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은 촛불민심 아전인수 해석으로 갈등유발 말아야"
입력 2016.12.18 04:51
수정 2017.01.04 23:22
국정교과서 등 정책 관련 야당 주장은 촛불민심 대표 못해
보편성 전제돼야…촛불, 국정농단과 대통령 방조에 분노
촛불민심을 대하는 민주당의 태도와 독점 폐해
민주당 금태섭 대변인은 지난 16일 오후 현안 브리핑에서 ‘촛불민심을 왜곡하고 대한민국을 분열시키려는 시도는 당장 멈추어야 한다’라는 제하의 논평을 발표했다. 금 대변인은 이 글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비호하기 위해 괴담을 생산․확대하는 단체 카카오톡 채팅방이 존재하는 사실이 밝혀졌다”면서 “이 채팅방에는 대통령 팬클럽 회원과 새누리당 의원 등이 참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금 대변인은 채팅방에서 생산하는 괴담으로 ‘백남기는 빨간 우의가 죽였다’, ‘백남기 사건은 야당의 내란공모’, ‘촛불시위는 북한의 지령을 받은 것’ 등을 열거한 뒤 “사실이 아닌 것은 물론이고,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사회 갈등을 유발하는 글”이라고 비난했다.
금 대변인의 논평내용이 사실이라면 이는 충분히 촛불민심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비난할 만하다. 야당의 내란음모가 있다는 것부터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과 야당의 음모 가능성을 연결짓는 것, 촛불시위의 배후에 북한이 암약하고 있다는 것 등은 사실이라고 믿을 만한 근거가 전혀 없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반대했던 친박 의원들도 이런 주장들은 사실이라고 믿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처럼 민주당이 촛불민심의 정체성을 지키고 그 뜻을 현실정치에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촛불민심 덕분에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통과될 수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야당은 촛불민심을 머리에 이고 다녀도 주위에서 이상하게 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9일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야당이 촛불민심의 혜택을 너무 장시간 혼자서 누리고 있다 보니 서서히 독점의 폐해가 나타나고 있다. 촛불민심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해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이용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것이다.
16일 민주당 최고위원 회의에서 추미애 대표는 “촛불민심은 잘못된 ‘위안부 합의’나 한일군사정보호협정에 대해 ‘중단하라. 무효화하라. 철회하라. 취소하라’ 요구한지 오래됐다”면서 “ 촛불민심이 탄핵한 것은 대통령과 측근의 부정부패뿐만 아니라, 국정농단 그리고 잘못된 악정에 대해서도 우리 국민이 레드카드를 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일 위안부 합의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등을 반대하는 근거로 촛불민심을 내세웠다.
15일 금태섭 대변인은 오전 현안 브리핑에서 “750만 촛불민심으로 대통령 탄핵이 이루어진 상황에서도 여전히 야당에 대한 칼날을 아끼지 않는 정치검찰을 국민은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추 대표에게 벌금 300만원을 구형한 사실을 겨냥한 발언이다. 촛불민심이 야당 대표의 선거법 위반 혐의까지 비호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듯하다.
같은 날 정책조정회의 모두발언에서 강병원 원내부대표는 “탄핵 가결에 찬성했던 234명의 국회의원들은 촛불민심을 받들어 사회개혁과제 입법에 나서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입법에 나서야할 과제로 ‘재벌개혁, 검찰개혁, 공영방송개혁, 노동개혁과 2대 지침 폐기, 국정교과서 폐기 등’을 제시한 뒤 “입법으로 국민들께 보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민주화의 핵심인 재벌개혁에서부터 국정교과서 폐기까지 평소 야당의 주장을 대거 촛불민심에 편승(便乘)시키려고 시도했다.
13일 기동민 원내대변인은 오전 현안 브리핑에서 “‘박근혜표 효도교과서’ ‘친일교과서’ ‘누더기교과서’로 우리 아이들을 교육할 수 없다는 것이 촛불민심이다”면서 “국정 역사교과서는 이미 국민에게 탄핵됐다”고 주장했다. 국정 역사교과서 폐기를 촛불민심으로 해석했다.
이런 견강부회(牽强附會)식 해석은 탄핵소추안 가결 직후부터 조짐이 보였다. 지난 12일 윤관석 수석대변인 오전 브링핑에서 “국민의 촛불민심은 박근혜 정부의 적폐를 해소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라고 요구하고 있다”면서 “민주당은 재벌개혁, 검찰개혁, 사회개혁의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해나가며 촛불민심에 화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대변인은 “과도국정을 관리해야할 황교안 권한대행 또한 이러한 촛불민심을 받들어야 한다”고 말해 일찌감치 황 권한대행 체제와의 갈등을 예고했다.
촛불민심은 ‘최순실 국정농단’과 ‘대통령 방조(傍助) 혐의’에 분노
민주당이 스스로 밝혔듯이 촛불민심은 ‘750만 촛불민심’을 의미한다. ‘박근혜 퇴진’을 외치며 가족과 연인의 손을 잡고 광장으로 나온 촛불민심은 한마디로 ‘최순실 국정농단’과 ‘박근혜 대통령의 방조(傍助) 혐의’에 분노한 것이다. 그 내용은 야3당이 공동으로 발의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에도 잘 나타나 있다.
탄핵소추안에서 박 대통령의 ‘헌법 위배 행위’ 첫째 사항을 보면,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 등의 사익을 위하여 대통령의 권력을 남용하여 (...중략...) 최순실 등이 국정을 농단하여 부정을 저지르고 국가의 권력과 정책을 최순실 등의 ‘사익추구의 도구’로 전락하게 함으로써...”라고 적고 있다. 둘째 사항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 등의 사익추구를 방조하거나 조장하도록 하였는데...”라고 같은 취지의 문구를 명시하고 있다.
결론에서도 “최순실 등의 국정농단과 비리 그리고 공권력을 이용하거나 공권력을 배경으로 한 사익의 추구는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광범위하고 심각하다. 국민들은 이러한 비리가 단순히 측근에 해당하는 인물이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 본인에 의해서 저질러졌다는 점에 분노와 허탈함을 금치 못하고 있다”라고 밝히고 있다.
농단(隴斷)의 사전적 의미는 ‘깎아 세운 듯한 높은 언덕’을 뜻하며 ‘어떤 사람이 시장에서 높은 곳에 올라가 사방을 둘러보고 물건을 사 모아 비싸게 팔아 상업상의 이익을 독점했다’는 데서 유래하고 있다. 따라서 촛불민심은 최순실이 국가 권력과 정책을 사익추구를 위한 도구로 악용하고 박 대통령이 옆에서, 혹은 앞에서 도왔다는 가능성에 분노한 것이다.
탄핵소추안에 제시된 ‘헌법 위배 행위’ 5개 사항, ‘법률 위배 행위’ 4개 사항 어디를 훑어봐도 사드배치, 국정교과서, 재벌개혁, 정치검찰, 한일 위안부 합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등에 대해선 전혀 거론이 없다. ‘박근혜 정부의 적폐’라는 식의 ‘솥뚜껑’ 같은 개념도 없다. 더욱이 추 대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비호할 만한 문구도 전혀 담겨 있지 않다.
촛불민심에 국정교과서 폐기 등도 포함돼 있지만 대표성은 별개
물론 지난 10월29일 1차 촛불집회에서부터 12월10일 7차 집회까지 43일간 연인원 750만 명이 촛불을 드는 과정에서 사드배치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는 촛불도 있었고, 위안부 합의에 항의하는 외침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750만 촛불민심을 대표하는 주장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촛불민심을 대표하기 위해선 보편성을 갖는 목소리와 정서를 찾아내서 담아야 한다. 그것은 재차 강조하지만, 최순실 국정농단과 박 대통령의 방조 혐의에 대한 분노다.
엄밀히 따져, 사드배치, 국정역사교과서, 위안부 합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등은 국정농단과 달리 선악(善惡)의 문제가 아니다. 합법과 불법의 문제도 아니다. 국익의 관점에서 득(得)과 실(失)이 공존하는 정책 사항이다. 어느 쪽이 더 큰지, 어느 쪽을 더 중시할 것인지에 대한 정권 차원의 선택 문제다. 현재 박근혜 정부는 국민들이 공히 인정하고 또 선택한 보수정권이다. 보수정권으로서 그에 부응하는 정책방향을 선택해 정책을 집행 중이며, 야당에겐 그에 대한 견제와 감시 역할만 부여됐다. 야당이 ‘집행’의 영역에 뛰어들어 주역이 되고 싶다면 내년 대선에 승리해 정권을 잡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
촛불민심에 기대어 호가호위하는 일은 지양해야
야당은 촛불민심을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아무 데나 남용해선 안될 것이다. 자신들의 정파적 관점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촛불민심을 이용하다면 그 또한 촛불민심을 왜곡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괴담을 생산․확대하는 단체 카카오톡 채팅방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최순실은 대통령 권력에 빌붙어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 맛에 도취했다가 자멸의 길을 자초했다. 수권정당을 자임하는 민주당도 촛불민심에 기대어 호가호위하는 일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