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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명 중 1명 '출석 거부'…허점 드러낸 '국회 증언감정법'

전형민 기자
입력 2016.12.17 00:21
수정 2016.12.16 21:22

강제력 없는 '동행명령장'…종이호랑이 불과

30년간 '동행명령' 거부 고발 24건 중 22건 무죄

30명중 15명 출석거부한 제4차 청문회
놀림거리된 강제력 없는 '동행명령장'
지난 30년간 '동행명령' 거부 고발 24건중 22건 무죄
뒤늦게 제도 손질 나선 '만시지탄' 국회


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위 2차 청문회에서 최순실, 최순득, 장시호, 우병우 등 핵심증인들이 불출석해 증인석이 비어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생계에 지장이 된다면 우리 당에서 헌금을 해서라도 드릴 생각이니까 출석하세요"

15일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4차 청문회' 시작에 앞서 불참한 박재홍 전 승마국가대표 감독의 출석을 촉구하는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발언이다. 박 전 감독은 사유서를 통해 '생계를 위해 레슨을 해야한다'며 청문회에 불출석했다.

'최순실 게이트 청문회'는 15일 제4차까지 청문회를 마무리하며 전국민의 관심을 받고 있다. 국회 국정조사 특위는 지난 4번의 청문회를 통해 여러가지 사실을 밝혀냈고 검증했다. 하지만 이런 '역대급' 청문회에도 불구하고 최순실, 우병우 등 핵심 증인들이 무더기로 불출석하고 있어 '팥소 없는 찐빵'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에서는 '정당한 이유없이 출석하지 아니한 증인, 보고 또는 서류 제출요구를 거절한 자, 선서 또는 증언이나 감정을 거부한 증인이나 감정인은 3년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이하의 벌금에 처한다'(제12조1항)고 명시하고 있지만 증인들은 △건강상 이유 △재판 및 수사 중 따위를 이유로 불출석사유서를 제출하고 청문회에 불출석하기 일쑤다.

박근혜 정부의 비선실세로 지목된 최순실 씨의 조카 장시호 씨가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2차 청문회’에 출석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30명중 15명 출석거부한 제4차 청문회

지난 15일 치러진 제4차 청문회는 증인 불출석의 결정판이었다. 총 30명의 증인이 채택됐으나 이날 청문회장에 모습을 드러낸 증인은 15명에 불과했다. 청문회에 출석하지 않은 증인 중 10명은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으나 나머지 5명은 본인에게 전달이 안됐거나 전달할 방법이 없어서 출석요구서를 전달조차 하지 못했다.

김성태 특위위원장은 이날도 청문회 시작에 앞서 지난 3번의 청문회와 같이 '상장수여식'을 진행했다. 이는 김 위원장이 국회 사무처 직원들에게 이날 불참한 증인들에게 전달할 '동행명령장'을 발부하는 행위로 마치 초등학교 상장수여식과 비슷하다고 해서 '상장수여식'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총 네 차례 청문회 동안 특위의 동행명령으로 실제로 출석한 증인이 장시호 씨 단 한 명에 그친 점을 풍자하는 별명이기도 하다.

동행명령이란 국회 국정조사의 증인이나 참고인이 정당한 이유없이 출석을 거부할 경우 이들을 부를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국회 증감법 제6조 제1항). 이날 동행명령장이 발부된 증인은 정윤회 전 박근혜 의원 비서실장, 박관천 전 청와대 행정관을 비롯해 총 11명이었다. 그러나 오후 2시까지 동행을 명령한 김 위원장이 무안하게 이들 중 단 한 명도 동행명령에 응하지 않았다.

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위 2차 청문회에서 김성태 위원장이 국회 경위들에게 불출석한 증인 최순실 씨,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에 대한 동행명령장 집행 명령을 전달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상장수여식' 놀림거리된 강제력 없는 '동행명령장'

정치권은 이에 대해 '동행명령에 강제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조언한다. 동행명령을 거부한 증인들을 형사처벌할 수는 있지만 강제로 국정조사장에 끌고 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즉 이미 유죄가 확실시되는 증인들은 굳이 청문회장까지 나와 망신을 당할 이유가 없다는 판단을 한다는 것이다.

동행명령이 강제력이 없다는 판례도 다수 존재한다. 'BBK 특검법에 포함된 참고인 동행명령 조항'에 헌법재판소가 "청구인들의 신체의 자유와 평등권을 침해했다"며 위헌결정을 내린 것 등이다. 대법원도 동행명령을 '체포 또는 구속에 준하는 사태'로 봐야한다며 "영장 제시가 아닌 동행명령장에 기한 신체자유 침해는 영장주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보고 있다.

동행명령장이 당사자에게 직접 전달돼야 비로소 효력이 발생한다는 점도 동행명령이 유명무실한 제도로 만드는데 한 몫하고 있다. '국회 증언감정법' 제6조 제4항에는 '동행명령장의 집행은 동행명령장을 해당 증인에게 제시함으로써 한다'고 명시했다. 즉 동행명령장이 발부됐어도 대상자를 직접 만나서 제시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동법 제13조에 '증인이 동행명령을 거부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동행명영장의 집행을 방해하도록 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조항이 있지만 이 조항도 증인이 동행명령을 '거부'해야 하는데 아예 동행명령장을 받는 장소에 없거나 받지 않으면 해당되지 않는다.

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위 2차 청문회에서 김성태 위원장이 국회 경위들에게 불출석한 증인 최순실 씨,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에 대한 동행명령장 집행 명령을 전달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현상금 걸린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실제로 이런 법의 맹점을 악용한 사례도 있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다. 지난 7일 열린 2차 청문회에 불출석한 우 전 수석에게 김성태 위원장은 동행명령장을 발부했다. 하지만 우 전 수석은 바로 잠적해 동행명령장도 받지 않았고 결국 현상금까지 걸리는 웃지 못할 상황이 펼쳐지기도 했다.

정봉주 전 의원이 500만 원의 현상금을 건 것을 필두로 안민석 민주당 의원이 500만 원, 김성태 위원장, 주진우 시사IN 기자, 정청래 전 민주당 의원이 각각 100만 원씩 총 1300만 원의 상금이 우 전 수석의 행방에 걸렸다. 현상금이 걸렸다는 보도가 나오자 우 전 수석은 언론을 통해 22일 제5차 청문회에 출석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동행명령 제도는 지난 1988년이다. 그러나 지난 30여년간 동행명령에 불응한 증인에 대한 고발은 거의 이루어진 적이 없다. 지난 13대 국회부터 직전인 19대까지 동행명령 거부에 따른 국회모욕죄로 고발된 건수는 총 24건이지만 22건은 '무혐의 처분'됐고 단 2건만 벌금형에 처해졌을 뿐이다.

뒤늦게 제도 손질 나선 정치권

정치권도 이 같은 사실을 잘 인지하고 뒤늦게 제도 손질에 나서는 모양새다. 민주당 이석현·백혜련 의원, 국민의당 김관영 의원이 각자 긴급체포, 강제구인, 출석요구서의 관보 공시 등을 골자로 하는 법안을 내놨다. 하지만 영장실질주의를 주창하는 우리나라 법체계에서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는 이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할지는 지켜볼 문제다.

한편 국회 특위는 청문회 출석요구에 응하지 않은 증인들을 차후 계속된 청문회로 끝까지 불러내겠다는 방침이다. 22일로 예정된 제5차 청문회의 출석대상 증인은 지난 제1차~3차까지 요구에 불응한 17명과 제4차 청문회에 불출석한 11명 등이 출석요구를 받을 예정이다. 하지만 이미 한 번 출석요구는 물론 동행명령장에도 불응한 이들이 출석하는 것은 요원해 보인다.

전형민 기자 (verdant@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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