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디즈니 맞설 '미디어 공룡' 온다…파라마운트·워너 합병에 갈린 시선
입력 2026.09.23 13:37
수정 2026.09.23 13:37
HBO맥스·파라마운트+부터 ‘해리 포터’·‘탑건’까지 한 지붕
연 30편 이상 제작 약속에도…대규모 구조조정 우려 여전
'해리 포터'와 '탑건', '배트맨'과 '스폰지밥'이 한 회사에 모인다. 파라마운트 스카이댄스(이하 파라마운트)의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이하 워너) 인수가 사실상 마지막 관문을 넘으면서 할리우드 역사상 최대 규모의 미디어 기업 결합이 현실로 다가왔다. 극장 영화부터 스트리밍, 방송, 뉴스까지 아우르는 거대 사업자의 등장을 앞두고 할리우드의 힘의 구도가 어떻게 달라질지 관심이 쏠린다.
파라마운트는 지난 21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뉴욕 등 미국 12개 주정부와 합의했다. 이들 주정부는 합병을 막기 위해 반독점 소송을 제기했었다. 합의안은 법원의 최종 승인을 받아야 한다. 다만 이번 합병은 이미 미국 법무부와 유럽연합(EU), 영국 규제당국의 심사를 통과했고, 이번 소송은 거래 성사를 가로막던 마지막 주요 법적 장애물로 꼽혀왔다. 데이비드 엘리슨 파라마운트 최고경영자(CEO)는 약 2주 안에 거래를 마무리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파라마운트 물탑·'해리포터'·'반지의 제왕'·'듄' 포스터ⓒ뉴시스·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
거래의 기업가치는 부채를 포함해 약 1110억 달러에 달한다. 지난해 12월 넷플릭스가 워너의 스튜디오와 HBO 맥스를 827억 달러에 인수하는 거래를 발표했다. 그러나 올해 2월 파라마운트가 주당 31달러 전액 현금 인수안을 제시하며 판을 뒤집었다. 넷플릭스와의 인수전 끝에 워너를 품게 된 파라마운트는 스트리밍 시장에서 넷플릭스를 추격하는 경쟁자 가운데 하나로 몸집을 키우게 된다.
합병이 완료되면 할리우드 '빅5' 스튜디오 가운데 두 곳이 하나가 된다. 워너가 보유한 '해리 포터', DC 유니버스, '매트릭스'와 파라마운트의 '미션 임파서블', '탑건', '트랜스포머', '스타 트렉' 등이 한 지붕 아래 놓인다. TV로 범위를 넓히면 양사가 수십 년간 축적한 콘텐츠 자산이 결합한다. HBO의 '왕좌의 게임'과 워너브러더스TV의 '프렌즈'부터 '옐로스톤', '사우스 파크', 니켈로디언의 '스폰지밥' 등이 포함된다.
스트리밍 시장에서도 존재감이 커진다. HBO 맥스와 파라마운트+는 현재 프리미엄 SVOD 시장에서 각각 4·5위권에 있다. 모건스탠리는 두 서비스를 합치면 2030년까지 2억4000만명 이상의 가입자를 확보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전망대로라면 넷플릭스를 뒤쫓으며 디즈니·아마존 등과 상위권을 놓고 경쟁할 규모다. 다만 합병 회사가 떠안을 부채 역시 약 77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커진 덩치가 곧바로 경쟁력으로 이어진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30편이 40편 될 것"…톰 크루즈가 기대하는 할리우드
파라마운트가 합병의 명분으로 앞세우는 것은 제작 확대다. 12개 주정부와의 합의에 따라 파라마운트는 향후 5년간 미국 영화 제작에 최소 15억 달러를 추가로 투입한다. 합병 후 첫 2년 동안은 매년 30편, 이후 3년 동안은 매년 32편의 영화를 극장에 내놓아야 한다. 약속한 편수를 채우지 못하면 미라맥스 스튜디오를 매각해야 한다. 부족한 영화 한 편당 3000만 달러를 영화·방송 노동조합의 의료·퇴직 기금에 지급하는 조건도 붙었다.
톰 크루즈는 이런 계획에 힘을 싣고 있다. 그는 이달 초 '팻 맥아피 쇼'에서 연간 30편 제작 계획에 대해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파라마운트가 이를 실현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혔다. 30편이 성공하면 40편으로 늘어날 수 있다고도 했다. 더 많은 작품이 만들어져야 작가와 감독, 배우 등에게 기회가 돌아간다는 취지다. 크루즈는 '미션 임파서블'과 '탑건' 시리즈를 파라마운트와 함께했다. 2024년에는 워너와도 영화를 공동 개발·제작하는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었다.
극장업계에도 30편이라는 숫자는 작지 않다. 엘리슨은 앞서 AMC와 리갈 등 극장 체인에 연간 30편 규모의 극장 개봉작과 45일의 극장 상영 기간을 보장하겠다는 방침을 밝혀왔다. 엘리슨에 따르면 지난해 8편이었던 파라마운트의 극장 개봉작은 올해 15편으로 늘었고, 워너 역시 올해 15편을 개봉한다. 두 스튜디오의 현재 라인업을 단순 합산하면 이미 30편에 이른다.
"큰 회사가 삼켜질 때 걱정"…반대편의 우려
반면 할리우드의 모든 이들이 거대 스튜디오의 탄생을 반기는 것은 아니다. 조지 클루니는 이달 초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이번 거래를 두고 우려를 나타냈다. 대기업 간 결합에는 대개 많은 사람의 일자리 감소가 뒤따른다는 것이다. 그는 이 거래가 추진하는 측에 재정적으로 어떻게 이치에 맞을지 모르겠다는 의문도 제기했다. 실제로 합병 회사가 떠안을 약 770억 달러의 부채는 향후 경영의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마크 러팔로는 합병 반대 움직임의 전면에 서왔다. 그는 지난 4월 코리 부커 민주당 상원의원이 주최한 반독점 청문회에 화상으로 참석해 "억만장자들의 공허한 약속을 믿지 말라"고 했다. 더 적은 돈과 훨씬 많은 부채를 안은 새 회사가 더 많은 영화를 만들 것이라는 주장을 믿기 어렵다며 연간 30편 제작 약속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이미 위축된 LA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일자리가 합병으로 더 줄어들 것이라는 경고도 내놨다. 4월 공개된 합병 반대 공개서한에는 러팔로를 비롯해 플로렌스 퓨, 페드로 파스칼, 에드워드 노튼, 드니 빌뇌브, 소피아 코폴라 등 수천 명의 영화인이 이름을 올렸다.
미국작가조합(WGA)도 지난 7월 별도의 반독점 소송을 제기했다. WGA는 주정부 합의 직후 파라마운트와 합의하고 소송을 철회했다. 합의 조건은 CBS 뉴스 방송 부문 작가를 5년간 해고하지 않고, WGA 건강기금에 1750만 달러를 내는 것이다. 다만 합병이 작가와 업계 전반에 피해를 줄 것이라는 입장은 유지했다. 정부기관의 지원 없이 수백만 달러가 드는 법정 싸움을 비영리 단체가 홀로 이어가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판단이 작용했다.
실제 합병을 앞둔 두 회사 내부에서는 제작 확대에 대한 기대보다 당장의 구조조정을 걱정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버라이어티는 파라마운트와 워너 직원들이 향후 수개월간 여러 차례에 걸친 정리해고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두 회사의 중복 조직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올해 안에 첫 구조조정이 시작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합의안에는 해고 노동자의 직업훈련과 경력 개발을 위해 향후 5년간 4750만 달러의 기금을 조성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파라마운트가 12개 주정부와 맺은 합의가 흥미로운 것도 이 때문이다. 반독점 소송의 핵심 우려는 '거대화 이후 제작 감소'였다. 합의안은 이를 막기 위해 합병 회사에 오히려 일정 규모 이상의 제작을 법적으로 강제했다. 파라마운트와 워너의 스튜디오 부지도 향후 5년 동안 유지해야 하고, 제작 투자와 영화 편수 역시 구체적인 숫자로 못 박았다. CNN과 CBS 뉴스의 편집 독립성을 감시하는 별도 위원회도 설치한다.
그럼에도 구조적인 질문은 남는다. 메이저 스튜디오 하나가 사라지는 대신 남은 회사 하나가 더 많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 산업 전체의 경쟁 확대로 이어질 수 있느냐는 것이다. 당장 영화 30편은 보장됐지만 TV는 사정이 다르다. 워너브러더스TV와 CBS스튜디오가 현재 제작하는 시리즈만 각각 약 80편과 60편에 달하고, 여기에 HBO와 파라마운트TV스튜디오까지 한 회사에 묶인다.
서로 경쟁하던 대형 제작사들이 한 지붕 아래 모이면 통폐합 과정에서 제작 편수가 줄고 창작자들이 작품을 팔 곳도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합의안에는 영화와 달리 TV 제작 규모를 보장하는 장치가 없다. 현지에서는 산업 비중이 영화보다 큰 TV 부문이 정작 합의에서 빠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할리우드가 어느 쪽에 가까워질지는 합병 이후에 확인될 문제다. 톰 크루즈가 기대하는 '30편이 40편이 되는 할리우드'일 수도, 클루니·러팔로가 우려하는 '더 적은 수의 회사가 지배하는 할리우드'일 수도 있다. 파라마운트와 워너의 결합으로 만들어지는 회사는 규모만 놓고 보면 디즈니·넷플릭스 등과 경쟁할 또 하나의 거대 사업자가 된다. 동시에 할리우드는 주요 스튜디오 하나를 잃는다. 1110억 달러짜리 공룡의 탄생보다 중요한 것은 그 거대한 몸집이 실제로 얼마나 많은 영화와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일 것으로 보인다.
