 불보듯 말고 제할일해야 대권욕심 휘둘리지 말고 권력 구조 재편 마무리를
대통령의 탄핵 심판과정에서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촛불 편과 태극기 편의 둘로 나뉘어졌다. 둘로 나뉜 것으로 보인다는 표현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아직 한 번도 이들 집회에 나가보지 않은 사람들과 한두 번 이쪽저쪽 기웃거려 보고는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며 제 할일 하면서 국론 분열과 나라의 앞날을 걱정만 하는 국민들의 숫자가 더 많다고 생각돼서이다.
드러나는 민심의 극단화는 ‘분열의 정치’가 정략의 도구로 이용되어온 2000년대 한국정치의 타락에 있지만,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현 탄핵정국의 도화선은 4.13 총선 과정에서 보여준 무능한 대통령의 오만과 편 가르기, 그리고 최순실 사태에서 드러난 부정직한 민낯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치의 테두리 안에서 질서 있게 전개될 수도 있었던 정국을 지금의 혼란으로 몰아넣은 것은 다가올 대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자 하는 유력 대선주자들의 욕심 때문으로 보인다. 소위 ‘촛불 민심’이라는 허상에 기대어 점령군이 되고자 한 정치세력들이 쏟아낸 ‘사드 반대’, ‘이석기 석방’, ‘개성 공단 ․ 금강산 관광 즉각 재개’ 등의 정치구호들은 그간 길거리 정치를 남의 일로만 생각하던 수많은 대한민국의 안위를 걱정하는 이들이 손에 태극기를 들고 시청 앞 광장으로 나가도록 자극해 빚어진 결과이다.
탄핵 결과보다 개헌이 중요하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머지않아 인용이든 기각이든 헌재는 판결을 내릴 것이고, 정치인들의 무책임한 선동대로 아스팔트가 피로 물드는 참극이나 혁명 같은 상황으로 치달을 수도 있겠지만 어찌됐던 역사의 수레바퀴는 돌아 60일 후 또는 9개월 후에는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고 새 대통령을 뽑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나리오는 국민들과 정치권이 헌법재판소만 바라보며 길거리에서 구호만 외친다는 가정 하의 사태전개일 뿐이다. 이는 ‘87체제’로 불리는 현행 헌법 하에서의 여섯 명의 대통령 모두가 예외 없이 본인 자신 또는 가족(혹은 가족보다 더 믿었던 친지)의 권력형 비리 때문에 대통령이 된 것을 후회하는 참담함을 경험한 전철을 그대로 따라 간다는 시나리오이다.
마치 어쩌다 손에 쥐게 된 레시피로 여섯 차례 음식을 만들어 여섯 차례 모두 먹지 못할 음식을 만들고도 재료만 탓하면서 같은 레시피로 또 요리하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대한민국은 지금 다른 선택을 할 수 있고, 그렇게 하라고 국회가 있는 것이다. 국회는 지금 헌법재판소가 하고 있는 탄핵 심판보다 더 중요한 일을 할 기회를 허비하고 있다. 탄핵심판의 후유증도 완화하고, ‘87체제를 종식시키고 내일의 대한민국을 지탱할 새 헌법을 만드는 개헌 논의에 너무나도 미온적이다. 30년 만에 구성된 개헌 특위가 가동 중이나 지난 두 달 동안 아무런 성과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미 개헌을 당론으로 정한 여야 삼당에 민주당 개헌지지 의원들을 합하면 개헌 정족수에 달한다는 보도를 믿어도 될지 의심스러운 지경이다.
대한민국 헌정사에는 발췌개헌이라고 부르는 일차에서 현행 헌법이 만들어진 9차까지 아홉 차례의 개헌이 있었다. 그 중 두 차례가 국민의 민주화 투쟁으로 만들어낸 개헌으로 권력구조의 변화가 그 주요 내용 중 하나였다. 4.19혁명의 결과인 1960년 헌법은 의원내각제를, 6월 항쟁의 결과인 현행 헌법은 대통령 직선제를 도입한 개헌이었다. 1960년 개헌은 4.26 대통령 하야에서 6.15 개헌안 국회통과까지 두 달도 걸리지 않았다. 1987년 개헌에서도 6.29선언에서 10월 국회의결, 국민투표 및 공포까지 4개월 만에 이루어졌다. 이 사실들을 알고 있었기에 지난 1월 개헌특위 위원들 중 절반이상이 “대선 전 개헌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일간지의 전화 설문조사에 답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개헌을 바라는 다수 국민의 여망은 망각한 채, 특검의 피의자 망신주기 쇼, 촛불 대 태극기의 세 대결 시위, 헌재의 탄핵심판 추이, 대선주자들의 도토리 키 재기 여론조사 등에 정신이 팔린 국회의원들의 태업으로, 만일 조기 대선이 치러진다면, 대선 전 개헌은 사실상 어려워진 것으로 보인다. 헌법 개정안의 의무공고 기간이 20일 이상임을 감안하면 그렇다. 그래서 앞으로의 개헌 논의는 탄핵심판의 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헌재에서 탄핵이 인용될 경우, 그것이 단순한 조기대선경쟁의 신호탄이 아니라, 마련될 개헌안을 둘러싼 후보자들의 공약이 중심 이슈로 떠오르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자면, 개헌에 필요하다면 대통령 임기단축을 수용할 용의가 있는지 등에 관한 공약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간 수차례에 걸쳐 집권 후 개헌약속 파기를 보았지만 이번만큼은 달라야 한다. 또 탄핵이 기각될 경우, 대선전 개헌에 시간은 더 이상 제약요인이 아닌 만큼 심도 있는 개헌논의가 가능하며 이것이 촛불세력을 거리투쟁에서 개헌 논의의 장으로 불러들이는 역할도 수행해야 할 것이다.
개헌의 방향
개헌의 방향에 관해서는 이미 어느 정도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개헌논의의 출발점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청산이었지만 대통령제 대신 내각책임제로의 이행과 같은 급격한 권력구조의 변화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 여론을 감안해 정치권의 중론은 오스트리아 모델을 벤치마크 한 분권형 대통령제로 수렴하는 모양이다. 대통령과 국회가 지명하는 책임총리 간에 행정부의 권력을 나누는 이 제도는 내각책임제에 가까운 대통령제로서 책임총리를 지명-불신임하는 권한을 갖는 국회 쪽으로 힘의 균형이 기울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 제도를 선택할 경우의 첫 번째 유의해야 할 사항이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따라, 국회에 대한 행정부의 견제 수단으로 오스트리아에서와 같이 대통령이 국회 해산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특별히 언급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이익보호에는 뛰어난 결속력을 보이는 대한민국의 국회의원들이기에 개헌안 작성 과정에서 국회 해산권이 슬그머니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국민들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둘째, 평상시에는 의전 대통령처럼 보일 수도 있는 분권제도에서의 대통령이 국가 중대 시기에는 국가통합을 책임지는 자리이기에 그의 중대결단에 국민들이 승복하도록 하는 장치로서 결선투표제를 도입해 국민 과반수의 지지를 담보로 하는 권위를 부여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끝으로 사법부의 위상을 제고하는 방안으로 대법관과 헌재 재판관의 임기 연장을 고려해보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글/김우택 한림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